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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혜미!

금년도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자마자 추윈 무섭게 달려와 심신을 움츠러들게 합니다. 밤새 잔뜩 눈을 뿌려 하얀 세상을 만들어서만은 아닌 내 마음이 이토록 하얗게 바래고 뭔가에 가위눌린 것 같이 움찔 해지는 건 돌아 선 미아 탓이 더 클 겁니다.

미아가 준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것도 짧은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달콤한 축복일지 모른다는 데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안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한다면서도 미진함은 어쩌질 못했는데 그대에게 고백하면 조금은 응어리가 풀릴까? 라고 생각하니 다소 의기소침에서 헤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내가 미아를 알게 된지는 5년쯤 됐습니다. 잔인한 달 4월 중순, 남해에 있는 샤랑도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페리호 갑판에서였습니다. 그녀가 쪽빛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다도해의 풍광에 빠져있을 때 내가 아는 채를 했었지요.

그러니까 그보다 이년 전이었지요. 지리산행 때 여자분 혼자 여간 힘겨워 하면서 산을 오르고 있어 ‘어디 불편한 데 있느냐?’고 내가 말을 걸었고, ‘아니다, 오랜만에 산행하려니 힘들어서다.’라고 쑥스럽다는 듯 대답했던, 그래 몇 마디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생각났던 땜 이였지요. 그녀도 나를 대뜸 알아봤습니다. 우연한 재회였지요.

그런 후, 며칠 지나 전활 했고, 우린 아주 오랫동안 만나온 사이처럼 가까워졌습니다. 처음엔 그녀가 당돌하다는 생각에 미적댄 나였지만, 시간이 더해지면서 순진하고 솔직하여 쉰 살을 바라보는 여자가 저렇게 천진할 수도 있을까? 할 정도여서 까칠한 내 혹심이 미안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난 그녀의 오빠며 애인이 됐지요. 직장녀인 빠듯한 일상 탓에 한 달에 한두 번 만나곤 했는데, 그것도 내가 일방적으로 내 편리한 시간에 약속을 통보하곤 하여 주말이면 그녀는 나의 메시지에 따르기 위해 어떤 약속도 안했을 정도로 올인 하고 있었단 걸, 한참 후에 그녀의 고백으로 알고서 얼마나 미안·뿌듯했는지 모릅니다.

그녀의 그런 순수에 매료돼 나의 이른바 ‘적당히 엔조인’이란 끼는 늦깎이 열정으로 변질 됐지요. 그녀는 나를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었습니다. 매번 내가 사양을 해야 했으니까요.

불륜의 달콤함 - 이른바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의 짜릿한 낭만(?)의 세계로 깊이 침잠해 들었지요. 난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어쩌다 한 달 동안 만나질 못하면 안달할 정도로 우린 빠져들었지요. 이 나이에 사랑을 엮는다는 사실에 난 행복했습니다.

그런 행복에 취하게 해 준 미아는 나의 천사였지요. 짐짓 난 그녀에게 안아주는 것 외엔 아무 한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 그녀의 무반응의 한 원인이 나의 그런 맹숭함 땜일수도 있단 생각을 해보게 합니다. 더는 미아의 되돌아섬은 그녀가 이제야 불륜이란 감당키 벅찬 위험한 도박 같은 불확실한 결과에 대해 심사숙고 하게 된 자성일거란 추측도 해보는 거지요.

아무튼 미아는 메아리가 없습니다. 한 달 전, ‘살면서 가장 맘 아픈 일은 보고픈 사람을 못 보게 됐다는 사실이고, 더는 억지로 그러길 참아야 한다는 괴롬이다’라고 띄워 보낸 내 메시지에 ‘난 5kg이나 빠졌답니다.’라고 답을 줬을 뿐입니다.

난 이제 미아의 건강과 행복을 빌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메시질 띄운다는 건 어쩜 그녀를 더 괴롭히는 짓일 것 같아서이지요.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면 그 능력이 감퇴한다.”라고 유명한 일본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지요.

사랑으로 상처 받고 괴로워하는 것도 짧은 생에 얼마나한 축복인가를, 그래서 미아에게 고마워하는 겁니다.

혜미!  그대에게라도 요즘의 나의 심난한 우울을 쬠이나마 실토할 수가 있어 좋습니다.

어쩜 그댄 더 가까이 할 순 없는 영원한 멘토로써의 연인인지도 모릅니다.

그대가 있음도 나의 축복이지요.

시답잖은 넋두리 참고 읽어주시길~!

2012. 12.                         -깜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