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달래 결혼식에 초대받지 않은 훼방꾼들 (영취산) ★
am7;10,
매스컴에서 접했던 국회의원선거를 아침 일찍 출발하는 영취산행(어제 총무님께 연락하여 서부산악회에 처음 끼어들었다.) 버스 속에서 실감했다. 무소속의 G씨가 지역과 국가를 위해 일할 동량은 본인이라고 출마의 변을, K씨는 낙천했어도 애향애국에 일생을 살아가겠다고 불출마의 변을 하고 있었기에 선거철임을 실감케 했는데, 그들의 애향 - 우국충정이 이른 아침부터 바지런을 떠니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찌 탄탄대로가 아니 될 것인가를 애써 긍정하려면서도 정치인들의 언행이 팩션이 하 심해 고소를 어찌하지 못했었다.
그들의 읍소에 시가지의 옅은 어둠이 거둬짐인가? 그때야 버스는 출발했다.
17번 국도에 들어서자 남원시가지가 먼발치에서 얼굴을 내밀다 사라지고 산자락에 산수유가 노랗게 붓질을 하고 있다. 흩뿌린 노란색깔이 진회색산 밑에 바짝 엎드린 촌락에 봄을 일깨우고 있고 차창을 기웃하던 샛노란 개나리가 빠르게 달려와 달아나곤 한다. 산골 옹색한 들판을 노랗게 도배질 했는데 띄엄띄엄 매화가 뭉텅뭉텅 흰점을 찍고 하얀 목련이 소복한 여인처럼 동구를 지키고 서있었다. 근데, 언제부턴가 차창을 훔칠 것 같던 개나리가 벚꽃으로 변해 멀찌감치 끝없는 행군을 하고 있지를 않는가. 길이 트인 곳엔 벚꽃의 행렬이 이어진다. 그 행군은 사방에서 모여들어 구례시가지를 에워싸고 봄 햇살을 머금어 산뜻한 사진 한 장으로 담았다.
싱그런 4월이 품어다준 신선한 풍경화를 즐기는 여정은 일상탈출을 시도한 내게 더없는 낭만과 상쾌함 이였다. 벚꽃의 행렬이 길을 밝히며 나를 줄곧 따르다가 순천시 입구에서 사라진다.
am11;30, 여수석유화학단지를 누비다 호남정유 앞에서 버스는 나를 풀어놓았다. 진달래축제 행사를 한답시고 온천지가 난장이였다. 그 난장에서 삐어져 나온 울긋불긋 차린 산 꾼들이 영취산으로 엑서더스 하고 있다. 거기에 나도 끼어들었다. 잰걸음 할 필요도 없게거니와 할 수도 없는, 사람 띠로 연결되어 산정을 오른다. 산중턱부터 영취산은 불타고 있었다. 갈대밭인가 진달래 밭인가. 군데군데 불 지핀 빨간 진달래가 저 아래 광양만 바다를 밤새워 애무하고 온 바람에 가볍게 하늘거린다. 온갖 해찰 다하며 30여 분을 오르니 암릉이라.
조금 더 오르다 파수꾼처럼 서 있는 소나무그늘아래서 점심까지 곁들어 죽칠 양으로 배낭을 풀었다. 빨간 볼에 점 몇 개를 찍고 해맑게 웃고 있는 진달래가 수술 몇 개를 내보이며 교태를 부리고 있다. 난 볼펜을 꺼냈다. 그리고 낙서를 한다.
그대들이여한 둘씩 피워라
그 붉게 타는 가슴 다 벌리면
내 어찌 감당하리.
그대들이여
한꺼번에 웃지를 마라
그 해맑은 미소 가 없으면
내 눈길 줄 데가 없으리.
빠알갛게 번진 농염한 미소
타는 네 가슴에
미쳐버릴 것 같은
내 타는 맘일랑 어쩔손가.
ㅡ<진달래>ㅡ
그들은 무엇 땜에, 언제부터 이곳에 군락을 이뤄 우리의 눈을 뺏는가. 모듬살이가 좋아서겠지만 인간이란 동물이 이렇게 떼거지로 몰려와 훼방꾼이 될 줄은 예전에 미처 생각 못했으리라. 결혼식을 올려야 되겠는데, 그래 매파(媒婆)가 와줘야겠는데, 사람들 땜에 벌 나비가 와 주질 않겠구나. 그래 우린 불청객이라. 그들 결혼식에 훼방꾼일 뿐인 것이다. 문득 생각난다.
린네(스웨덴 식물분류학자)는 꽃을 말하기를 “가운데 자리에 한 여자(암술)가 드러누워 있고, 그 주위를 남자들(수술)이 빙 둘러앉아 사랑을 한다.”고 했다. 그 사랑은 결혼식이 거행되어야 비로써 완성된다. 꽃들도 결혼(수분:受粉)적령기가 되면 암술이 더 탐스러워 윤기가 나며 분비물을 분비해 합궁을 준비하는데 이때 자기의 종 이외의 꽃가루는 사양한단다.
매파가 날라 온 꽃가루를 감지하는 인식물질이 암술에겐 있어 다른 종의 꽃분은 거절한다니 하찮은(?) 꽃들의 생존의 신비에 어찌 경외하지 않을 손가.
그 생명의 신비를 우린 산행 중에 마주치는 그들에게 그저 탄성으로만 지나칠게 아니라 감탄케 하는 그들 자신으로 들어가 한 번쯤 생각해 볼일이라. 진정한 산 꾼, 산 사랑하는 산 꾼이라면 말이다.
영취산 정상에서, 푸른 바다를 안고 은빛 반짝거리는 늘비한 기하학적공작물이 이룬 석유화학단지가 뒤에 진달래 불바다를 엎고 있어 21세기 문명의 극명한 대비를 조감케 한다.
봉우재까지의 하산 길엔 소사나무가 특유의 알통배기로 육체미를 자랑하고 있었고, 봉우재 아랫길엔 때죽나무가 영토를 넓히고 있었다. 매끄러운 검은 피부가 싫어 울퉁불퉁 잔뜩 몽니를 부리고 있는 그도 연초록 새싹을 움트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오니 이젠 서어나무와 상수리과 나무들에게 그들도 자리를 내주고 있다.
미끈한 서어나무가 상수리나무와 세 싸움질을 한다. 계곡에 조그만 물웅덩이가 듬성듬성하더니 내려갈수록 물줄기를 이뤄 드디어 내을 이룬다. 불청객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어 구린내 나는 발을 담그고 있다. 나도 다시 배낭을 풀고 물가에 앉아 청정수를 손과 얼굴에 끼얹었다. 상쾌하다. 무성한 나목들의 나지 끝에 연초록새싹이 갸웃하고 있다.
어디서 나비 한 마리가 날라 와 내 앞 물길 가장자리에 앉더니 목을 축이기를 두어 번 하다 자리를 떴다. 아니, 또 한 마리 흰나비가 그가 떠난 자리를 몇 번 선회하다 내려앉아 갈증을 풀고 있다. 어디 꽃님들 초청으로 분주히 충매(蟲媒) 노릇하다 목이 탓나보다.
영가산 흥국사에 닿았다. 대웅전 삼존불 뒤 골방에선 공주대생들이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켜들고 비게 위에서 작업하느라 숨소리도 조심한다. 그들이 작업하는 탱화는 바로 부처님 뒷면이고 부처님 전에선 불자들이 한참 참배중이어서였겠지만 작업에 임하는 학생들이 참으로 진지했다.
임란시 전소 된 사찰을 인조 때 보조국사가 중창했다는데 그때 그린 삼존불 뒤의 벽화는 희귀한 백의관음상(白衣觀音像)이라. 세월의 때에 찌든 훼손방지와 탱화연구를 위한 작업이란다. 천왕문을 나서서 보니 사찰규모가 상당하다. 다시 일주문까지 쉬엄쉬엄 발길을 옮기는데 길 한 쪽에 쭉 늘어선 동백이 동백기름을 바르고 봄 햇살에 반들거리며 핏빛 꽃잎을 활짝 벌린 채 노란 수술을 듬뿍 내밀고 있다. 그들도 조매(鳥媒; 동백은 유일하게 새에 의해 수분한다)님을 애타 기다리지만 우리들 등살에 새들이 올 리가 없겠다. 이래저래 사람들은 훼방꾼으로 자연파괴범도 되고 있는 것이다.
결코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인 사람들, 남의 성스런 결혼식에 훼방꾼으로 소란을 피워대는 우리들, 그런 추한난장은 세월이 다가올수록 해마다 심할 텐데 말이다.
우리들은 그 점을 알고나 자연탐방에 나서는 산 꾼이 되어야 하리라.
서부산악회는 풍성했다. 모든 게 그럴 것 같았다.
08.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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