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변, 봉변, 봉변 (월악산)


3년 전이였던가? H형과 설악산에서 일박하고 장대비를 피하여 남행하다 월악산 자락 충주호에 닿았다. 충주호 선착장 맞은편 높지 않은 괴암바위벼랑 산이 너무 멋있어 쇠줄과 씨름하며 정상에 올라서, 이내 젖은 옷가지 홀라당 벗어 저 밑 검푸른 호수를 가르는 유람선을 향해 고래고래 악을 쓰며 흔들어 댔었다. 나의 미친 듯 흔들어대는 깃발(?)에 유람선에 승선해있던 소인(?)들도 손사래를 치며 소인국사람답게 모기소리마냥 가늘게 화답하고 있었던 충주호와 그를 품은 월악산! 그 월악산엘 오늘 갈뫼 사람들이 안내한단다.

산행은 덕주골 학소대에서 시작되었다. 옛날 누가 그 큰 바위를 잘라냈을가? 천길 수직 단애에서 풍만한 마애불이 등산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마 커플들은 거기서 덕주공주와 마의태자가 되어 천여 년을 이어오는 밀어를 나누게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마애불과 덕주사 터를 휘둘러 오르는 암벽 등산로는 이제부터가 월악산임을 웅변하고 있었는데, 오늘따라 청주대 동아리들이 하기방학을 맞아 M.T를 와서 마지막 날 등반길에 오르고 있어서 좁고 가파른 등산로는 정상까지 인파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있었다.

짐짓 암산 틈새틈새 자생한 초목들에 녹색만을 허용한 월악산은 흔한 야생화 한 송이도 피우지를 안했는데, 울긋불긋 걸친 등산객들의 현란한 옷 색깔에 산은 신음하고 있을 것 같았다.

거대한 바위들로 쌓아올린 험준한 월악은 수령이 지긋할 참나무과 활엽수와 그의 사촌들이 하늘을 가리고, 소나무는 열악한 바위틈에 고단한 세월만큼 휘어져 곡선미를 뽐내는, 애초부터 월악(月嶽)은 험준한 산새를 숨기고 밤에만 그의검은 등걸 꼭지에 달님을 맞아 신령한 자태만을 선뵈게 하며 독야청청 살고 싶었을 게다. 그 신령한 자연[월악]을 인간의 호기와 이기심이 난도질하며 속살을 만지려 벌거벗기고 헤집고 있음이다.

정상, 영봉(靈峰:1.094m)에서 조망한 사위는 맑은 날씨여서 하늘 끝까지였다. 서북쪽엔 산자락 속에 그림처럼 자리한 충주호가 꼬리를 감추고 있고, 호반을 품은 산릉들은 어깨동무하여

백두대간에 닿아 아스라이 치악산과 소백산 덕유산까지를 눈 안에 안겨주고 있었다.

영봉을 잊는 가파른 쇠사다리 길. 오르는 자와 내려가는 자의 기대와 감격,

고행의 한숨이 교차되는 소음 속에서도 몇몇 분들은 비닐봉지에 쓰레기까지 알뜰히 챙기는 수고로움을 즐긴다.

“오늘 내가 걷는 길 위에 나의 흔적이 뒷사람에게 걸림돌이 되거나 불쾌감을 갖게 함은 죄악이다.”라는 말을 되새김질 해 본다. 더는, “오늘 내가 걷고 머문 곳은 시간이고, 지나친 곳은 역사다”라는 말도 곱씹어 본다.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시간이고 그 한 걸음의 족적이, 오늘 지금 이 시간이, 그렇게도 갖고 싶어 했던 어제 죽어 떠난 자들의 애절한 소망의 시간 이였음을 생각할 때 참으로 귀중한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방금 걸은 역사의 장이 해프거나 경망한 족적이어선 안 됨을 되씹어 보지만, 여태 이기심의 포로가 된 채 살아온 타성 탓에 타인 앞에서 안하무인이 되는 행태는 쉬이 버리지 못하고 있음이다. 영봉에서 다시 중봉에 오르고 내림 길, 살아 있는 초목은 죄다 혼신을 다해 반사시키는 녹색의 짙은 눈물과 하늘을 가린 이파리들의 그늘이 주는 신선함에 취해 계곡 마당바위에 곤한 몸을 잠시 맡기며 오전의 해프닝(?)을 떠 올려본다.

새벽에 선잠채로 달려 온 갈뫼버스는 휴게소에서 20분간 숨을 고르겠단다. -<월악산에서 조망한 충주호>-

그때 화장실에서 조우한 후배-8개월만의 만남으로 얘기꽃을 피우다가 버스를 30여 분간이나 붙들어 놓았겠다. 우리 둘 땜에 10여 분을 갈뫼인들은 하품만 하고 있었을터, 10x40=400분이라. 그네들의 황금시간을 허락없이 7시간이나 꿀꺽 삼킨 나였다. 불식간에 폭식하여 민망과 고소(苦笑)감만 팽배해진 나는 신산한 트림만 삼키며 차창을 스치는 풍광에 휑한 눈길을 팔고 있었다.

그 죗값 이였던지 하봉의 깎아지른 절벽아랫길을 돌아 하산하면서 시루떡바위(갈뫼인들이 몇 달 먹어도 될 만큼 컸다)을 목전에 두고 쬐그만 돌멩이 하나에 농락당했다.

돌멩이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고 솟은 돌에 키스한 엉덩이는 멍든 만큼 아렸다.(귀가하여 응급처치를 했다) 그래도 급경사지가 아니어서 천만다행 이였다고 자위했었다.

갈뫼인들이여! 그대들 시간 10여 분씩 빼앗아 먹은 벌 값으로 땜빵하고 싶은데 박수쳐 주실런지? 엉덩이방아를 찧는 순간의 내 쌍통이 얼마나 일그러졌는지를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음에 그 분들께 진위여부의 궁금증은 귀동냥하시라.



그 얼얼한 엉덩이를 가끔 문지르며 하산하다 기억에도 사라졌던 산딸기를 발견하곤 정신없이

따서 냉큼냉큼 목구멍에 처넣다, 초등시절의 즐겁던 아련한 추억 한 토막까지도 꺼내 씹어 먹었다. 달콤새콤한 즙을 빤 후의 쩝쩝한 씨까지를 씹는 떨뜨름한 맛이라니!

아~!! 그리운 노스탈지어에 가슴 조이며 내려오는데 왠 목탁소리, ‘딱따다르르ㄹㄹ-.’

보덕암 스님은 참으로 영민하게도 중생들의 휴면중인 경건심을 일깨우곤, 차고 시원한 청정수 한 사발씩을 보시하고 계셨는데, 난 여기서도 나의 타는 내장을 실컷 해갈시키고 얼굴까지 씻어 뭉갰다. '딱따다르르ㄹ--'! 스님의 보시를 몇 사발 챙기고 나 몰라라 목탁소리 뒤로하고 내려오는데 눈에 띄는 야생화무리들, 개망초와 톱풀이 지천으로 그 조그만 미소를 경쟁하듯 활짝 웃어대고 있었다. 월악산에서 맞는 처음의 꽃님 이였고 꽃 잔치 마당 이였다.

보덕암자 길 초입이 하산 종점.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예의 뒷풀이 자리가 만들어 졌음인데, 갈뫼장의 공양(?)으로 맥주 한 잔에 저육김치찌게 먹는 맛은 어떤 성찬에 비할 텐가.

마애불상 바위 뒷길에서부터 영봉입구까지의 평탄한 길엔 아름드리 활엽수가 우리를 영접했는데 영봉 밑 초지위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갈뫼장은 여간 살가웠었다.

쑥 개떡에 복숭아 캔, 생수가 나의 점심메뉴였기로 한사코 밥을 퍼 주는 갈뫼장은 정 뿐이 아니라 강단 있고 기백이 넘친, 자신감이 은연중에 묻어나 친밀감이 솔솔 풍겼다. 내가 그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 같아 미안함을 안으며 그에게 무한이 감사하는 바다. 아니 세 번째 갈뫼인들을 따르다보니 어색한 낯설음도 덜게 됨은 그들의 친절 탓이라.

갈뫼인들이여! 그리고 갈뫼장님, 감사하외다. 07. 06. 17

Posted by peppuppy(깡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