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팍 `웰니스 길 트레킹

 

펜션 레이(강원도 평창군 봉평면)를 나섰을 땐 새벽6시 반쯤 이였다. 앙상한 꺽다리 삼나무 숲에 걸린 검푸른 하늘은 까맣게 탄 삼나무로 촘촘히 울타릴 쳐 그믐달을 가둬 놓고 있는 거였다. 야윌 데로 야윈 달이 추위에 부르르 떨며 가끔 얼굴을 내밀곤 하는 살얼음한파 속 어둠을 헤쳤다.

 

시퍼런 밤공기는 대기까지 얼려 입김마저 움츠리게 한다. 하늘아래 가장 가까운 골짝이어서 일까. 시리도록 아픈 한파는 검푸르도록 투명하고 살아 움직이는 건 죄다 감각할 수 있으련만 오직 미동하는 놈은 그믐달뿐이라.

아이젠에 스페치까지 착용하고 스틱으로 중무장한 나는 무시무시한 동장군이 나타나도 끄덕 안할 몸단속을 한 채 휘팍(휘닉스파크) 스키장을 향했다.

 

펜션단지를 에두르는 산책로는 많은 적설로 끊겨서 트레킹 할 수 없단 걸 어제 관리인한테 들은 터라 휘팍`웰니스길을 트레킹하기로 했다.

웰니스길은 스키장을 에두른 치유의 코스로 5.3km란 데 여기서 잰걸음으로 반시간은 가야 들머리에 닿을 수가 있단다. 내가 굳이 새벽을 택한 건 오늘 같은 강치엔 상고대를 마주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땜이었다.

 

 

아침 7시가 지나 스키장에 들어선 내게 펼쳐진 휘팍은 어둠 한 꺼풀씩을 걷어내며 광활한 은빛설경을 산등성이에 만들고 있는 거였다. 이제 막 새벽셔틀버스 한 대에서 내린 직원들이 뿔뿔이 헤쳐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휘팍 관리하는 아저씨께 웰니스길 들머리를 물어 리조트 뒤 방향으로 눈길을 밟았다. 그 치유의 길은 휘팍사정에 정통한 사람 외엔 비장(?)의 길인 셈인데 길이 났을까 싶단다.  리조트를 향하는 눈길이 뽀드득 이를 갈며 내 발밑에서 신음하고 그 경쾌한 파열음은 새벽의 찬 공기를 가른다.

 

아까 버스에서 쏟아진 직원들을 실은 리프트가 서서히 새벽의 공허를 향해 움직이다 길고 희멀건 슬러프에 잡혀먹히고 있다. 스키장과 리조트를 에둘러 길이 있을 곳이라는 상상도 못할 꾸꿈스런 데에 웰니스길 들머리가 있었다.

스키어들이 생뚱맞게 트레킹 할 필요가 없어선지 치유의 길은 소복이 쌓인 눈에 세 넷명의 발자국만 각인시키고  배고픈 들짐승의 외로운 족적이 간헐적이다. 기묘하게시리 기분이 좋다.

 

 

하늘아래 가장 가까운 골짝이라서 눈이 많이 내린 걸까. 하얀 산록엔 나목들이 불탄 부지깽이가 돼 수없이 박힌 채로 첩첩중첩 파도를 일구고 있다.

검푸른 하늘은 흰 산능의 파도 탓에 더욱 냉랭하고 휑하다. 빙 둘러선 준령들이 아님 검푸른하늘은 금새 폭삭 내려앉을 것 같은 탱탱한 긴장의 공간, 이윽고 태기산(1261.4m)이 검은 머리를 태우며 하늘 한 쪽이 붉어온다.

 

산에서 여명을 맞기 얼마만인가! 더구나 나 혼자 오롯하게~!

오직 하늘 아래 하얀 고산(高山)뿐인 겨울산 한 가운데서 해맞이를 한다는, 적막의 시공간에서 움직이는 것도 나뿐인, 죽음(?)의 누리에서 뜨거운 불덩이를 마주한다는 감격은 일생에 처음이자 막지막일지도 모르잖은가! 

이런 기회란 전문산꾼이 아닌 내겐 일생에 한 두번이나 경험하게 될 행운일 것이다.

 

여명에 알몸뚱이 들어낸 자작나무들이 몸 씻는지 반짝거린다. 붉은 햇살은 산골을 훑으며 붉게 물들이며 흰 눈밭에 내려앉아 어림할 수 없을 다이아몬드가 된다. 그 수많은 반짝거림에 잠자는 나무가 놀래 미동하고 짐승이 눈을 뜨며 삼라만상이 일어나 세상을 깨우며 하루를 시작케 함일 것이다.

걷기예찬자 헨리데이비드 소로는 ‘창작의 영감을 얻기 위해 걷는다.’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직업적 산책가’라고도 말 했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명작<월든>을 썼을 테다.

뿐이랴, 파울로 코엘료는 남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 서쪽 끝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은 후 처음으로 쓴 소설이 유명한 <순례자>였다. 이른바 인구에 희자되는 ‘산티아고 가는 길’말이다.

 

푹푹 빠지는 눈길은 나름 정감이 솟는다. 그 고독한 산보는 찬만큼의 냉철한 이성을 깨우치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늘아래 가장 가까운 산록에서 살다죽은 나무는 시목이 되도 여느 산이 흉내 낼 수 없을 하얀 솜이불로 호사한다. 아니 두터운 솜이불은 잠자는 푸나무 모두에게도 프리미엄급이다.

등허리엔선 땀이 흐르고 목덜미로 훈김이 오르는데 손끝은 시려 더이상 스틱을 움켜잡을 수가 없다.

 

 

쉼터가 있어 육포와 물병을 꺼냈다. 근데 물병의 물은 어름 알갱이가 됐고 병뚜겅은 얼어 열리질 않는다.    체감온도 십 몇 도를 넘나드는 새벽의 백두대간을, 설산을 홀로 오롯하게 감지한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산행이다.

아침8시가 넘었는데도 새소리도 없다. 소리, 움직임, 냄새도 없는 삼무(三無)의 세계에 몇 시간을 빠져든다는 고독한 산책은 산님이 아니곤 결코 누릴 수 없음이다. 걷는 자기만의 실존에 절대몰입할 뿐이다. 

 

 

솜이불 속에서 생 잠자는 산죽군락지대를 지나 빼곡한 편백나무골짝으로 들어서자 적설량은 무릎을 덮친다. 며칠 전에  걸어갔을 고라니 발자국이 공룡발자국만 하다. 골짝을 넘나드는 아침햇살에 편백나무가 기이한 실루엣퍼포먼스를 펼치곤 한다. 멀리 산능선의 나무들은 고숨도치털처럼  쭈볏쭈볏 하늘에 박혀 시퍼렇게 물들이고 있다.

 

 

A코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B코스 2.7km가 이어져야 함인데 발자국은 지방도6번도로 내려섰다. 나도 더 이상 B코스를 갈 엄두가 나질 안 해 6번도로를 타고 휘팍방향으로 걸었다. 휘팍스키장을 한바퀴 휘돌것 같았던 웰니스길을 여기서 그만둬야 한다는 아쉼은 두려움에 묻었다. 예서 스키장까지 얼마나 될지는 오로지 상상의 몫이다. 내 스마트폰도 불통이라 방법이 없었다.

 

 

 

산골을 휘도는 6번 도로를 40여분쯤 걸으니 고층한화리조트가 산마루에서 고갤 내민다.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였다. 몹씨 반가웠다. 9시가 되가고 있었다. 식사는 어찌했느냐?는 아내에게 한 시간 후쯤 도착할 것 같으니 그때 하겠다고 했다. 스키장은 리프트가 오락나락, 러프엔 벌써 많은 스키어들이 설원을 질주하고 있다. 내가 도착해야 애들이 체크아웃하고 스키장을 향할 테다.

 

 

설원에서의 활강은 젊은이들의 특권일 것 같다. 그네들이 부럽다. 하지만 저들 대부분은 설원에서 스피드 아닌 트레킹의 열락이 어떤 맛인지를 얼마나 알텐가?

 일상에서 잠시 짬내어 제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여 보람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의 자기를 반추해 본다는 생활의 한 축은 고상한 삶이려니!  오늘 우리부부를 이곳에 머물게 해 준 세 딸들과 사위, 특히 싱가포르에서 부러 시간내어 모두 함께 자리하게 만든 효성에 감흡한다.

                 2013. 12. 26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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