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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사랑 받고 싶어 누운 여자 (여귀산女貴山)

★ 사랑 받고 싶어 누운 여자 (여귀산女貴山)


500여 년의 세월을 켜켜이 쌓은 거대한 비자나무는 구암사 입구에서 갈뫼인[갈뫼산악회원]들을 영접하고 있었다. 진도의 풍상을 온몸으로 지킴이한 거목을 만남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였기에 오늘은 등산 시작부터 여간 상서로웠다.

구암사 옆을 끼고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몇 발치 옮기면서부터 내내 난 감탄에 넋을 잃었다. 이렇게 무진장한 소사나무 군락지를 여태 본 적이 없기에 말이다.

소사나무(자작나무과 낙엽수로 잎은 작고 달걀모양이며 꽃은 단성화로 암수가 한 나무에 핀다)는 싻이 잘 돋고 가지가 무성하며 잎이 작고 수형 만들기가 좋아 분재로써 각광을 받는다. 소사나무 분재는 봄의 연푸른 새 싻, 여름의 녹음, 가을의 고운 단풍에 겨울의 앙상한 잔가지는 우리들에게 사계를 감상케 하여 분재쟁이에겐 끔찍이 사랑받는 수목 이렸다.

그 애목들이 기기묘묘한 자태로 산행 내내 나를 에스코트하고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뿐이랴, 얼핏얼핏 보이는 참빗살나무의 막 핀 연푸른 잎과 봄똥나무 이파리뒷면의 부신 은빛하며, 앙상한 나지들의 총총 위로 간간이 위용을 자랑하는 땅딸막한 소나무의 상록, 자생춘란이 봄을 맞을 채비를 하러 무거운 고개 내밀고 꽃망울 터뜨리기 부끄러워 수줍어 고개 숙인 앙증맞음에 시간을 잊는다.

높잖은 산등성 길을 따라 ‘귀하디귀한 여자 산(산정상이 여자의 가슴 같단다)’을 더듬다보면 쉼터이기 좋은 마당바위에서 그들 천태만상인 위용의 멋에 취하고, 남쪽으로 펼쳐진 다도해를 조망타 보면 이리도 빨리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음에 놀란다.

동북간 멀리로는 해남 두륜산과 완도 숙숭봉까지를 조감할 수 있다는데 안무 속에 겹겹으로 누운 산 등걸만 희미하게 내보일 뿐 - 해무(海霧) 속에 솟은 섬릉의 중첩들이 그 또한 일품이라. 다도해도 오늘따라 엷은 안무가 바다와 하늘 공간을 매우고 있어 군데군데 섬들은 검은 등걸만을 보이며 안무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음이 한 폭의 수묵화라! -<5백살의 비자나무>-


이따금 해풍을 실은 소슬바람은 나의 폐부 깊숙이 닿아 살갗에 소름 돋게 하였는데 그 바람에 노오란 싸레기 꽃잎이 놀란다. 어쩌다 홀로 외로이 자생한 생강나무가 진도의 봄을 혼자 만끽함인지 샛노랗게 만개해 있었다. 3월 햇살의 초록빛을 한껏 내뿜는 동백 잎사귀는 겨울 끝자락이 아쉬운지 진홍꽃을 아직도 피워대며 수북이 떨어진 그의 꽃송이들을 외면한다.

진귀한 나무들의 도열 속을 걷기를 한 시간여, 뜬금없는 산죽(山竹) 터널 숲을 지나며 찌든 일상의 때를 말끔히 씻고 발걸음은 춘란 이파리를 스친다. 수풀길섶에 가늘게 떨고 있는 재비꽃을 밟을까 조심조심, 막 살 오른 돈 나물에 입맛 돋우며 여귀산 정상아래 휘엉청 서 있는 소나무 그늘 밑에 비닐자리 깔고 김밥으로 허긴 배를 채운다.

멍석바위 틈새를 매운 바위솔과 바위옷들! 그들의 질긴 생명력과 척박한 바위와의 공생을 엿보려 했지만 콩 꺼풀 낀 내 안목으로 범접함을 용인할 그들이 아니었다.

허나 다도해를 그린 수묵화에 빠져 늘어진 눈꺼풀 치켜뜨고, 시원한 해풍에 폐 씻어내며 수풀의 발아(發芽)소리에 마음을 열게 되니 어찌 오늘의 산행이 즐겁지 않겠는가!?

그래서 산 꾼이 아니어도 산을 찾게 되고 산을 사랑하게 됨이다.

산은 우리에게 무한이 주기만 할뿐 어떤 대가도 요구치 않는다. 오늘 나에게 여귀산이 가져다 준 행복도 어느 이름모를 갈뫼인의 양보의 미덕이 가져다 준 선물 이였다.

am6:50, 예약제란 걸 모른 난 배낭 메고 갈뫼인들을 태우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서고, 총무란 사람이 좌석예약을 확인하여 승차시키는 장면에 난 엄청 낭패였다.

허나 돌아설 수는 없고 “처음이여서 예약을 안 했는데요?”라고 대단한 변명이라고 중얼댔다. 물끄러니 쳐다보던 총무 왈, “~ 안되는데 어디 일단 한 번 타보세요.” 어설픈 반승락에 쥐새끼마냥 버스에 기어들어 뒷좌석에 을씨년한 몸뚱아리 접어 넣었겠다.

버스가 움직이고 am7:00, 마지막 승차장인 듯, 꾸역꾸역-만원사례인 듯 우왕좌왕. 버스 비상구 쪽에 붙박인 된 디지털시계는 빠르게 명멸하는데 갑자기 나를 에워싼 뒷좌석의 젊은 몇 분이 우르르 하차한다. 이윽고 버스 출발. 그때 하차 한 몇 분은 영영 오르지 안했다.

그들은 나 같은 불청객 땜에 산행을 포기한 갈뫼 인들임을 한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좌불안석에 아웃사이더의 심경이란~~!??

그래 오늘은 철저한 아웃사이더이고 싶었다. 아니 그럴 수밖엔 없는, 나를 아는 사람이라곤 없는 외도톨 이였다. 때론 혼자일 때가 행복하다. 그래 외톨이의 멋을 난 꾀 즐기는 편이다.

혼자만의 여행 속에 즐기며 음미하고 취하는 고독한 행적의 깊은 맛은 몰라도 말이다.

-< 그곳 그를,

산을 귀녀라 했다 산은,



그녀는 성장을 잘 한다 그녀-ㄴ,

철따라 화사한 옷맵시를 선 뵌다

그녀가 부신 것은 분장 탓도,

뽐내려함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품안 것들을 사랑했고 그들은,

계절을 입으며 언제나,

침묵의 다도해를 위무했다 앙팡진,

소사, 동백, 해송들은

그녀의 시종일 뿐- -<여귀산에서 본 다도해>-

비밀 아닌 비밀을 바다는 알고 섬사람들도,

잘 안다 오백 살 살고 있는,

비자나무가 말 한다

그녀를 찾는 이에게··· >- 라고, 여귀 산에 말 걸어 본다.

그래도 혼자만의 옹골찬 은근함에 빠져보는 맛과, 삶의 끄나풀이 맺어 준 숱한 관계란 띠에서 풀린 해방구를 찾아드는 쾌재감의 매력에 난 가끔 혼자만의 여행길에 나선다.

갈뫼인들에게 미안코, 감사 한다.

하나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다음엔 예약하고 가겠소.”라고 다짐하는 게다.

07.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