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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아름다운 주검의 전시장 (태백산)

★ 아름다운 주검의 전시장 (태백산) ★


새벽 6시, 문밖을 나선다. 거기에 동장군이 얼어 부서질 것 같은 빳빳한 망토자락을 걸치고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그를 밀쳤다. 아니 그 차가운 외투를 거두라 했다. 눈길도 안 주는 그를 떨쳐보려 달렸다. 입김이 성애가 되 차창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여명을 차단한다. 그래 아침을 잃었다. 아침 없는 5시간을 달린 후에 나는 태백산 협곡 눈 천지 유일사 입구에 닿았다. 눈밭에 발을 담그기도 전 난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적설과 인파에 몸 가누기 어려운, 인산인해의 사람들은 개미떼들처럼 산 속으로 향하는데 속세탈출인가? 문명탈피일까? 기이한 엑서더스에 끼어들어 삼나무병정들의 의장대를 사열하며 자석같이 당기는 눈길을 올라갔다. 한 시간쯤 무거운 발걸음을 때니 완만한 능선길이라. 주목이 잡목들의 앙상한 나지 위로 위엄을 떨치다 어떤 놈은 늙어 병든 몸 시멘타일(?)을 두르고도 초록침엽을 뿜어내고 있고, 또 다른 놈은 멀쩡한 몸 반쪽을 주검으로 만들어 회색 뼈대를 뻗쳐내어 생과 사의 절묘한 대칭미를 만들었음이다.


아~!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아니 주검의 미학은 여기 태백산에서만 만끽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게 인간세계에서도 간혹 있긴 하지만 그 주검[屍身]마저 아름답진 않다. 허나 태백산에선 죽음과 주검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면서 우릴 환상적인 미학에 입문케 한다. 고고한 청청함으로 수백 년을 살면서 우아한 자태에 매료케 하고, 같은 뿌리에서 한 쪽은 시목(屍木)의 아름다움으로, 더는 고사목의 기괴한 뼈대로만 또 몇 백 년을 추상미를 발산하는 주목의 일생을 도처에서 목격한다.

그 고상한 아름다움에 우린 감탄하고 혀를 차다 못해 그들을 껴안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마치 자기도 그들과 같이하면 아름다워지기라도 할 듯싶어 설까? 어쩜 그 스냅사진 찍는 순간을 정지시켜 주목(고사목)과 함께 아름다워 보려는 멈춰진 시공간을 붙잡아 둘 수만 있다면 말이다. 아니 그들처럼 아름답게 죽고 시신마저 아름다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태백산의 - 주목의 몸살도 기꺼이 기쁜 마음이 될 것이리라.

진정 주목의 몸살이, 순간의 심미안 땜에 자기 욕심 채우려는 우리네의 사진 찍기만의 행위여선 산 사랑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같이 수백 명의 인파가 그들을 에워싸고 성가시게 한다면 태백산의 아름다움은 머잖아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주목을 쳐다보다 그들의 하얀 카펫마당에 비닐방석을 깔고 점심을 먹었다. 천제단 턱밑에서였다.

천여 년을 이어온, 하늘을 섬기는 제를 올린다는 신성한 천제단(1567m)은 인파로 난장이 되고 있었다. 돌멩이로 휘두른 담벼락에 서서 사위를 조망한다.

아니 간밤에 태백산을 맛보기하다 마주친 안축(安軸.1282~1348.고려의 문신)을 생각했다. 760여 년 전에 그도 나처럼 새벽을 깨우며 태백산을 찾았을까?

하기야 그는 몇 달 며칠을 관동지방을 주유하던 참이라 새벽이 아닐 수도 있겠다. 허나 확실한 것은 그가 태백산을 등정했다는 사실과 오늘 내가 그의 발자취에 한 발자국이라도 포개어 디딜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실현성이 있다는 확률이다.

그가 읊은, 학이 되어 부유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엔 햇님이 머리위에 있었고, 하늘을 오르는 사닥다리 길은 흰 카펫을 깔아 선명하게 길을 열고 있었으며, 높고 낮은 산들은 파란 하늘아래 또렷한 수묵화가 되어 내 눈앞에 떨어지고 있었다.

안축은 어느쯤에서 시상(詩想)에 절절히 빠져들었을까?

그가 태백산을 등정한 후에 작가(作歌)한 시가(詩歌)를 난 오늘 태백산에서 몇 번인들 곱씹어 보고 싶은 거였다.

日丸白日低頭上(한 덩이 흰 해는 머리위에 낮게 있고)

四面群山落眼前(사위의 산들은 눈앞에 떨쳐지고)

身遂飛雲疑駕鶴(몸이 구름을 쫓으니 내가 학을 탄 것인가)

路懸危磴似梯天(길이 벼랑에 걸렸으니 하늘 사닥다리인 듯)

-<안축(關東別曲의 저자)의 태백산 등정기중에서 >-


천제단에서 문수봉을 향하는 완만한 능선에서 바라보는 인파는 앞뒤의 끝이 없었다. 그간 쌓인 눈땜에 등산객이 튼 다져진 눈길 외엔 달리 샛길을 낼 수가 없어 다행이지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제 멋대로 흩어져 산보(散步)한다면 태백의 등걸은 황폐화되기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문수봉을 향하는 길목, 흰 두터운 솜이불을 뚫고 오수에 조는 내 키만 한 철쭉군과 도토리나무들, 그들을 거느리고 파수꾼 되어 파란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초록침엽의 구상목과 주목과 고사목, 그들의 수고로움을 덜려는 듯 몇 백 년 묵은 떡갈나무가 세월에 곰삭고 휘어져 기이한 형상으로 나의 시선을 뺏는다. 뿐이랴.

나의 눈을 훔치는 놈은 부지기수였지만 흰 살갗 너덜너덜 떨궈내며 선명하게 하얀 피부로 화장한 자작나무들이 햇볕에 일광욕을 하느라 진풍경을 이루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들이 일광욕을 하기 좋은 계절은 활엽수가 사라진 겨울철이어선지 서로가 햇볕을 많이 받으려 발돋음 하다 키가 장다리꺽다리가 되고 있었다.

거지발싸개 같은 옷차림에 웬 강아지 한 마리를 삼태기에 넣고 나타난 문수보살을 몰라보고 쫓아버린 자장율사는 뒤늦게 대성통곡하며 그를 기다리기를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었기로, 문수보살의 넋이 육산인 태백산 봉우리에 유일돌멩이가 되었다 해서 명명했다는 문수봉에 닿았다.

인생이란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포착하여 선용하여야 하고, 누군가를 그리는 사무침은 생을 다 할 때까지 해야 한다는 진정성을 문수봉은 깨우쳐주고 있음 이였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파란 하늘 태양 속에 부서지는 흰 파도처럼 너울을 반사하는 하얀 자작나무숲 터널에 취몽(醉夢)으로 빠져 들었다. 속살 썩어 푸석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굽고 휜 거목자작은 몇 백 년의 세월을 짊어지고 있을까? 그의 그늘아래 군락을 이룬 고만고만한 놈들은 그의 몇 대손들인지?

그들에 눈길을 팔며 하산하는 내리막은 적설량은 사뭇 더해 나의 쇠발톱에 깔려 울부짖는 눈의 신음소리도 한 옥타브 더 높아진다.


깊은 계곡 흰 설토에 촘촘히 박힌 삼나무가 우렁차다. 고개를 한껏 젖혀 우러러본 삼나무 끝가지에 여린 겨울햇빛이 걸렸다 떨첬다를 반복한다. 해는 이미 산릉을 넘은지 오랜가보다. 그 으스스한 협곡을 벗어나자 인적이 요란하여 조망하니 눈으로 만든 거대한 조형물 주위를 사람들이 떼거리로 움직인다. 흡사 걸리버가 소인국들머리에 드는 기분이라.

가까이 다가가보니 눈 조형물들은 태양빛에 불탔던지 형체가 묘연하다. 아니 햇볕과의 싸움에 문드러져버린 조형물은 눈물을 질금거리면서도 우리들 앞에서 마지막 위엄을 떨치려하고 있었다. 이른바 태백산 눈 축제(2월 초순, 당골광장)가 끝나버린 파시가 기우는 겨울햇살에 어둠에 묻히고 있었다. 조금 일찍 왔다면 그들의 진면목에 또 탄성을 토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어쩌질 못한 체 버스에 올랐다. 시침은 벌서 오후4시를 넘기고 있었다.

5시간여의 태백산 품안에서 진정 아쉬웠던 것은 망경사 옆에 자리한 단종비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였다. 세조의 죽임에 그 원혼이 산신령이 되 태백을 유랑하자 세조는 다시 단종의 원혼마저 가둬 둬야했던 태백산, 그 원혼을 기리기 위해 탄허스님은 비문을 새겼다나-.

산악회에 빌붙어 신세지는 주제에 돌출행동을 할 수 없어 그냥 지나쳐야만 했었다. 언제 다시 태백산에 오게 될꼬?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이 우리들의 일상을 깨우는 태백산 이였다.

08. 0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