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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영원히 사랑한다'는 거짓말

‘영원히 사랑한다’는 거짓말

 

사랑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사람 생각이 떠나질 않은 채 웬만한 일엔 건성건성 집중력이 떨어져 마음 가눌 수 없는 상태로, 오매불망 만나는 시간을 꿈꾸는 마음이다.

그런 사랑의 열망이 법의 보호막인 결혼이란 틀 속에서 아름답게 만개하기를 기약하지만 사랑의 얼굴은 어느새 카멜레온처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랫동안 ‘배우자 이외의 사랑’은 불륜이란 (유교)성도덕문화의 잣대로 죄책감에 옭아매 불편함을 은폐했던 위선을, 작금의 미디어는 밤낮으로 까발려 금기시 했던 성문화를 일상화함으로써 ‘누군가를 사랑함’을 적나라하게 엿볼 수가 있게 됐다.

하여 불륜이 ‘누구나 꿈꾸며 하고 있는 짓’으로 양성화 돼 그 행위 자체를 지금에선 좀은 안도하며 향유, 로망 하는 세상이 됐다.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은 이젠 절반밖엔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 된 셈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음은 우리나라 이혼율이 작금 50%대를 향하고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차마 이혼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일 테니 말이다.

더구나 결혼 4년차 미만의 이혼율이 25%를 넘어선다는 건 사랑과 결혼이 어떤 함수관계인지를 생각게 한다. 사랑하여 결혼했던 커플 열 명 중 서너 명이 결혼 4년을 넘기지 못하고 헤어지는 현상을 어떻게 결론할 수 있을까?

하긴 사랑의 효력이 고작 3년 정도란 걸 이미 뇌과학자들이 연구 발표한 사랑의 논문에서 밝힌 바 있다. 사랑에 빠져들면 분비되는 호르몬‘페닐에틸아민’이 지속 되는 기간이 길어야 3년이란 게다.

사랑의 효력이 3년이란 말은 역설하면 3년이 넘도록 사랑하고 있다는 말은, 사랑이라기 보단 의무와 의지 그리고 이별할 여건과 용기의 결핍으로 울며 겨자 먹는 식의 자포자기로 숨죽이고 있음을 말함이기도 하다.

사랑의 약효가 3년이란 건 역사문화에 수 없이 나타난다.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의 묘약도 효험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트리스탄은 자기를 증오하고 있을 이졸데에게 자신의 칼을 주며 죽여 달라고 애원하자 이졸데는 시녀 브란게네에게 독약을 만들게 하여 칼 대신 독약을 건냈다.

트리스탄이 주저 않고 받아 마시자 그녀는 얼른 잔을 뺏어 나머지 독약을 자신도 마셨다. 독배를 나눠 마신 두 남녀는 쓰러져야 했으나 멀쩡하게 서서 응시하다 뜨겁게 포옹한다. 독약은 사랑의 묘약-포도주였다.

이졸데도 트리스탄을 죽도록 연연했던 거였다.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다'는 사랑의 열병을 앓던 두 연인도 숲속으로 도망가 지낸 사랑의 시간은 3년 이였다.

세기의 비극 <천일의 앤>도 결혼해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 딱 1000일 걸렸다. 헨리8세는 왕비와 이혼하고 남의 약혼녀-앤을 파혼시켜 결혼하려다 로마교황청이 반대하자 국교를 성공회로 바꾸며 끝내 결혼했다.

사랑의 노예, 화신 같았던 왕의 열정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녀를 단두대에서 처형시키고 말았다. 왕의 페닐아틸아민은 사랑이란 마약을 3년마다 새로이 복용해야 생성되는 호르몬이었을까?

키에르고르의 미친 사랑도 예외 없이 3년간 이였다.  키에르고르는 27살 때 16세의 레기네 올센을 만나 일생을 바쳐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며 매달리다 채 3년도 되기 전에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져야한다’는 이유 아닌 이유를 들먹이며 이별을 선언했다.

그는 올센을 꼬시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했던 것처럼 헤어지기 위해 별 망나니짓을 다 한 미친 우울증 사랑이었던 것이다.

사랑이 애증이 아닌 행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어떤 행위가 필요할까? 국민소득이 우리의 십분의 일밖에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부탄왕국이 행복지수 세계1위인 까닭은 무얼까?

수려한 자연, 오랜 고유문화, 기초생활의 사회보장, 투명한 왕정정치 등 여러 복합 요인이 있겠으나 내가 생각키론 자유스런 애정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성욕)은 사람에게 있어 식욕, 명예욕과 함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다. 자연스러운 본능을 억압하거나 죄의식으로 올가미 씌우려는 어떤 잣대도 감정의 순수성을 핍박해선 안되는 것이다.

부탄사람들은 미혼기혼자를 떠나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의 사랑이 진솔한 거라면 하등의 차별이나 죄의식을 갖지 않아도 되는 프리섹스(?)연애관을 향유하고 살아간다. 그 자유스런 연애, 누군가를 사랑하는 원초적인 감정에 어떤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할 테다.

촘촘한 법망과 규제의 사회가 행복지수를 낮춘다는 건 정설이다. 남녀가 사랑하면 결혼이란 울타리를 법이란 이름으로 처 보호해 주는데, 오늘날엔 그 결혼이란 보호막이 사랑의 요람이 되진 못하고 있음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하며 살아갈 순 없다. 사람은 애초부터 사람 없인 살아갈 수 없고, 사랑 없이도 못 사는, 타인과 관계 맺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게 일생이기 땜이다.

다만 사랑도, 행복도 먼 곳이 아닌 내가 서 있는 곳에 이름표도 안 달고 얼굴도 없이 나그네처럼 서성대고 있다는 어느 시인의 독백을 생각해 보게 한다.

나그네를 붙잡고 자기를 쏟아 부을 일이다.

2014.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