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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예쁜 인연 - 민혜의 결혼에 부처

예쁜 인연 - 민혜결혼에 부처

예쁜 인연 - 민혜결혼에 부처

“민혜 시집가버리면 허전해서 어쩐데?”

“할 수 없지요, 연습한 건 아니지만 민혜(간호사)가 직장근처에 방 얻어 가끔 떨어져 산지가 이년쯤 돼 괜찮을 겁니다.”

민혜가 태어나면서부터 모녀간에 살다 딸 시집보내는 민혜엄마의 허허할 심경을 걱정된다는 듯 한 나의 말에 병주(민혜삼촌)가 날 안심시키기라도 해야 한다는 듯 대꾸를 했다.

오늘 결혼하는 민혜가 서른두 살이란다. 내 기억이 아련하지만 민혜엄마는 결혼하자마자 이혼을 했고, 민혜는 제 엄마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증명하려고 생긴 결혼선물 이였다. 난 그 소상한 사연을 모른다. 다만 민혜엄마는 결혼선물인 민혜를 키우는 일에 일생을 담보한 청빈의 삶을 살아왔고, 분신이나 마찬가지일 딸을 결혼시킨다기에 지켜보지 않을 수 없어 새벽길을 재촉했던 터였다.

신혼이란 보급자릴 뛰어 나올만한 아픔과 갓 난 애의 엄마란 중압감과 가난을 인극해가며 살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지조와 의지 속에서 민혜의 행복에 일생을 투신해서였을 게다.

하여 오늘 민혜의 결혼은 신랑신부가 축하 받아야할 축제의 장이기 전에 민혜엄마의 인간승리를 박수쳐야 할 자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설까? 민혜엄마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아니, 어쩜 32년을 같이 해온 분신을 때어내야 하는 어쩔 수 없을 아쉼을 삭히려는 고소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거였다. 민혜네와 우리네와의 인연도 민혜엄마의 일구월심처럼 질기고 예쁜 시간 수놓기라!

벌써 서른일곱번의 해가 지났나싶다. 진해해군통제부에 볼일이 있어 고속버스로 마산에 내린 난 시내버스를 타고 땅거미 어둑해지는 항도 진해시내에 내렸었다.

마산도 진해도 난생 첨인데 어둠까지 더해 여관이 얼른 눈에 띄질 안했다. 마침 뒤 따르던 아가씨가 있어 여관 있는 방향을 물었다. 친절하게 가르쳐 준 아가씨는 아까 나와 시내버스에서 동석했던 처녀였다. 얼마가 지난 후, 난 당분간 진해에서 생활해야 됐고, 그래 자취방을 구해 서울의 아내를 불렀었다. 또 며칠이 지났을까. 아침에 마당에서 마주친 처녀! 시내버스에서 동석하고 여관 쪽을 가르쳐준 아가씨였다. 나의 진해행에 첫 동행자이고, 진해에서 말문을 트고 친절을 받은 첫 진해시민이며, 첫 진해생활을 시작한 집의 한 울안 사람이 됐다. 그렇게 인연 한 우린 한 울안에서 몇 년을 동고동락하면서 가족 같은 유대를 쌓아갔었다. 그 유대관계가 신뢰와 미쁨이란 나이테를 지금까지 그어가고 있는 셈이니 참으로 아름다운 얼굴들이라!

그 처녀의 언니가 민혜엄마요 아래론 동생 정란이와 병주가 있다. 병주는 프로야구선수생활을 하다 야구심판으로 변신하여 KBO에 적을 두고 프로야구경기가 열리면 잘난 체구에 독특한 모션으로 공간을 맘껏 요리하고 있어 우리를 흐뭇하게 하곤 한다.

오늘 그의 아내와 다섯 살배기 아들을 마주함도, 박서방(처녀 신랑)과 두 딸들의 친절 속에서 같이 점심을 나누는 기쁨도 말 할 수 없음 이었다. 다만 언니(아내)를 동반하지 안했다고 모두가 나를 면박(?) 줘, 아내 인기가 더 좋은 것 같아 변명하느라 멋쩍었다.

관계 맺기는 쉬어도 인연으로 이어가긴 지난하다. 좋은 인연 만들기란 상대에 대한 겸손이고 나를 내려놓음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상대 앞에 나를 낮추는 겸양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삶을 사는 길인 것이다. 인연의 가장 예쁜 모습은 결혼일 테다. 민혜의 신랑도 잘 난데다 ‘현대모비스’멘이기에 장래가 촉망된다 하겠다.

민혜의 결혼이 아름다운 인연으로 죽음까지 이르기를 축원한다. 특히 결혼이란 인연을 끊어야했던 민혜엄마의 한을 민혜가 대신 더 하기를 기원해 본다. 민혜가 엄마 아닌 신랑과 맞는 밤을 열차는 힘차게 질주하고 있다.

우리가 처녀네와 한 울에서 살기 얼마 안 된 어느 날, 4남매를 홀몸으로 키우시던-가장이기도 했던 아주머님께서 외출하시어 갑자기 졸도 입원했으나 의식불명인 채여서 운명 직전에 내 등에 업혀 집에 모시기까지의 황망하고 급박했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던 무력감과 더는 거구에 몸까지 풀어버린 아주머님을 낑낑대며 안방에 모셨던 심난했던 정황이 귀로 차창에 주마등처럼 스쳤다. 병주는 그때 몇 살 이였을까? 너 댓 살쯤?

참으로 심성이 착한 4남매라. 그들을 알게 돼 오늘날까지 기쁨을 공유할 수 있음도 나의 행복이리니.

민혜야, 행복해라. 넌 엄마 몫까지 살아옴이니 행복도 두 배일 거다.

2012. 1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