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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석양의 우렁잡이

석양의 우렁잡이

 


어젠 새벽2시 반쯤 군산에서 익산엘 오는 전군도로엔 소나기가 얼마나 퍼붓던지 시야가 침침하여 두렵기도 했지만 어린애처럼 들뜨기도 했답니다. 난생 첨으로 심야의 폭우 속에 텅 빈 자동차전용도로를 질주하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 말이외다.

상향등을 줄곧 켜고 신바람이 나서 폭우를 부셔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속도를 줄이지 않는 나를 옆에서 불안하게 지켜보는 아낸 못마땅해 여신 주의와 핀잔을 하며 좌불안석이지만 난 마이동풍 이였지요. 그 실 이 더위에 들뜨긴 금요일 오후부터였죠.

 

서울처제부부가 휴가차 와서 백수주제에 덩달아 피서 핑계를 대고 동행해 깝죽대다 일요엔 군산 처남댁으로 몰려가 진탕 놀다 귀가하는 길이였으니 신날만 했지요. 일욜 군산에서 머물다보니 그대생각이 납디다. 군산하면 이젠 인보가 맨 먼저 생각되고 또한 전엔 느끼지 못한 살가운 호감이 가는 건 지역에 대한 호불호의 선입관이란 게 극히 사적인 치졸함에 기인하기도 하단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대는 무더위에 어찌 보내는지? 하긴 하고 싶은 일에 파묻히다보면 삼매경에 이를 테니 백수에 농땡이나 부리는 나완 피서의 느낌부터 다르겠단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 석양 땐 우렁이나 잡으며 피서와 먹거리수입(?)이란 일거양득을 노린다고 목천포 들녘 농수로를 잠자리채를 들고 두어 시간 왔다리 갔다리를 반복했지요.

 

수로 벽을 타고 수면가까이 올라온 우렁이를 잠자리채로 긁어 올리는 재미는 더위를 잊게 합니다. 그렇게 외면당한 태양이 작열하다 일그러져 군산 쪽으로 사라지며 벌겋게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데 누군가는 저 붉은 노을을 노랗다고 끝끝내 우겼다지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말이외다.

그의 자화상을 대하다보면 석양의 노을 같은 색깔로 인상파 아니랄까봐 찍찍 문질러버린 강열함에 빠져들게 되지요. 그가 며칠 전인 7월29일(1890년)에 처절한 생을 스스로 마감했었지요. 아니, 이틀 전 파리 교외 오베르 쉬르우아즈의 들녘에서 자기 가슴에 권총을 당겼다지요.

 

정신까지 망가진 그를 서른일곱 해를 뜨겁게 박동치는 심장을 향한 총알이(명중하지 않고)부위에 박혀 죽지 않은 그는 의식을 회복해 스스로 자기가 묵고 있던 라부여인숙 3층 다락방으로 기어들었고, 그렇게 이틀을 버티다 29일 새벽1시 반쯤 절명한 게지요.

 

찌져지게 가난하고 불행했던 그는 두 달 전 라부여인숙에 묵으면서 해 뜨고 눈만 뜨면 그림그리기에 몰입하다 그림 그리는 기력이 다 소진이라도 했던지 자살한 게지요.

두 달 동안 53점의 그림을 그리고 노랗게 석양빛으로 그의 그림-해바라기처럼 사라지려 했던 게지요.

 

난 그의 자살을 옹호하려함이 아니라 불꽃처럼 온 몸의 기력을 다 쏟아 부어 작품을 만들곤 생을 마감하려했던 정열과 집념의 의지가 부러운 게지요. 일생동안 할 일을 두 달 동안에 해치워버리고 구차스런 미련일랑 거두는 삶을 택하려 했던 그의 그림들은 더 진한 영혼이 깃든 것만 같습니다.

 

그대가 화가여서일까? 오늘 석양의 우렁잡이 하던 들녘에서 문득 해바라기처럼 노랗게 저무는 태양을 보다가 고흐를 생각게 된 게지요. 야생화작업 진척이 좋은지? 아님 먹물 홍건이 적신 붓끝은 어떤 화선지에 어떤 혼을 그리고 있음인지? 그대의 대박(?) 난 삶 건강 잘 챙기시라.

2011. 0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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