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현종과 양귀비의 치명적인 사랑
시안 진시황릉 북쪽에 화청지가 있다. 당나라 때 현종이 애첩 양귀비와 질펀지게 사랑불꽃을 피우기 위해 만든 온천장인데 양귀비의 반라모습상이 있고, 당의 시인 백낙천(백거이)이 그들의 사랑을 시로 표현한 장한가가 곳곳에 쓰여 있다.
장한가 마지막 구절에 ‘비익조’와 ‘연리지’란 유명한 말이 나오는데 오늘날 때어놓을 수 없는 사랑을 일컬을 때 쓰는 유명한 표현이 되었다.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인적 없는 깊은 밤 약속한 말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비익조가 돼 하늘을 날기 원하며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선 연리지가 되길 바라네
양귀비란 여인을 만나기 전까진 당현종은 경국치세의왕 이였다. 황후 무혜비가 죽자 현종은 간택령을 내리고 간신 고력사는 양옥환을 불러내 현종의 술좌석에 앉혔다. 양옥환은 현종의 18번째의 아들(무혜비 사이에서 낳았다)인 수왕(이모)의 아내이니 현종의 며느리이기도 하다.
양옥환은 산시성 출신으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쓰촨성 숙부(양립)집에서 자랐는데 가무에 능한 미인 이였고 17세때 이모와 결혼 하여 6년이 된 23세의 여인 이였다. 며느리미색에 한 눈에 반한 현종은 수작을 부려 그녀를 화산으로 보내 도교의 도사로 입문시켰다. 도가입문은 그간 속세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몽땅 지워지게 한다는 속설에 따라 시아버지와 며느리란 부도덕한 비방을 면하기 위한 꼼수였다.
아들을 내쫓고 그녀를 품에 안을 때 현종의 나이는 57세였고 ‘귀비’로 책봉하여 화청지에서 오직 사랑놀이에만 빠져들었다. 양귀비는 겨드랑이에서 액취가 심해 해당탕에서 온천욕을 즐겼는데 다행인 것은 현종이 비염을 앓고 있어 냄새를 못 맡았다는 사실이다. 천생연분 이였다 할 것이다.
현종은 양귀비를 일컬어 해어화(解語花;말을 이해해 주는 꽃)라 칭송했다. 둘이 사랑의 미궁에 빠져 든 어느 때부터 지방호걸인 40대의 안록산을 양귀비가 가까이 하자 6촌 오빠인 양국충이 시기하여 그를 모함하려하자 안록산이 난을 일으켜 장안으로 침입한다.
무기력한 현종은 귀비을 대동하고 피난길에 오르는데 ‘안사의 난’이 양귀비와 양국충 일당 땜이라고 신하들이 현종에게 그들을 죽일 것을 간청했다. 사랑보다 목숨이 중했던 현종은 양귀비가 고력사의 손에 이끌려 마외파 근처 불당 앞 배나무에 비단으로 목매 죽는 걸 외면해야 했다.
양귀비나이 38세였다. 고작 10년의 부귀영화-미인박명이란 말이 나올 만했다.
'사랑하는 사람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쁜 인연 - 민혜의 결혼에 부처 (0) | 2012.12.03 |
---|---|
사랑의 하늘 계단(愛情天梯) (0) | 2012.11.30 |
이사도라 던컨& 세르게이 예세닌 (0) | 2012.11.22 |
스파게티 파티 (0) | 2012.03.12 |
석양의 우렁잡이 (0) | 2011.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