오봉, 우이암의 비경 - 도봉산
새벽6시에 큰애는 집을 나섰다. 오늘이 9개여 월동안 집념 하나로 버티다시피 한 관세사수험을 보는 날이다.
예의 그랬지만(식살 함 포만감에 졸음이 온다고) 공복인 채 나가는 큰애에게, 마지막 날 기운이 있어야 수험도 잘 치룰 수 있겠다싶어 ‘입맛 다시고 가라’ 고 아내와 난 일렀다.
그냥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큰애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짠한 맘에다가, 어제 밤늦게 귀가하여 아직 취침 중인 둘째에 대한 불만이 남아있어 기분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시험 잘 치루고 와” 아내가 현관문을 나서는 큰애에게 당부 겸 격려를 했다. 애의 등이 오늘따라 더 굽어 보였다.
아낸, 아직 취침중인 둘째의 방을 향해 혼잣말로 ‘에이그 속 알머리 없는 것--’이라고 투덜대는 거였다. 언니 수험날 늦잠자는 게 못마땅한 게다,
큰애는 수험보고 일찍(오후 6시경) 귀가한다고 했다. 꼬맹이들과 둘째도 집에 있으니 '오늘저녁은 온 가족이 외식을 하자' 고 아내가 제안을 했다.
20년 전쯤, 큰애가 연대합격하면 외식약속을 하자고 해놓곤 땡처버린 아내를 향해 울고불고 했던 애들의 모습이 문득 떠 올랐다.
그래 오늘(토)은 우리내외가 좀 편할까 싶기도 한데 둘째가 취침중이니 예상이 빗나가 아내와 난 심사가 뒤틀렸다.
내 안색을 살피던 아내는 “혼자 등산이나 갔다 오세요”라며 인심쓰듯 했다. 다목적배려인 셈이다.
그렇게 하여 나는 옳다구나, 늦게나마 배낭을 챙겼다. 도봉역에 내렸다. 이곳이 초행이기에 우이암 오르는 길을 묻고 물어 북한산18둘레(도봉옛길)길에 들어섰다,
오전 11시였다. 무수골분지는 주말농장으로 성시를 이룬가 싶은데 울타리마다 ‘개발반대’를 쓴 현수막이 도배를 했다.
상황을 알 턱이 없는 나는 푸나무우거진 도봉옛길을 트레킹하다 보문능선길로 본격 산행에 들었다. 우중충한 찜통더위에 산님들이 이리 많은 건 산행이 진짜 피서란 걸 체감한 탓이리라.
북한`도봉산은 어디를 말할 것 없이 화강암바위가 소나무와 동거하며 아기자기한 얘깃거리를 품은 사찰을 껴안고 있다.
그 동거가 아름답고, 천 년을 이어오는 얘기를 실은 바람이 시원해 산님들을 끌어 모으는지도 모른다. 거기엔 어김없이 산님들이 머물고 있다. 한 시간 반여를 능선을 오르니 도봉주능선에 합류한다.
좌측으로 틀어 200m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초록숲 속에서 우주선발사 직전의 로켓 같은 흰 바위가 잿빛하늘로 솟고 있다.
우이암(牛耳巖.542m)이라. 우주선이란 낱말이 없을 때 명명한 이름이니 이젠 우주암(宇宙巖)이라함이 제격일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바위높이도 약 60m나 되니 소의 귀 바위란 말은 얼토당토다, 그 우주로켓바위을 제대로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서 배낭을 내리고 점심 겸 휴식을 취했다.
우주암이 마주한 건너편 산능은 자운`신선`만장`선인연봉이 번개 치듯 잿빛하늘을 찢어 가르고 있다. 그 번개꽁무니를 하얀 칼바위가 내리꽂으며 다섯 봉우리를 만든다.
희한하게시리 그 봉우리들은 각기 맷돌 하나씩을 머리에 얹고 풀숲에 서서 기가 막힌 풍광을 연출하고 있는 거였다.
오봉이라했다. 여기서 2.6km 거리니 한 시간 반쯤이면 오봉과 면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시험 끝난 큰애가 일찍 귀가한데서 외식 예약했으니 지금 귀가하라는 명령(?) 이였다. 하산할 수밖에 없다. 누구의 지시인데---,
9개월 동안 동숙하면서도 밥상머리에 마주한 적이 없었던 큰애였다. 오봉탐방은 다음 기횔 잡기로 했다. 보문능선을 타고 하산하다 천진사`성불사를 들러보고 문사동계곡의 구봉사(龜峰寺)를 찾았다.
도봉산엔 절도 많고, 따라서 스님도 많을 테다. 중들이 명당은 다 차지한 채 천당을 꿈꾼다. 내 짧은 소견엔 여기가 극락천당 같아보이는데.
풍광이 죽여준다. 망월사계곡, 보문사계곡과 더불어 3대 골짝의 녹음장원미를 땀을 훔치며 완상하며 비구니 수도처인 금강암을 훔치고 골짝입구 광륜사를 찾아들었다.
도봉산에 사찰이 많은 건 그만큼 산세가 빼어났다는 걸 말함인데 무려 60여개의 암자와 사찰이 있단다.
* * * * * *
접때(12일), 우이암에서 원경만으로도 미쳐버렸던 오봉을 탐방하러 오봉탐방지원센터를 출발했다. 오전 10시경이었다.
송추시내를 벗어나 산행에 들었을 땐 평일이고 교통이 불편해선지 산님들이 가뭄에 콩 나듯 하다.
녹음 짙은 푸나무속의 등산로는 비교적 완만한데다 거대한 하얀 바위 다섯 연봉이 숨바꼭질하며 달려드는 압도감에 정신을 빼앗긴다.
송추계곡에서 언뜻언뜻 마주하며 찾아가는 오봉이야말로 완상의 절미라.
양주시에서 산님들 위해 고생하는 것일 테다. 자연석을 깔아 등산로정비를 하고 있어 좋았는데, 여성봉 턱밑 암능의 계단공사는 자연훼손이 볼썽사나워서 지자체의 무신경이 원망스러웠다.
철주 몇 개를 세우고 단단히 로프를 연결하면 될 곳에 거대한 구조물계단이라니? 돈 퍼부으며 자연훼손 하는 짓이라.
여성봉은 오묘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심벌그대로다. 괴이하게도 앙증맞은 소나무 한그루가 땋아놓은 음모까지를 상징한다. 내 넘 비약한 걸가?
푸릇 싱싱한 음모는 영원한 처녀를 말함이려니!
여성봉 우듬지는 거대한 바위마당이라. 산님들을 편안하게 안는 여성의 푸근한 가슴을 만끽하게 한다.
코앞에 바짝 다가선 오봉의 위용은 가슴을 쿵닥쿵하게 한다. 여기서 오봉까지의 1,2km는 활엽 참나무와 꼬부랑소나무가 경연하는 녹음의 무대라. 한 낮인데 풀벌레 울음소리가 열대숲 적요를 깨뜨려 좋다.
계곡을 타고 오는 바람 한 소절의 청량감이 피서의 진미에 빠져들게 하며 술레잡기 하듯 다가오는 오봉의 위용은 시시각각 나를 잊게 하는 장관이었다.
오봉 바로 앞 바위무대에 가이드라인을 설치하여 탐방을 허락지 안 해 아쉽긴 하나, 수백 년을 동거한 소나무 밑에서 세찰하는 다섯 개의 바위 거상들! 언어도단이라.
한 전설엔 하염없이 기다리던 손짓 - 다섯손가락이 그대로 굳어 망부석이 된 사연까지 곁들었으니 미치고 환장할 바위오봉인 것 이였다.
바위덩이 하나씩을 올려놓은 거대한 손가락과 그 하얀 손등걸에 붙어 궁합을 이룬 소나무의 사랑은 표현불가라.
나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가이드라인을 월경해 그 위용을 디카에 담고 후미진 곳에 숨어 반시간을 넋 빠져 앉았었다.
사패산이 포대능선에 바통을 넘겨 어안벙벙한 자운연봉을 연출하고 주봉은 다시 칼바위능선으로 하늘을 요절내려다가 오봉에서 거대한 바위꼬리를 뭉그적대버렸다.
조물주가 빚은 바위세계의 비경에 나는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도봉산이 얼마나 환장할 산인지를 조금은 맛 들었다고 할까?
오봉샘을 향한다. 지지난 번에 네 발로 기어 간 칼바위능선을 에둘러 좀 쉬운 코스를 택하고 싶었다.
깊은 골짝 하산길은 바위너덜에 녹음 방창하여 훈습한 열꽃이 땀으로 멱 감게 했다. 산님이 뜸해 홀로산행이 좀은 신경 애민케 하고.
오봉샘터엔 산님들 십여 명이 샘물로 땀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목을 축이고 우이암을 향하는데 누가 바위에 바둑판을 조각해놓곤 미처 가져가질 못했다.
아니다, 예서 샘물 퍼 옆에 놓고 바둑게임을 하며 세상사 방하착! 하려 했을 테다.
푸나무들 빽빽 우거져 초록차일 쳐 땡볕 가려주고, 옆에 석간수 철철 넘친데 누군들 예서 게임 한 수 생각 없겠뇨? 짧은 시간이 웬수지!
태곳적 수풀을 헤치는 등산로 2.2km는 오봉능선 배꼽을 가로질러 우이암능선에 닿고, 나는 지난번에 회귀했던 보문능선을 따라 도봉계곡으로 하산을 했다.
계곡골짝엔 산님 아닌 땡볕에 쫓긴 유랑객들이 흐르는 물보다 많았다.
도봉역까지 8km남짓을 도봉산에 심신을 녹여 찌꺼기를 걸러낸 셈이다. 흐뭇한 하루였다.
2014. 07. 22
- 여성의 심벌 & ??! -
- 오봉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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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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