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소골로의 외도 수도산) ★


내가 먼저 출발했다. 그들도 잠시 후 텬안먼광장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얼굴을 가린 이곳 하늘과는 달리 거긴 산뜻하고 밝아 보였다. 처음엔 봉달이의 얼굴도 보였다. 허나 그의 모습은 잠시, 케냐의 완지루와 그의 친구들의 스피드를 쫓느라 카메라는 바쁜가?

봉달이를 잊었나보다. 내가 질주하고 있는 고속도엔 푸른 하늘이 안보이듯이 봉달이도 도통 보이질 않는다. 베이징은 언제부터 저리도 산뜻해 졌을까? 수많은 인파와 그 인파만한 자전거는 어디로 증발했을까. 마라톤코스야 당연타 싶어도 연계된 주변도로도 말끔하다.

인민의 고충이 상상된다. 완지루와 네 명의 동색(同色)이 베이징대 앞에서도 애초의 스피드로 질주하고 있다. 봉달이가 궁금하다. 그만 외면하자. 차라리 휙휙 달려오는 초록나무들을 마주한다.

경북 김천 수도산 나들목인 우두렁재에 닿았다. am10:30분이 되 있었다.

무성한 잡목 속으로 뛰어 들었다. 산님들이 잊었던지 여기 등산로는 수풀에 뒤덮였다. 사람냄새가 뜸했던 만큼 부엽토의 쿠션촉감도, 메케한 발효내음도 신경을 마취시키며 원시적 분위기에 빠져들게 한다. 울창한 숲이 뿜는 숨결엔 열습(熱濕)이 농해 이마에 땀이 솟는다.

왼편엔 온갖 잡목이, 우측엔 잣나무가 확연히 영역을 그었다. 반시간을 그들의 침묵을 지켜보며 발을 땠다. 갑자기 얕은 골 맞은편에 홍의병[赤松]이 산 한 자락을 완전히 점령하여 난무(亂舞)하고 있다. 식재한 잣나무가 자생 적송에 바통을 넘긴 거였다.


적송들의 무언의 아우성일지도 모른다는, 어쩜 처절한 몸부림일거라 생각됐다. 그 격한 몸짓에 휘어진 몸매가 매력적이다. 뻣뻣하고 밋밋한 잣나무보단 부드러운 리듬의 곡선이 적송을 더 아름답고 여유롭게 함이다. 거기에서 새싹을 만났다. 그녀를 동행하는 산행에선 궁금증을 해갈할 수 있어 내겐 행운이라. 그녀가 나의 수풀에 대한 무식을 하나씩 덜어주는 멘토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알바 없다는 듯, 난 일방적으로 궁금증을 묻곤 했었다. 요컨대 나는 나만의 자족에 빠짐 이였다. 그녀의 반응을 빤히 읽을 순 없었지만 싫은 내색을 못 느낌에 용기를 냄이다.

정금나무 사촌(?)이 가뭄에 콩 나듯 빨간 팥알 하나씩을 달고 있고, 아직 설익은 열매는 연둣빛이라. 생김새가 말발굽 같아서일까, 이름이 ‘말돌이굽’이란다. 그 열매보다는 조금 큰 빨간 꽃망울을 무던히 달고 진종일 앞서 길 안내를 하는 꽃이 ‘며느리밥풀’이라고 새싹이 가르쳐 주었다. 그 쏠쏠한 재미에 난 그녀의 길잡이를 기꺼워함이다.

언제부터 아니, 좀 전인 듯 누군가가 다져진 부엽토를 엉망으로 갈아엎어 놨다. 멧돼지의 수작임에 틀림없다. 애벌레나 나무뿌리를 찾아먹기 위한 뒤집기의 궤적일 테지만 부엽토에 신선한 공기를 주입시킴에 숲에 영양소 만들기를 거들고 있음이라. 자연은 어떻게 해서든 서로 상부상조한다. 멧돼지의 난동은 그가 수도산의 먹이사슬 맨 정점일 것임을 부엽토가 증명하고 있었다.

새싹한테서 갈증을 풀며 한 시간쯤 녹색터널을 걷고 있는데 넓은 신갈나무 잎 사이로 햇빛이 쏟아졌다. 숲실이 밝아진 만큼 가슴이 트였다. 따가워도 반가웠다. 그 햇살이 이파리톱칼에 잘려져 한 덩이씩 숲 바닥에서 뒹굴고 있다. 그 햇살덩이를 서로 차지하려 풀들이 두리번거린다. 쪼개진 햇살이 새우란이 길게 뽑은 꽃대에 매달려 막 피우려는 꽃망울을 열려고 안달하고 있다. 그 많은 꽃이 활짝 피면 새우란의 등허린 곱사등이 되겠지. pm1시를 갓 넘겨 수도산을 눈앞에 갖다놓고 점심시간을 붙들고 있는 백제인들 자리에 닿았다. 발 들여놓자마자 후배님이 복분자술 한 컵을 내민다. 날 위해 아꼈단다. 고마움을 어찌해야 함인가! 뿐이랴, 늦게 끝낸 나의 식사를 기다려 마태오님이 신도복숭아와 포도 몇 알을 남겨 준다. 내가 그들에게 후의를 입을 일을 한 적이 없음인데-.

난 그들에게 뭘 베푼 다는 생각의 ‘ㅅ’도 해보지 안했는데···.

pm2시를 넘겨 수도산정상(1317m)에 섰다. 서쪽에 덕유산이 엷은 안개 속에 숨어선, 산릉 한 자락을 지렁이 기어가듯 꿈틀대며 하늘을 기다 가야산을 만들곤 해인 가람으로 자지러 들었다. 뿌연 시계(視界) 너머로 산세는 미망 속에 그림자들을 가두어 미궁의 신비로 감싼다. 그래서 자연은 싫증이란 단어를 모른다. 그 무궁무진함 땜에 산님들은 산을 떠나지 못한가싶다. 사위가 산릉이고 긴 등걸만큼 골짜기가 깊었다. 통일신라 말, 풍수지리학의 시조 도선(道詵)스님도 분명 여기에 와서 산세(山勢)에 반해 저 아래에 수도암을 창건했을게다. 정상에서 수도암 가는 하산 길은 잘 다듬어졌고, 육산이 주는 푸근함까지 더해 해찰하기 안성맞춤 이였다

한 시간여를 용소골짜기 숲 터널을 걸었다. 스님께서 헌안왕(859년)때 세웠다는 청암사(수도암)에 닿았지만,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셨다는 대적광전도 외면하고,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골짜기에서 들여오는 물 울음소리 찾아 나섰다. 골짜긴 깊고 숲은 빽빽 울창하여 물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의 울음소리가 나의 발길을 따라오며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길가엔 물봉선화(새싹이 준 앎)가 떼 지어 붉은 혀를 내밀곤 인산지 조롱인지를 하고 있다. 용소골 첫 마을 주차장에서 금강산(버스)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난 배낭을 그의 뱃속에 놓고 나왔다. pm3시 반이였다.


맥주 두 잔으로 갈증을 풀고 또 하나의 갈증을 달래려 마태오님께 양해를 구했다. 외도를 하겠다고. 그리고 등반대장과 기사님께도 외도를 고지하고 잰걸음으로 물 울음 따라 내리달렸다. 얼굴 없는 물은 울음소리로 숲 속 골을 알려온다. 입도도 없고 깊어 골짜기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15분 쯤 걸었다. 울음이 괴성으로 둔갑하여 숲을 흔들어대고 있다. 삐쭉이 난 숲길로 괴성의 발원지를 찾아 들었다. 서른 발걸음쯤 옮기니 밑이 낭떠러지다.

17m이상의 바위 절벽이 넓게 휘두르고 있는 검푸른 소(깊이3m)는 바위벼랑에서 쏟는 물 폭탄을 안느라 흰 거품을 뿜어댄다. 이름하여 용소폭포[龍湫]라~! -<라제통문>-

물을 떨어뜨리는 바위는 헬 수 없는 물과 헬 수 없는 세월을 앗아다 씻어낸 까닭에 희고 반들거린다. 반석바위 넓이도 덕석 너 댓개는 족히 깔고도 남으리라. 저만치 한 가족이 여유롭게 소풍을 즐기고 있다. 어정쩡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혹 만월담이나 와룡암이 어디쯤 있는지 아십니까?”

“글쎄요, 듣긴 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아래 어디에 있을 겁니다.”자녀 두 명을 대동한 부부는 경상도 말투였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난 용추를 빠져나왔다. 팻말도 없다. 인적도 없다. 10여분을 걷고 있었다. 승용차가 지나가다 U턴을 하더니 갑자기 내 옆에서 다시 U턴해 멈춘다. “혼자 걸어가시네요?” 아까 용추에서 뵌 가족 이였다.

“예, 수도산 등산 왔다 여길 찾아보려 먼저 내려왔습니다.”

“차는 요?”

“버스로 왔는데 저기 위에서 출발하면서 전화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도 보고 싶은데 같이 가실래요?”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난 뒤 자석에 올라탔다. 대구에서 왔다는 그 가족은 귀가 길에 나를 발견하고 같이 구경하자는 선심을 베푸는 거였다. 서로 갈 방향이 다른 우린 그렇게 해서 40여분 동안에 후다닥 눈요기로 답사를 끝냈다.

조선중기의 학자 정구(鄭逑:호는 寒岡. 1543~1620)선생의 무흘구곡(武屹九曲)중에 사곡(四曲=옥류동,만월담,와룡암,용추))이 이곳에 있음을 알고 답사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산행후의 뒤풀이 시간을 이용해 볼 참으로 양해를 구했던 외도였던 것이다.

한강선생은 퇴계(이황)와 남명(조식)으로부터 사사했고, 한사코 벼슬을 사양했던 철저한 자연주의 학자로써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여 많은 후학을 두어 영남예학의 대표로 우뚝했다.

선생이 사위가 고요하고 달 밝은 어느 밤에 제자들을 거느리고 만월담(滿月潭)에 이르자,

“이것이 천재심(千載心)이니라. 선비는 심회(心會)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씀 하셨는데 누구 하나 얼른 알아듣질 못했다. ‘천재심’은 ‘천년의 마음’ 곧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거울’이란 뜻 이란다. 그 마음을 놓지 말라는 당부였을까.

선생이 또 매화 백 그루를 심고 백매원(百梅園)이라 칭한 시엔 자연사랑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小小山前小小家 滿園梅菊遂年加 (작고 작은 산 앞에 조그만 집 지어 뜰 가득 매화국화 해마다 늘어나네)

更穀雪水欌如畵 擧世生崖我最奢(그림과 물을 더하여 그림 같은 자연 속 이 세상이 내 생애 가장 사치스럽네)

선생은 제자들에게 “고성방가로 산천의 고요를 깬다든지, 오물투기 행위를 절대 삼가라”고 주문하고 그런 행위를 비판했다. 4백 년 전의 선생의 경구가 지금에선 더 절실해졌음은 인간성의 퇴보일까? 어리석은 이기심일 것이다.


용소계곡엔 군데군데 쓰레기가 널려있었고, 스피커에선 그걸 개탄하는 선생의 경구를 전하나 싶었다. 뒤돌아본 계곡이 하 길고 물길이 우렁차다. 1150년 전 도선대사가 사찰을 세운 명당의 산세란 이런 곳이겠거니 하고 유추해 본다. 대사가 세운 사찰이나 탑이 전국에 서너 곳이 있는데, 그 터를 일컬어 비보사탑(椑補寺塔)이라한다. 수도산이 비보사탑을 안고 있음이다. 대구에서 온 그 가족이 날 내려주고 떠났다. pm5:10분을 흐르고 있다.

세상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순수성은 더 없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심성의 그 가족들 심저에도 영남의 대 스승 한강선생의 자연주의 사상이 흐르고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금강산이 달려왔고 난 그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흐뭇한 순간으로 몰입하기도 잠시 금강산 실내공기가 무겁다. ‘산님 한 분이 근육통을 앓아 무주 의료원에서 잠시 응급처치를 받고 가자’는 빅토리오님의 고지가 땅거미처럼 마음을 어둡게 한다. 집행부 간부들의 마음쓰임을 얼추 그려본다.

아름다운 심저의 따뜻한 숨결을 말이다.

응급실로 업혀 나갔던 그분은 반시간도 채 안돼 걸어서 버스에 올랐다. 다행이다.

무거운 공기를 털어낸 버스는 쾌속으로 밤을 질주하고 있다.

08. 08. 24

*무흘구곡 : 주자의 무이구곡을 따서 大加川 9군데를 노래로 읊은 곳.

1)鳳飛岩 2)寒岡臺 3)無學亭 4)선바위(立石) 5)捨印岩 6)玉流洞 7)만월담 8)臥龍岩 9)龍湫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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