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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불광 시 지리비취 불급 (지리산)

불광 시 지리비취 불급 ; 不狂視智異翡翠不及 (지리산)


노고단 턱밑 꾀 넓은 포도갓길 옆에 웬 물길이 솟아 폭염 속 등산객들이 우왕좌왕 반색하다 의구심을 떨치질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은 드는 물길이 없는데 관정에선 물이 쏟아지니 말이다. “이 물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요?” 동행하던 송 회장이 묻는다.

“모르는데요. 참 이상하네요. 들어오는 물이 없는데-?”나의 대답에 “이게 다 노고단 정수리에서부터 흘러오는 물인데 일제가 장난을 쳐 물길을 돌린 땜이라네.” 송 회장의 해설에 퍼뜩 이해가 가질 않는 나에게 그는 한숨을 들이키곤 주석을 더한다.

그의 말인 즉, 풍수지리에 과민한 일제가 백두대간 꽁무니에서 발원한 물이 뱀사골 쪽으로 흐름을 막아 지대가 높은 구례 쪽으로 물길을 역순시켜 백두대간의 정맥을 훼손 역리시키는 못된 장난을 쳤다는 거였다. 풍수지리에 과민반응한 일제가 우리네 산하에 못된 짓 한 게 어디 한 두 군데인가 마는 그 쫌생이 짓의 증좌가 여기에도 있음에 마음 울적해 진다.

송 회장을 말하자면(통교가 일천하여 아직 수박 겉핥기식의 앎이지만)일찍이 공직에 봉직하였고 30대초 재직 시 이곳 노고단에 줄 출장(통신관계)하여 지리산 속내를 누구 못잖게 탐지했것다, 그때부터 시작한 산 사랑이 1985년도엔 익산최초의 ‘갈뫼 산악회’란 동호회를 발기하여 현재까지(그간 두 번이나 회장을 맡음)전국의 산하를 누비고 다녔으니 해박한 산하식견은 일가견을 이룰 만하여 신뢰가 감이다.

어찌하다 그런 그를 커피 한 잔 사지 않고 가까이서 흉금 털게 됐으니 나의 행운은 여간 오지다 하겠다. 노고단에서부터 그가 선도하여 돼지령을 향하는 산책(등산길?)로에는 내 키를 넘기는 철쭉군락이 수풀과 어울려 빽빽하고 그 위로 두서너 자 키 큰 굴. 졸참나무들의 녹색 떡잎사이에 구상나무들이 어쩌다 잣나무 한 구루씩을 동반하여 하늘을 가렸는데 폭염은 그 농익은 녹색이파리 사이를 늘름거리다가 풀죽기를 반복한다.


몇 일전에 내린 비에 지표는 촉촉한데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달리는 바람결이 숲 사이를 헤치며 나를 핥곤 하여 더없이 상쾌하다. 이 풋풋하고 상쾌한 산책길을 알고 있다면 그 누가 피서지 선택을 고민하겠는가? 해서 난 문득 송 회장의 염장을 찔러보고 싶어졌다. “회장님, 이런 때 햇볕이 쨍쨍 내려 쫴야 하는 건 데 말입니다.” 송 회장이 되돌아 보며“모옷 되먹긴-.” 라고 내 뱉곤 다시 선도한다. 실은 난 그의 염장을 찌르기보단 나의 무지가 빚은 기우의 맹숭함을 애써 감춰 자위하려함 이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오늘의 산행이 몹시 걱정되는 바여서 아침에 그를 만나자마자 “회장님, 오늘 8시간의 산행이 무리 아닐까요?”라고 인사말을 했었고, 그는 “걱정할 것 없어, 노고단(바로 아래 성삼 재에서 시작)부턴 능선타고 내리막길인데다 뱀삿골짜기로 오니까 괜찮을 게요.”라고 간단히 응수했던 터였다. 그의 말 그대로 괜찮은 아니 아주 좋은 산책길을 걷고 있는 나였던지라 그에게 미안코 고마웠기로 수작 부려본 거였다.

돼지평전에서 임걸령, 그리고 노루목까지 산책길은 이어졌고, 길섶엔 자주색의 앙증맞은 야생화가 틈틈이 나의 정강이를 스치고 그의 사촌쯤 될 노란 야생화가 녹색바다에 보석마냥 빛나고 있었다.

우리일행 여섯 명은 노루목에서 반야봉 등정에 들었다. 오르는 길엔 땅딸막한 구상나무들이 그도 늙은 철쭉나무들을 졸개처럼 거느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우릴 안내하고 있었다. 암반으로 이뤄진-바위조각들이 널부러진 편편한 반야봉정상, 백두대간의 능선이 백암산과 덕유 산정을 향해 하늘끝자락 엷은 구름 속으로 내 달리고 있고, 남쪽으론 조계

산이 대간꼬리를 물고 있었다.

땡볕, 폭염 속을 곡예 하는 빨강 고추잠자리 수십 마리가 우릴 반기고 그들의 공중쇼를 잠시 감상하다 하산, 정상 밑 짙은 녹음숲 속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들이킨 얼린 페트병의 맥주 한 잔은 얼마나 차던지 목젖이 따갑게 얼얼따끔(연장자라고 첫잔을 내게 줬는데 침 꼴딱거릴 다음 분을 위해 원 샷을 해야만 했다) 한데 어떤 동행한 갈뫼인은 한 술 더 떠 눈알이 피 터지게 아프단다.

삼도봉(전 남북. 경남)에서 공짜모델 되어 한 컷 찍고 화개 재에서 몸을 비틀어 뱀사골을 더듬으려는데 아~! 여기서부터 반선(半仙:용으로 승천하지 못하여 이무기가 된 반쪽신선)까지가 9.3km라란다. 아~유~! 옛날 뱀이 계곡을 올라오다 용으로 승천하지 못하고 끝내 이무기가 된 까닭은 골짜기의 경사가 넘 완만해서 였을까?


하여 명명된 뱀사골은 아름드리 거목과 짙은 녹음의 하산 길 - 역시 험로 아닌 산책로에 다름 아니고 돌멩이를 어르며 흐르는 개울물소리와 소프라노 매민 이중창으로 세레나데를 열창한다. 널부러진 고사목과 푸른 이끼, 검회색 바윗돌무덤들을 일별하다 간장소에 닿았다. 아직도 짭짤한지 물맛 보며 좀 느긋해야 함인데 보폭은 빨라지고 제승대, 병풍소, 뱀소, 요룡대를 내 닫는 나의 눈은 시리고 맘은 소에 있어 몸뚱이 가늠하느라 진땀을 쏟는다.

저간, 쏟아졌던 빗물이 티끌하나도 남김없이 쓸어버린 골짜기의 하얀 돌과 청정수는 녹음속의 청정계곡을 더없을 대비의 색채미를 발하고 있었다. 그 하얀 돌 틈새를 달리는 청정수는 큰 돌에 부딪칠 땐 흰 거품을 토하고 길게 흰 포말꼬리를 달아 내삐다 수직단애에서 곤두박질하여 깊은 소에서 가쁜 숨을 고르곤 다시 내달리기를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허나 소는 소가 아니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흰 포말의 여적이 사라진 소는, 아~! 깊고 투명한 소는 푸름이 넘쳐 눈이 부신 비취였다. 그 비취색은 태곳적부터 지리산이 간직해 온 비장의 자연비취였던 것이다. 그런 비취소는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자리하며 주위의 풍경을 담아 흐느끼고 있어 비취색깔의 신비감은 내 짧은 혀로는 어불성설이라. 각각의 소에서 신비스런 비취색을 감상할 수 있는 자! 불광불급이라!

산에 미치지 않고선 닿을 순 없는, 산에 미쳐 이 폭염에도 산을 찾는 자에게만 허락하는 산의 하사품이 아닐까!? 그 뱀사골의 비취를 산에 미친 자들에게 소식 전하여 그 비취에 미쳐 보시라고, 그러면 그 비취보고 그대들도 미칠 거라고 미친 듯 외치고 싶었다.

진정 물은 위대한 것이다. 물 없인 생명 있는 것은 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겠다. 땜 이였을까? 설리번 선생은 꼴통 헬렌 켈러를 만나자마자 그를 개울가[펌프]로 데리고 가서 그의 손목을 잡아 개울의 흐르는 물속에 담가준다.

그리곤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물(Water)’이라고 쓴다. 하여 헬렌 켈러가 처음으로 익힌 단어가 ‘Water'였고 최초의 문자가 W'였다. 듣도 보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녀는 그 때‘물’의 무엇을 감지했을까? 시원한 물이 손을 어루만지는 감미로운 감촉은 알았겠지만 재잘거리며 흐르는 물의 소리나 물의 빛깔은 상상의 나래 속에 더 아름다움으로 머물고 있었을 것이다.

산행 끝머리, 나는 개울가 넓적돌에 걸터앉아 뱀사골을 훑고 온 물에 발을 담그고 물의 소중함을 새삼 절감하면서 헬렌 켈러를 생각했던 것이다. 난 미쳤다고 할 순 없음인데 요행이 오늘 자연의 비취색에 미쳤던 것은 미친 갈뫼인들의 덕분인 것이다.

어떤 일이나 미쳐야만 미칠 수 있게 되는 것이리라.

미친 갈뫼인들이여! 자리 내어 줌을 감사한다. 행운을 빈다.

07. 0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