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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물깨말구구리길 - 구곡폭포 - 검봉산

물깨말구구리길 - 구곡폭포 - 검봉산

 

춘천`강촌역에서 강촌구곡길을 10여분 가다보면 대나무집위에서 오른쪽 독지골로 들어서는 길목에 검봉산입구 푯말이 있다. 정상까지 약1.6km의 등산로는 상당히 가파른데다 눈까지 쌓여 팍팍하고, 선행자발자국 몇 개뿐인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다.

헉헉대는 내 숨소리와 발밑에 깔리는 눈의 신음소리가 골짝의 탈출구인 빼꼼이 뚫린 하늘로 빨려든다. 간혹 발걸음을 멈춰 호흡을 고르려 치면 등허리를 타는 땀방울의 감촉이 망아의 경계를 일깨우곤 했다.

 

 

푸른 하늘만 빼곤 흑백의 단순미에 시리도록 빠져드는 겨울산행의 고독은 나를 미치게 한다. 한 시간쯤 그렇게 취하니 바위 칼봉(검봉산)이 멋지게 구부러진 소나무들을 앞세워 북한강과 숨바꼭질하면서 탄성을 연발케 한다.

그 기막힌 그림 한가운데를 북한강과 의암호는 검푸른색 하나를 덧칠했다. 칼봉(530m)에 엉거주춤 앉아 기갈을 달래며 산수화에 정신을 빼앗겼다. 홀로산행은 뉘 눈치 볼 것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빠져들 수 있어 좋다.

 

겨울산행의 맛깔은 모든 군상이 절제된 단순미에 있다고  나름 생각하는 나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군더더기 떨어버린 순정이다. 그건 겨울이 주는 열락이다.

의암호 뒤에 삼태기를 엎어놓은 듯한 삼악산도 담 기회에 꼭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 졌다.

문배마을 쪽을 향한 하산길은 산잔등을 타고 가는 능선이어서 오롯하게 겨울산행 맛을 만끽할 수 있다. 우측에선 검푸른 북한강이 나목들을 건너뛰며 쫓아오고 흑백의 산자락은 파도를 일궈 하늘바다로 치닫는다.

 

알펜시아리조트로 가는 길과 갈라지는 분기점까지의  한 시간 남짓의 능선길은 행락의 멋에 심취했다.

검봉산과 봉화산자락 팔부능선쯤에 발달한 분지에 열대여섯 채의 오두막집들이 두툼한 소복을 껴입고 각기 색색의 현수막 하나씩을 들고 시위하듯 나를 반기고 있었다. 얼마전까진 이곳에서 태어나 눈감을 때까지 접하는 문명의 이기는 비행기가 유일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산잔등을 베개로 하늘이불 덮고 산 주민들은 6.25전란이 뭔지도 모르고 울력하며 오손도손 살았는데, 잘난(?) 외지인들이 들락거리며 물욕을 향한 쟁투가 삶이란 걸 아르켜 줘 ‘김가네’ ‘이가네’란 문패 아닌 현수막을 내걸고 욕망의 경쟁에 뛰어들게 했나 싶었다.

문폭포(구곡폭포의 옛이름) 뒷동네라서 문배(文背)라 부른 마을은 그 현수막만 아니면 진정 정감 물씬 풍기는 하늘아래 우리들의 옛 토속고향이었다.

 

청정한 대기 속 비옥한 토지에서 동식물은 언제나 제자리에서 그들이 필요한 만큼 있어 자급자족했던, 소박하고 분수껏 살았던 자연동화적인 삶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불순한 탐욕의 문명에  목말라 하는 원색의 깃발 같은 그 현수막만 없다면(동구에 있는 동네 안내판만으로도 충분했다) 하는 아쉼을 떨구지 못한 채 구곡폭포를 향했다.

수정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단 하얀 면류관을 쓴 움막은 나를 기억도 가물한 초딩시절로 타임머신 여행을 시키는 거였다.

 

 

문폭(文瀑)을 향하는 급경사 하산길은 잣나무숲 속 지그재그 발길 짓을 대여섯 번쯤 해야 했다. 미끄럼 눈길이라 신경을 날 세워야 했지만 울울창창 솟은 숲에서 숨바꼭질하는 하늘과 술래잡기하는 트레킹은 끈질긴 나를 잊게 한다.

1.2km정도를 지그재그 발 옮긴 그 길이 문폭 갈림길에 이르자 이름도 희한한 ‘물깨말구구리길’이란 걸 알게 된다.

 

 

‘물깨말구구리’은 ‘강촌=물가마을=물깨말’의 변천 음에다 폭포가 골짝 구구마을쪽에 있다 해서 주차장에서 구곡폭포-문배마을-봉화산-주차장까지의 7.26km의 환상적인 트레킹코스를 일컬음이다.

나는 오늘 문배마을에서 구곡폭폴 거처 주차장까지를 트레킹한 셈인데 이렇게 멋진 길을 또 어디서 마주칠 것인가!? 하고 되 뇌였다.

구곡폭포는 봉화산의 절애바위를 아홉 굽이치며 뛰어넘는 50m물길인데 그 웅장함이란 우람한 빙벽이 입증하고 있었다.

 

 

협소한 골짝은 빙벽을 타야 비로써 하늘과 맞닿게 되는데 겨울엔 빙벽타기애호가들의 꿈의 도전장이기도 하다. 사다리계단을 타고 폭포 앞 전망대에 선 나는 거대한 빙벽에 압도당했다.

마침 저 아래선 빙벽타기애호가들 몇 분이 준비에 한참이었다. 그네들의 짜릿할 긴장과 스릴이, 그리고 인내의 통증과 성취감이 느껴진다.

 

 

시간이 없어 구곡폭폴 뒤로하고 소복한 물깨말구구리길을 밟는다. 물길은 보이질 않는데 눈 속의 바위골밑을 흐르는 물소리가 적요한 골짝을 재우는 자장가처럼 은은하다.

길가엔 이따금 쌍기억(ㄲ)음의 글자 팻말이 서있다. 끝,깔,꼴,끈,꾼,깡,꾀,끼,꿈 9자를 운 때어 스토리텔링을 엮으며 구곡폭포를 담아가라는 지자체가 제시하는 어젠다였다. 여럿이 동행할 땐 그럴싸한 명제란 생각이 들었다. 허나 오늘 나처럼 홀가분하고 적막한 산행엔 한갓진 정취에 취하며 트레킹하기가 좋을 듯하고.

 

 

설국의 골짝을 걷는 호젓함의 맛이란 상상불허다. 인간은 서서 걸으면서부터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걷기란 끊임없는 나의 혁신이다. 걸으면서 지나치는 모든 정황들은 나의 정신의 식량인 탓이다.

소복으로 성장한 만물상들! 발밑서 깔리는 눈의 신음소리! 간헐적으로 울리는 물소리가 전부인 가장 단순하고 절제된 자연의 경외를 오감 체험하는 겨울산행은 나를 살찌운다.

 

구곡정을 거쳐 주차장에 다가서자 또 하나의 빙벽이 오금을 못 펴게 한다. 이건 구곡폭포를 안내하는 길잡이 인공폭포라. 물이 쏟아지는 폭포보다 더 멋있을 것 같단 생각은 나뿐일까?

오늘 쉬엄쉬엄 다섯 시간을 공들인 외로운(?)겨울산행은 나의 추억창고에 쌓여 눈감을 때까지 나를 흐뭇하게 할 것이다.

2014. 0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