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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계절의 여왕 맞기 (거금도 적대봉)


★ 계절의 여왕 맞기 (거금도 적대봉) ★


am6:10에 출발하는 갈뫼버스에 탑승한 난 고흥 녹동항에서 카페리호에 배차승(船車乘)하다 또 달리기를 4여 시간 끝에 거금도 금산정사 앞에서 첫발을 내 딛을 수 있었다.

5월의 녹색장원에 초라하게 붙박힌 농가주위에서 양파와 마늘(고흥의 특산물)을 수확하는 아낙네와 아주비들을 만나 손을 흔들어 가벼운 인사를 하며 싱그러운 숲 터널 속으로 빠져들었다. 소사, 때죽, 마가목나무가 여러 활엽 잡목과 어울려 따스한 5월의 햇살을 차지하려고 발버둥치는 적대봉 오르는 길목엔 이따금 줄기식물이 피워낸 큰꽃으아리가 단아하고 해맑게 미소 지으며 나를 맞곤 한다. 그 미소가 하 정겨워 코를 살짝 대보니 향마저 은은하다. 그놈을 앞세워 찔레꽃, 마가나무꽃, 백당나무꽃, 둥글레차의 쌀알 같은 꽃망울에 위안을 하면서 적대봉에 오른다. 없어졌다싶으면 나타나서 웃는 그 꽃에 난 반하여 시간을 죽인다.

착각은 자유라 했다. 그 꽃의 유혹이 나완 전혀 상관없는 자기의 짝(매파:곤충)을 부르기 위한 몸짓이고 유혹일 텐데 나는 속절없이 나의 해픈 맘을 내보임이다.

꽃이 향과 다양한 색깔을 갖게 되는 것은 수정을 시켜줄 곤충이 제각기 선호하는 색과 향이 다르기 땜이라. 일테면 빨강색을 좋아하는 곤충은 노란색깔을 외면하기에 자기들만의 종을 번식시키는데 용이하고, 그래 자기를 좋아하는 짝을 부르느라 유혹의 몸짓은 처절하단다.


매파(媒婆)도 여간 까타로워서 동종의 꽃이라고 아무에게나 수작 걸지는 않기에, 그 매파의 도움 없인 종의 번식은 기대할 수 없는 꽃들은 화려하게 단장하고 향을 뿜으며 고혹스런 교태를 부리고 있음이다.

그 유혹을 착각 아닌 착각으로 위안 삼으려하는 인간은 과연 고등동물인가? 온 산등성이를 깔아놓은 구들장 돌들은 적대봉까지 점령했는데 따가운 햇살이 내려쬐는 구들장위에서 점심 먹기가 한심해 20여m를 내려오다 내 키를 배는 넘길 때죽,소사나무가 엉킨 그늘 아래 구들장 돌덤이 위에서 집사람의 정성을 펼쳐 놓고 기갈을 해소한다. 여느 동네 뒷산의 평범함에서 빗기지 않을 야산의 능선타기의 연속이 하산 길 - 사위를 에워싼 희푸른 바다는 오밀조밀 들어 선 이름모를 다도(多島)들을 깨우느라 이따금 그들의 발뿌리에 하얀 포말을 뿌려대고 있었고, 그 포말의 여운이 바람에 얹혀 가느랗게 해조음이 되어 나의 귓가를 스치곤 했다. 하~아!, 이상하다.

내가 갈뫼인들을 따라 나서기를 두 번째인데, 그들도 바다는 정녕 좋아함인지 오늘도 섬이라. ‘갈뫼’의 ‘갈’자가 ‘가다(行)’ 아니면 ‘가을(秋)’일진데 하필 섬 나들이에 나를 꼬시는지?

바다를 그리 좋아한다면 ‘갈’자를 ‘해(海)’로 바꿔 ‘해뫼산악회’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던 난 오늘도 갈뫼인들을 따라 ‘5월의 여왕폐하’를 알현 한답시고 새벽부터 부웅- 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근데, pm3:00를 넘기도록 ‘여왕 알현’을 못하고 선착장을 코앞에 둔 어촌 동구 밖, 방풍림을 그늘막한 길 위에 뒷풀이 한마당에 빠져들고 있었다.

신선한 횟감과 그의 뼈다귀를 우린 매운탕에 소주와 음료로 포식하며 담소로 정분을 나누면서 사지 뻗어 경직 된 육신 풀어 재킨다. 거기서도 또 하나의 소득은 ‘톳의 여행’이였다.

바다에서 인공포자로 양식한 톳을 채취하여 바지선에 산더미처럼 싣고 선착장까지 오면 크래인은 아가리껏 물어 8t트럭에 옮겨 실었다. 그 톳은 땡볕에 이틀 남짓 건조하여 다시 여수까지 나들이를 하고 거기서는 분쇄공장에 들어가 분말로 되어 현해탄을 건너는 긴 여정 끝에 일본인들의 입맛을 돋우게 된단다. 고칼슘덩어리를 모른 체 그냥 놔 둘 일본인들이 아니잖는가! 그렇게 이것저것 포만하고 나서야 버스에 올랐고, 버스는 올 때와는 달리 페리호 아가리 앞에 우리들을 토해내는 게 아닌가. 나도 꾸역꾸역 밀려들어가는 사람들 따라 거대한 뱃속으로 빨려들었고, 이내 뱃창자를 휘젓고서야 3층 전망대에 이를 수 있었다.

페리는 스르르 몸뚱이를 틀었고 나는 고개를 들어보니 오른쪽은 오늘 하루를 누볐던 적대봉의 능선이 화선지에 묵화가 되어 있었고, 왼쪽엔 예의 소록도가 좌우로 날개를 달려는 듯 한창 연도교(連島橋) 놓기에 골몰하고 있지를 않는가. 소록도를 조망하면서 “인간의 편견이 야기한 엄청난 비극”을 생각해 보았다.

‘한센병은 전염되고 치유될 수 없는 천병(天病)인지라 세상에서 격리시켜야만 된다.’ 는 비극의 현장을 목도하다 거의 완성된 녹동항과 소록도를 잇는 사장교를 마주치게 됐을 때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태양은, 그 5월의 태양은 진종일을 보채고 뒤척이는 몸부림을 수만 번을 하다가 사장교 위에 드디어 자리를 잡고 그의 마지막 격동의 열정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글거리는 뜨거운 빛이 사장교에 내려앉아 에워싸고, 마침내는 사장교를 태워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넘실데다 사장교 아래 바다에 이르고, 해면에 내려 온 뜨거운 열기는 바닷물을 덥히고 덥혀, 수면을 일렁거리게 하여 마치 춤추듯 금빛물비늘을 난반사시켜 나의 망막을 차단하려는 - 5월의 여왕은 소록도 사장교에 왕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작열하는, 부신 여왕의 편광은 페리호 3층 전망대를 엄습하고 나는 물론 페리호 전체를 삼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10여 분 동안을 말이다. 여왕이 소록도 뒤 쪽으로 사라질 때, 여왕의 후광이 아직도 묘연한 빛으로 사장교를 애무하고 있을 때, 나는 문득 센프의 금문교[San Francisco. Golden Gate Bridge]를 떠 올렸다.


금문교의 축소판 같은 소록도의 사장교가 아름다움 때문에 자살소동이 벌어지면 어떻하나, 하는 기우를 하게 되었던 거였다.

다리의 아름다움에 취해 태평양에 부나비처럼 몸 던지는 자살자들은, 그 실은 아름다운 다리보다는 끊임없이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음에 몽롱해진 자신을, 공해탈출을 위해서라도 생사를 반추할 겨를 없이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지게 되는 것일 거라고 생각 되였다. (금문교의 건축미와 원거리에서의 채색의 미는 여기선 접어 두자.)해서 말인데, 소록도 사장교가 개통되고 해넘이 무렵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그 부신 편광의 일루미네이션에 몸을 날리는 ‘생사의 다리’가 될까 기우에 젖어 보게 되었다.

오늘의, 덕적도에서의 5월의 여왕을 페리호 선상에서 알현하게 될 줄을 꿈엔 들 생각했겠는가? 그 10여 분간의 알현을 위해 오늘의 나들이는 새벽부터 시작됨이 아닌가.

사장교에서의 해넘이 태양! 그 5월의 여왕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이다.

07. 0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