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탁송 - 난 괴로워
미륵산 등산 후 찜질방에서 굼벵이 짓하다가 아내와의 약속시간인 5시가 돼 어슬렁대며 나온 난 차에 올라 문짝 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전화 세통에 메시지가 다섯 번 왔었다. 그 메시지 중에 우체국에서 온 메시지는 <고객님 EMS EM1149-73273KR은 10/25. 10/20 배달 시도했으나 미배달, 수취인대기요>라고 써 있잖은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큰애(주리)에게 전활 넣었으나 받지를 않는다. 그때 아내가 승차했다.
“여보, 김치가 도착 했나 본디 주리가 없어 배달 못했나봐.” “벌써? 왜 배달 못해?” “연락이 안 된 모양이야.” “전활 해 보지?” "안 받아.” “올때가 됐음 신경 좀 써야지 어딜 갔디야.”
그 그저께 싱가포르로 국제탁송한 김치는 오늘 오전10시20분 배달을 시도 했으나 수취인과 연락이 안 됐다는 내용이다.
“휴대폰은 왜 차에 놔두고 다니유?” 아내가 한방 쏜다. 아침에 미륵산 등산시 놔두곤 이제 꺼내봤으니 힐난 받아도 싸다.
10시 반에 메시지 왔으니 그때 알아서 주리에게 연락했음 진즉 찾아갔을 게 틀림없을 텐데 휴대폰을 방치한 죄(?) 얻어터져도 싸다. 아내와 난 주리와 사위에게 전화질 하느라 차안은 긴장이 흘렀지만 이내 불통 - 서울 둘째더러 싱가포르 사위회사로 전활 넣으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연결 된 딸에게 아내는 “10시 반에 김치배달 갔다는데 넌 어디 갔냐?”로 시작해서 모녀간에 한참 동안 긴박한 수다가 이어졌다.
설마 오늘 배달되겠나? 싶어 대책 없이 외출한 딸애도 아내로부터 한방 맞은 셈이다.
싱가포르는 상하(常夏)의 날씨여서 땡볕 난전에 하루를 방치했을 김치는 어찌 됐을지 자못 상상이 안 돼 아내의 속도 부글부글 끓을 테다.
아파트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이라는 화물탁송처는 오늘업무가 끝나 별도 약속을 하고난 뒤 귀가하여 직접 찾으러 가야 되고 그렇다보면 두 시간은 더 걸린다는 거였다.
죽일 놈은 나였다. 휴대폰을 나 몰라라 방치했으니 아내의 투정은 고스란히 내 몫일 수밖에 없었다. 일욜(21일)에 아낸 배추, 갓, 파김치를 만들어서 화욜에 묵은 지와 함께 포장하여 우체국국제탁송편에 싱가포르로 보냈었다. 운송 중에 혹시 변질 될까봐 노심초산데 걱정 덜라고 빨리 도착했나 싶은 걸 하루 동안 방치한 셈이니 아내의 속은 우거지가 됐을지도 모른다.
먹거리, 특히 김치는 따뜻한 동남아지방에 보내기가 뭣해 (홍콩서 살 때도 그랬다) 딸네나 난 극구 말리는 편이다.
이번에도 모녀간에 전화질 하다가 김치얘기가 놔왔을 테고 사양하는 딸에게 아낸 우격다짐으로 ‘잔소리 말고 엄마성의니까 먹기나 해’라고 위엄(?)을 떨었을 것이다.
화욜, 비닐봉지에 넣은 김치를 우체국에서 미리 준 20kg들이 알미늄사각통에 넣을 때도 애들 감기약 5병과 피부연고 5개를 (시민권이 없는 딸네는 현지병원비가 엄청 비싸다)삽입했는데 우체국에서 내용물 검사시 병류는 안 된다고 해 그걸 꺼내다 김치비닐봉지가 터져 다시 집으로 싣고 와 재포장해야 했다.
20kg 탁송료가 8만 원정도라 이래저래 현지에서 사먹는 게 (맛이야 없지만)번거롭지 않고 현실적이라고 딸애부부나 나도 만류하지만 아내의 자식을 향한 애정공세 앞엔 약발이 없다.
밤 9시쯤 전화가 왔다. 김치를 찾아 왔단다. 비닐봉투가 부풀어 터져 국물이 넘쳐 심난했는데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보니 그렇게 뿌듯하고 옹골차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단다.
새김치가 오는 동안 알맞게 익었던지 맛이 환장하겠단다. 내일부턴 반찬 걱정하지 안 해도 밥을 그릇 반은 거뜬히 먹겠다고 사위가 에든벌룬을 타고 있었다.
난 사위의 김치사랑을 익히 알고 있다. 기다란 김치가닥을 썰지 않고 그대로 숟갈에 얹혀 밥 먹는 폼을 부럽게 쳐다보곤 했으니 말이다. 김치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사위의 게걸스럽게 김치 먹는 모습을 신기한 듯 보곤 했었다.
사실은 아내의 김치탁송 우격다짐도 그런 사위사랑의 일환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 당신은 딸네 김치 조달할 참이야?”
“이젠 지들이 손수 만들어 먹어야지 당신 죽으면 어떻할건데?”
나는 그렇게 아내에게 쏘아대면서도 그게 자식을 향한 내리사랑이란 걸 알기에 아내의 수고덜기에 나서고, 아내의 잔소리를 마이동풍 식으로 받아들인다.
딴 사람들에겐 비록 맛이 기똥차지 않아도 자식들은 어미의 손맛이 세상에서 최고인 법이다. 어미의 손끝이 만들어 준 음식을 평생토록 먹고살아왔으니 자식들의 혀는 엄마의 손맛에 가장 예민할 게 아닌가!
딸네의 김치 얹어 밥 먹는 풍정이 눈에 선하다.
201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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