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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김장이 가져다 준 행복

김장이 가져다주는 행복

아내가 아니, 주부들이 겨울문턱에서 가장 고심하게 되는 일 중의 하나가 김장일 것 같다.

금년엔 배추값이 싸서 69포기를 샀다지만 양념값이 만만찬하다고 맘 조이는 아내를 따라다니며 김장준비의 맘고생을 체감하느라 나도 덩달아 조바심이 났다.

우리네 김장은 출가한 두 딸네와 둘째 몫까지 챙겨야하니 네 가정 분을 해야 함에 아내는 이맘때면 사나흘간의 전쟁을 치르느라 또 다른 파김치가 되곤 한다.

배추를 갈라 소금물에 담그는데 셋째가 배추는 언제쯤 사느냐고 전화로 물어와 나는 무의식 중에 지금 간질중이라고 실토하고 말았다.

매년 김장철만 되면 언제 하느냐고 묻는 애들의 성화를 적당히 둘러대 그들의 나들이를 용케 피하곤 했던 아내의 연막전술이 오늘 나의 주둥이가 산통을 낸 꼴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좀 있다 전화벨소리가 요란하다.

이번엔 세 딸이 동시통화를 시도하면서 내일 김장하러 오겠다는 거고 수화기를 바꿔든 아내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손들고 말았다.

아내가 힘든 김장을 하면서도 도우러 오겠다는 딸들의 성화를 한사코 뿌리쳤던 건 꼬맹이들을 대리고 와서 거든다는 게 수선 떨고 복잡 부산 하여 오히려 신경 곤두서게 함이기 십상일 거란 생각에서였다.

배추폭을 쪼개서 소금물에 담구고 마늘, 파, 미나리, 생강, 청강 등을 손질하여 갖은 양념을 준비하는 걸로 첫날의 작업을 마무리하는 아내의 심부름 한 나도 지레 파김치가 됐다.

둘쨋날이 샜다.

아니 날 새기 전에 아낸 간수에 절인 배추간을 보다 씻어야 한다기에, 나는 간수에서 배추를 꺼내 꼬투리를 잘라 아내에게 주면 아낸 맑은 물에 행구고, 나는 다시 그걸 받아 대나무채바지에 가지런히 쌓아 간수가 잘 빠지게 하였는데 실은 이 과정이 제일 힘드는 작업 이란게다.

아내는 다시 찹쌀로 풀을 쒀서 고춧가루와 새우젓갈, 잘게 썬 채소`배 등을넣어 버무려 양념장을 만들고 난 마늘과 생강을 절구통에 넣어 빻아주는 걸로 오전을 마쳤다.

김장의 맛은 양념장의 맛이 좌우 한다지만 실은 간수를 만드는 오래된 천일염과 신선하고 고소한 젓갈 맛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다.

마침내 오후 6시쯤 두 딸이 여섯 살, 네 살, 세 살배기 애들을 대리고 도착했고 집안은 순식간에 돛대기시장이 됐다.

난방비를 절약한다고, 보다는 살 부대키며 얘기꽃을 피운다고 일곱 식구는 안방에 잠자릴 깔아 긴 겨울밤의 역사를 쓰기로 했다.

세쨋 날, 아내와 두 딸이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는 김장을 하고 난 배추를 나르는 일 외 심부름으로 본격 김장이 시작됐다.

꼬맹이들은 어린이용만화 프로그램으로 안방에 붙들어놓은 채.

아내와 두 딸이 머리를 맞대고 오순도순 얘기꽃을 피우며 김장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조금은 번잡하고 신경이 날 서더라도 힘 드는 일에 가족이 나서 상조하며 뜸했던 정을 나누는 자리는, 핵가족화 한 오늘날 온 가족이 행복에 충만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잔칫날이 아니겠는가.

십여 년 전에만 해도 아낸 김장때면 친구들 대여섯 명을 불러 진종일 부산을 피웠었는데 몸 고됨이 더 하드라도 단촐함이 좋았던지 언젠가부터 그 북새통도 사라졌었다.

그 잔칫날이 오늘은 가족들만의 것이 돼 더 보기 좋고 뿌듯하다.

딸애들 덕에 김장은 오후 3시쯤 끝났다.

새 김치에 곁들어먹기로 한 삼겹살 수육만찬은 둘째가 도착하는 8시가 넘어야 했다.

둘째는 근무가 끝나는 오후6시에 ktx를 타고 귀가한다기에 나는 역으로 둘째를 마중 나갔었다.

출입구를 뛰쳐나온 둘째가 잽싸게 나의 팔짱을 낀다.

만찬이 시작됐다.

사위 둘다 다 외국에 나가있어이렇게 모여도 갱킬게 없어 좋다고 맞장구를 치는 딸들은 내 앞에서 음주하는 일도 다반사가 됐다.

사위가 부재하니 제끼리 모이는 횟수도 빈번하다. 하여 아내도 덩달아 서울 나들이를 한다.

음주벽은 아내를 닮았던지 제법 즐기고, 한 수 더 떠안주를 집어 내 입에 넣어주는 짓도꺼림이 없다.

이런 땐 아빠가 아니라 남친이 된다.

오늘밤 아내와 세 딸들은 김장 핑계 삼아 코 빨개지게 생겼다.

사는 맛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는가!

넷쨋 날은 모두가 늘어졌다.

간밤은 담소에, 술에 취했던 탓에 늦은 아침식사를 간단히 입가심하고 오후 2시 삼해횟집에 들어섰다.

우럭새꼬시 5인분과 애들 몫 전복죽을 주문했다.

두 시간동안의 점심자린 기분이 그리 좋을 수밖에 없었는데 계산대에 선 둘째는 횟집주인께 6만원을 별도로 선불 맡겨 놔 우릴 흐뭇케 했다.

우리내외가 한 번 더 즐기라고 덤 쏜 셈인게다. 그런 식의 효도를 둘짼 곧장 하곤 했다.

골드싱글 이어서만은 아닌 둘째의 배려심과 깊은 맘 씀은 천성이려니!

그가 있어, 그가 스폰이 돼 우리가족의 오붓한 식도락의 자리는 더더욱 잦음도 사실이다.

북부시장통을 걷다가 첫째가 부채과자점에서 아내가 좋아한다고 한보따리를 사더니만, 뻥튀기과자집이 나타나자 이번엔 셋째도 또 한보따리를 들고 온다.

선물공세에 상기 된 아내는 어린애가 된 듯 핀잔 아닌 투정(?)을 부리다가 오거리 귀퉁이에 비치파라솔을 앞세운 가게로 들어갔다.

호떡집 이였는데 가게라기엔 넘 초라하여 비치파라솔로 단장(?)을 했을까?

녹슬고 삭아 구멍 난 양철판으로 얼키설키 얽어 만든 호떡집은 호떡 굽는 불판 옆에 솥을 걸치고 꼬쟁이에 낀 어묵을 삶아 팔기도 했는데 손님이 줄을 섰다.

아예 자리가 없어(3평남짓한 짜투리라)모두가 서서 후후 불어재키며 뜨겁고 은근한 맛에 빠져들고 있음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증명할 뿐 꾀째째한 양철움막은 세월을 까마득히 잊음 이였다.

아내도 호떡 10개를 쐈다.

뜨겁고 달짝지근한 맛은 충만한 행복 씹기였다.

거기 선 모두가 초겨울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았다.

뜨거운 호떡을 집게로 들고 히히덕대는 꼬맹이들의 얼굴이 나의 얼굴일 테고 거기에 서서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모두의 얼굴일 듯싶었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그 시간에 함몰된 내 자신 이겠다.

즐김에 빠져든 정지 된 시간이 행복 이였다.

그 즐김의 시간 - 화기애애한 행복의 시간은 자정까지 지속도고 있었다.

안방에 모두 취침자릴 폈다.

애들이 뒤척이는 소리, 숨소리, 때론 방귀소리까지 따뜻한 방안의 행복 속에 끼어들어 간을 맞추고 있었다.

가족은, 식구는 같이 밥 먹고, 같이 웃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숨 쉬며 간혹 방귀도 뀌어대며 살 부대끼는 삶이여야 행복하다.

김장 맛은 갓 담은 새 김치 맛도 일품이지만 오래 익은 묵은지가 더 깊은 맛과 영양이 있듯이 식구도 오래도록 살 비비며 오만 정 다 나눠야 생의 진정한 행복에 들 수가 있을 것 같다.

김장이 가져다 준 또 다른 맛과 행복에 충만한 사흘 이였다.

2011.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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