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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홍랑의 비련 좇는 철쭉 길 (한라산)

★ 홍랑의 비련 좇는 철쭉 길 (한라산) ★


5/24, 꼭두새벽.

낮게 드리운 회색하늘이 신록을 애무하고 있는 새벽을 달린다. 안무는 남쪽으로 내달릴수록 짙어지고 목포는 농무(濃霧) 속에서 아침도 잃었나 싶었다.

am9:00, 포말이 거칠게 소용돌이를 치며 퀸 메리 호를 밀쳐내고 있다. 여왕 메리는 빗고 있던 검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거대한 몸체(17.000t)를 일으켜 세워 검푸른 바다로 미끄러지고 있다. 유달산이 아직도 농무 속에서 얼굴을 보이질 않고 배웅도 하지 않는데, 서북쪽 아스라이 새로 태어난 압해교가 어렴풋이 나타나 한 폭의 그림을 선사한다.

짙은 해무(海霧) 속에 숨었던 바위섬들이 얼굴을 내밀곤 인사를 하다 사라지고 있다. 해무는 여왕의 행차에 길을 내느라 바람을 일으킨다. 여왕은 섬들을 사열하며 하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잰걸음을 걷는다. 검푸른 바다위에서 진행되는 사열식은 세 시간동안이나 지속됐다.


여왕은 이내 망망창해에서 고독을 씹는다. 그 고독을 덜 양으로 바다가 너울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춤사위에 바람결이 살아난다. 하늘은 여전히 회색차일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젠 이슬빈지 안개빈지를 흩뿌리며 5시간의 행차를 마무리하려는 여왕의 시야를 아른거리고 있다. 제주 품에 여왕은 안착했다. 허나 한라산은 없다. 일부러 그를 보자고 왔는데 사라진 걸까? 해도 크게 맘 쓸 일은 아니라. 내일 아침에 제자리에 와주기만 하면 돼니깜-.

우선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원초적 욕망 두 가지 중 먼저 식탐(食貪)을 즐기는 거다. 뭔 뭣도 식후경이라지 않던가. 뱃속을 채우고 하나 남은 욕망, 색탐(色貪)을 할 차례라. 우린 러브 랜드로 달렸다.

사랑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하는지는 모르되 사랑동네에서 질펀하게 색탐을 하기로 했다.

근데, 통과 식을 해야 한다나? 도깨비동네에서 머릿속을 좀 헝클어 오란 듯싶었다. 바야흐로 섹스마을에 발을 담근다. 육체를 흐르는 선의 미적인 면을 보여주겠다고, 창조의 신-남근의 갖가지 형태를 댕강 잘라다 놓았나 하면, 남여가 부둥켜안고 해 낼 수 있는 곡선의 미학을 만드느라 주인장은 땀께나 흘렸겠다 싶었다.

성의 발가벗음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주인장의 땀에 우린 호기심에 찬 눈으로, 놀란 눈으로, 박장대소로, 은밀한 귓속말로, 성에 안찬 액션으로 한 시간여의 세월을 죽여야만 했다. 누구나 거의 대부분을 몸소 실연해 본 성의 본질이 왜 노상 관심을 그리도 끌게 되는 것일까? 색탐에 침 질질 흘리는 나를 내 자신도 잘 모르겠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덤터기쓰곤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옆 버스 속에서 청소년들이 시끌벅적이다. 왜, 입장을 안 시키고 우리속의 짐승들처럼 버스에 가둬(?) 놓았는가? 명색이 예술작품 전시회인데 말이다. 예술에 자주 접해야 훌륭한 예술가가 태어나게 됨인데···.

문제는 사랑동네의 섹스 숍일 것 같았다. 거기엔 실연장면을 보여주고 있고, 불만족스런 섹스행위를 졸업시킨다는 갖가지 조형물과 소모품들이 즐비하다. 그것들을 나름대로 활용하면 사랑의 순간 천국과 지옥을 몇 번씩 내왕 한다나. 해찰하며 한참을 서성거렸는데도 그 좋은(?) 것들을 구입하는 사람을 못 보았다. 모두가 그것들 없이도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라. 참으로 다행이로고!

5/25. am6:00, 성판악 휴게소에서 고대해 맞던 한라산 품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제까지 내린 비에 흡씬 멱 감은 활엽수들은 생기를 더했고, 잘 정비된 등산로의 화산석은 물기 젖어 윤기가 잘잘한 채 구불구불 완만한 오름세를 이어가고, 빽빽 울창한 활엽관목들이 상끗한 숲실을 이루어있어 한라만이 갖는 이국적인 정취를 맛보이고 있었다.

어디든 한 줌 쥐어 잡아 짜면 녹색물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신록의 장원이라.

아침햇살이 신록 틈새를 날름거리며 숲 바닥에 명암의 그림을 그리느라 고요의 숨소리조차 안 들린다. 호젓하다 못해 적막한 숲길을 걷는데 스틱 찍는 소리가 무안해 냉큼 거둬들었지만 발자국소린 어찌할 순 없다. 태곳적 숲을 자랑하는 뉴질랜드의 어느 국립공원엔 이런 팻말이 있단다.

“지금 당신은 이곳의 고요를 깨뜨릴 어떤 권리도 없다. 당신이 남길 수 있는 것은 오직 발자국뿐이며,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마음에 담은 사진 몇 장임을 명심하라.”

그 고요를 깰 권한을 새들에게만은 주었던지 아침을 여는 어느 이름모를 새의 노래 소리가 청아하다. 생각해 보면 조용한 우리들 집에 불청객이 들어와서 떠드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으리라. 산을 사랑하는 산 꾼이라면 산에서 크게 입을 열지를 말일이다.

이 호젓함을 즐기려 홀로이기를 마다찮는 나는 잠시 그 고요 속에 나를 가두다 인기척 떠들썩한 샘가에 이르렀다.

한 시간을 걸었다. 새삼 눈에 띄는 산죽이 언제부턴가 촘촘히 숲실 바닥을 누비고 있다. 그 놈들은 유독 한라생이란 걸 티내려는지 이파리 가장자리를 빙 둘러 하얀 띠를 둘렀다. 띠 두르지 않은 놈은 눈 씻고 봐도 없다. 한라산 산죽만의 화장일까, 문신인가?

숲을 이루는 관목들의 몸통도 더 우람해진다. 홀로 걷는 시간도 점점 더 많아진다. 모르면 몰라도 백제인들 중 내가 맨 선두일 게다.

매끈하고 훤칠한 삼나무동네를 지나니 서어나무, 졸참나무, 당단풍나무 등 낯익은 놈들이 인사를 해 오는데, 구상목이 한두 놈씩 그 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호젓한 즐김이 또 한 시간쯤을 잡아먹었을까. 구상목이 제법 의젓한 자태를 뽐내며 다른 관목들을 압도한다. 간혹 자작나무가 옆으로만 살찌우며 괴상한 몸 틀림에 옹두라지를 빚어 눈길을 뺏는데, 세월의 때를 벗겨내느라 피부를 덕지덕지 때내며 하얗게 화장하고 있다. 그들 사이로 한라정상이 언뜻 숨바꼭질을했던가 싶은데 철쭉이 얼굴 붉히며 마중을 나왔다. 이니, 너도나도 떼거리로 마중을 나온다. 관목 숲이 사라지고 철쭉이 산 중턱을 온통 전세 내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나 기다리다 지쳤던지 빨간 꽃잎 시들어버린 놈이 부지기수라. 진달래밭에 닿았다.

5월 마지막 주말에 그들이 축제를 벌인다고 해선지 벌써 손님도 많다. 방문객들은 자기도 철쭉처럼 되고 싶은지 얼굴 비비며 사진으로 담기에 혼신이다. 누구의 얼굴이 더 예쁠까? 대피소 옆구리에 안치한 대여섯 동의 간이화장실을 찾았다. 문을 연 나는 기겁을 했다. 구더기 떼가 발 디딜 틈도 없이 화장실 바닥에 대피하고 있었다. 구더기대피소인데 잘 못 알고 문을 열었었나? 구더기대피소 뒤로 가니 거기에서 몇 분이 배설의 쾌감에 눈감고 있다.

<백록담에서 김대장, 마태오님>나도 거기서 카타르시슴에 빠져들고 있는데, 좀 떨어진 화장실에서 웬 여자의 비명이 충천한다. 거기서도 구더기대피소인줄 모르고 여자가 구더기한테 무례를 범하다 망신을 당한 게 분명하다. 일 끝내고 되돌아오면서 간판을 확인해보니 화장실이 분명하고, 그것도 영어와 한문까지 병기해 놓았다. 외국인이 들렀다가 ‘한국인은 구더기대피소를 화장실로 표기하는 거구나’라고 오해할까 걱정이 생긴다. 또 한 생각이 스친다.

나를 기다리다 시들어버린 철쭉꽃이 늦게 온 나 땜이 아니라 구더기대피소에서 풍기는 악취에 시달리다 중독사한 거란 걸-. 짐짓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자들은 모르고 있음일까?

작년 6월27일 유네스코는 제주도(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만장굴, 뱅뒤굴, 김녕굴, 용천도울, 당처물동굴])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 시켰다는 사실을···. 한라산천연보호구역은 해발 800m이상부터 정상까지의 동식물과 지질과 지형의 특이한 생태계를 지정함인데, 설마 구더기까지 포함시키진 안했을 터.

다시 천태만상을 이룬 관목의 몸짱에 눈을 팔며 30여분을 오르니 느닷없이 햇빛 쨍한 벌판에 나동구라지게 됐다. 1800고지를 넘었을까. 수목한계선을 월경한 것이다.

완만한 오름의 한라정상 주위를 가없이 펼쳐진 초원들판이 햇볕을 이고 파란 하늘을 대면하고 있었다. 그 초원에 철쭉이 붉은 마당을 군데군데 만들고 초원아래는 흰 구름이 목화송이처럼 피어 제주 섬을 잘라내 버렸다. 초원의 한라산은 8부능선부터 구름 위에 덩실 떠 있음이라. 정상을 향한 나무계단이 능구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다. 능구렁이가 눈에 넣어도 시원할 연보라빛 붓꽃, 노란 제비꽃, 하얀 바람꽃, 민들레 등의 야생화사이를 기고 있다. 시원한 바람결에 야생화가 하늘을 보고 하늘거린다. 그 능구렁이를 밟으며 백록담을 향한다.

정상에 발을 디뎠다. am9시를 막 넘긴 참이다. 벌써 산 꾼들 상당수가 선점하여 한라정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백록담은 몽둥이 울타리를 치고 접근을 사양하고 있다.

여태 그림으로만 보아왔던 그는 실로 볼품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렇다할 풀도 없는 거대한 분화구 한켠에 조그마한 물웅덩이를 만들어 5월의 햇살을 담아내느라 헐떡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는데 현무암은 물먹는 하마가 되어 양껏 퍼마신 땜에 흰 사슴[백록]이 내려와 마실 물도 부족할 것 같다. 허나 신묘하게도 그 물은 웅덩이에 항상 그대로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그거~!

하나 찾을 것이 있어 눈깔을 굴려보는데 딱히 잡히는 게 없다. 몽둥이 경계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쉬어쉬엄 발길을 옮기니 관음사방향 길목이고 백록담하곤 사이를 더 벌릴 뿐이라. 거기엔 구상나무가 기막히게 아름다운 주검이 되어 늘비하게 서서 관음사 쪽에서 오는 산 꾼들을 맞느라 햇볕아래서 몸단장하고 있었다.

되돌아와서 안내인에게 묻는다. “혹시 마애각이 어디 있는 줄 아십니까?” 라고. “뭐라고 얘?” 그는 동문서답이다. 북쪽으로 가보니 커다란 마애가 어디서 떨어져 굴렀던지 경계선 밖 멀찌감치 있고 그 뒤에 조그마한 비석이 보이는데 알 수가 없다. 내 딴엔 필시 저게 조정철의 마애각 파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정철! 그리고 너무도 애잔했던 비련의 여인 홍랑(洪浪)!

200여년 전, 여기에 서서 뼛속 깊이 사무친 연인을 생각하며 통한의 눈물을 삼키고 새겼던 마애에 “조정철은 정유년(1777년)에 이곳에 귀양 와서 경술년(1790년)에 풀려났다. 그리고 신미년(1811년)에 목사로 와 여기 정상에 서다.”라고 각인했었다.

약관 25세에 대과에 급제한 그는 정조시해사건에 연루돼 누명을 쓴 채 27세 때 제주도로 귀양 왔었다. 그 때 그를 안타까이 여겨 연민의 정을 쏟는 미녀 홍랑의 사랑에 감읍 하여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부부 된지 2년도 안된 어느 날, 몹쓸 운명은 새로 부임한 제주목사 김시구가 가문대대로 원수였던 정적 이였던 것이다. 김시구는 그를 어떻게든 죄를 덧씌워 죽일 간계를 꾸미고 우선 홍랑을 옭아 메 옥에 가둔다. 있지도 않은 죄를 씌우곤 이실직고하라고 남장(濫杖)이란 혹독한 고문을 가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홍랑에겐 채 열 달도 안 된 딸이 있었다. 옥에 갇혀 이 비극을 감내해야 했던 조정철의 비통함이 어떠했을지 상상을 절한다.

정조가 죽고 순조가 등극하니 조정철도 풀려난다. 그리고 순조11년에 그는 제주목사로 부임하는데 먼저 찾은 곳이 한천변(漢川邊)의 홍랑의 묘였다. 딸을 대리고···.

묘역을 옮겨 단장하고 한 서린 통한을 비문에 새겼다.




-<옥 같던 그대 얼굴 묻힌 지 몇 해던가

누가 그대의 원한을 하늘에 호소할 수 있으리

황천길은 먼데 누굴 의지해 돌아갔는가!

진한 피 깊이 간직하고 죽고 나도 인연이 이어졌네

천고에 높은 이름 열문에 빛나리니

일문에 높은 절개 모두 어진 형제였네

아름다운 두 떨기 꽃 글로 짓기 어려운데

푸른 풀만 무덤에 우거져 있구나.>-


200년 전에 이곳에서 꽃피우다 껶여버린 두 연인의 너무나 애통한 비련을 떠올려 보았다. 백록담에 핀 철쭉이 유난히 붉은 것은 홍랑의 못다 핀 사랑의 핏빛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랑의 연인, 남편-조정철의 마애각을 보고 싶은 절절함은 그런 소이였다. 하 오래 되어 화산석처럼 까맣게 타 잊어 벼렸다는 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푸른 하늘엔 빗자루 구름 한 떼가 떠밀리고 있고,

5월의 햇빛은 저 아래 철쭉에 내려 앉아 더욱 빨갛게 물들이며, 시원한 바람결은 나의 뺨을 간질거린다. 까마귀 한 쌍이 백록담을 선회하다 울타리 옆 바위에 내려앉아 속삭이는데, 또 다른 놈이 나타나자 잽싸게 쫓아낸다. 백록담을 영토화한 텃새 주인인가? 정철과 홍랑의 넋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백록담주인 까마귀가 무단 점령한 등산객들의 행동을 지킴이 하느라 멀리 떠나질 않고 있다. 다시 인근 바위에 내려앉아 조망하는 저 아래, 젖가슴처럼 솟은 크고 작은 오름세에 나도 한참을 눈길 팔며 그 연인들의 비련을 생각하고 있는데 백제인들이 다가왔다. 그들과 스냅사진 몇 장을 찍었다.

행복한 사람들~! 오늘 백록담을 찾는 이들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들이란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조정철과 홍랑같은 선남선녀를 조상으로 모신 덕일 게다.

너무나 행복한 산행 이였다. 오래도록 맘에 깊이 남아있을 한라산 이였다.

08. 05. 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