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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불쌍한 위왕 보다야···팔영산

불쌍한 위왕 보다야···팔영산


환희의 신음소리를 아는가! 아픔이 극치에 이르면 탄성이기도 하다. 4월은 아픔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겐-.

4월은 찢기움을 수반하는 고통이라, 생명 있는 것들은 죄다 고고(呱呱)의 울음을 틔운다. 두터운 지표 또는 표피를 뚫고 나오는 뭍 생명들의 진통을 고스란히 4월은 품에 안는다.

 

고로 4월은 탄생의-생명의 달이기도 하다. 그 태어남의 고통-아픔을, 환희를, 엘리어트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갈파했었지 안했을까? ‘잔인한 4월'에 만취하고 싶어 나는 오늘 새벽 외톨이 나들이 행 배낭을 챙겼다.

행선지는 팔영산(八影山608.6m). 교통은 ‘새익산산악회’에 덤살이 기생하겠다고 엊그제 밤에서야 총무님께 폰팅을 시도해 승낙을 받았었다.

 

am6:50. 무표정한 버스를 기웃하던 난 버스문짝에 붙은 방(傍)에 잠시 얼어붙고, 이내 45숫자 옆에 나의 이름이 표기됐음에 기이해 하면서 도둑처럼 기어들어 맨 끝 좌석에 몸을 구겨 넣었다.

회색 아침을 가르며 달리는 버스차창엔 부지런한 농부가 밭이랑에서 서성이고, 몇 잎의 하얀 벚꽃이파리는 안개 속에 묻혀 정처 없을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연초록 싹들이 싱그럽게 손짓하는 들판 한 편엔 자운영 꽃이 흐드러지게 웃는 능가사(㘄伽寺)입구에서 하차하여 절을 에둘러 외면하고 팔영산 품속을 파고들었다.



주종을 이룬 굴참나무과 나무들이 낙엽목과 어울려 푸른 싹 틔우기에 혼신을 쏟고 있었고, 연초록빛과 잿빛이 혼재한 산릉은 우윳빛 산벚꽃들을 군데군데 흩뿌려 4월에만 가능한 산수화를 그리고 있었다. 갈색 표피를 찢고 솟는 새싹의 떨림을 내 무딘 감각으로 감촉할 수 있을까만, 더는 두터운 지층 뚫고 고개 내미는 생명의 경외-환희의 신음소릴 통찰할 수도 없겠다싶어, 고속 촬영한 카메라로 티브이에 방영한 ‘생명의 신비’란 화면을 떠올려 오버랩해 본다.

1봉, 유영봉(儒影峰)에서 시작한 城主, 笙簧, 獅子, 五老, 頭流, 七星, 積翠峰을 오르고 내리는 암릉타기 가파른 등반길은 험한 외길이기에 방심은 금물이라.

허나 바위에 고정시킨 철재 로프나 철판 스탶, 스텐레스 가이드 빔을 붙잡고 조망하는 사위는 자연이 마련해 준 신성한 성찬(盛饌)이었다.

 

엷은 안무 속에 고흥만을 잠재우고 있는 섬들은 오밀조밀 바다에 누워 그의 살갗을 씻고 있음인지 간혹 해면에 잔주름을 일구었고, 남녘 아스라이 먼 외나로도쪽엔 사장교 하나가 그림처럼 놓여 있어 그곳도 정녕 사람이 살고 있다는 푯대이기도 했다.

 

 

인적을 허용치 안했던 두류봉은 인간의 잔인성을 온 몸에 상처투성이로 각인시켜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동쪽 허리를 뚫고 얽은 붉은 철골과 사슬로 정상까지 이어 오로봉에서 본 두류봉은 자연 파괴의 흉물의 극치라 하겠다.

어쨌거나 나도 그 흉물을 이용하여 두류를 안았었고 내려와선 부끄럼 없이 통천문을 의기양양하게 통과해 칠성바위 틈새를 요리저리 올랐다.

 

칠성봉을 내려와서 노송 밑 바위마당에 나홀로 오찬을 즐기며 옛 중국 위왕(魏王.조조의 동생조비?)을 생각해 보았다. 불쌍한 왕!? 나보다는 말이다.

몽환 속에서 접했다는, 물속에 비친 여덟 개의 산봉우리 그림자에 홀딱하여 몽상몽사(夢想夢思)한 위나라의 시조보다는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가 말이다. 그렇다 해도 그는 성군 이였기에 꿈에서라도 팔영산을 보는 행운을 얻었으리라.

 

물속의 제 모습에 반하여 퐁당 익사한 나르키스 소년의 수선화로의 재탄생보다는 덜 드라마틱 하지만, 위왕에 얽힌 전설의 현장을 더듬기에 야릇한 흥분도 맛보는 것이다.

점심에, 연초록의 싱그러움에, 낙엽 밑 부석부석한 부엽토의 뭉실한 감촉에, 이름모를 야생화의 해맑은 웃음에 포만하며 적취봉에 오른다. 그리고 내킨 김에 깃대봉까지 더듬었다.

 

적취봉을 선두로 줄줄이 꽁무니에 매달려 다도해를 향해 줄달음질치고 있는 여덟 개의 봉우리를 여기선 일별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이게 낭팬가 행운인가!?

깃대봉에서 기념촬영 하던 총무님 일행 서너 명이 나에게 손짓하질 않는가. 몇 번 사양타 못이긴 척 달라붙어 한 컷-폼 잡아 보았다. 그리고 그들 뒤를 따라 하산 길. 하산 길은 또 다른 감칠맛을 나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빼곡한 측백나무 숲이 포근히 나를 안아 주었고, 꾀 나잇살 든 철쭉나무들은 미끈한 피부를 뽐내며 구불구불 하늘을 향하면서 새 싹을 내밀고, 소사나무는 어떤 연유로 그리도 크고 멋진 옹두리를 만들어 나를 붙잡음인가. 나무의 옹두리란게 십중팔구는 사람들의 잔인함의 산물일진데 그 피멍든 상처덩이의 괴상함을 즐기는 나의 잔인함에 잠시 놀란다. 아니 막 돋은 취 이파리를 뜯어 코에 대보고 씹어보는 에고이즘의 잔인함에 다시 놀란다. 그 얄쌀싸름한 향에 취한다고---.

 

 

한참을 내려오다 계곡물에 손과 얼굴을 씻고 발을 담근다. 잔인한 주인놈을 위해 하루 종일 희생한 발에 시원한 족욕을 선사하여 달래보려는 심사였다. 아니 알량한 맘뽀를 위해서였다. 살아있는 그 청정한 물에 고린내 나는 발을 디밀었다. 잔인 무엄 하게시리.

아~! 잔인함을 떨치고 살기가 그리도 힘겨운 것을. 스스로 하는 일을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거기엔 부지불식간에 무모한 잔인성이 배어있을 때가 많다.

 

능가사 귀착-신라 원효와 아도화상의 손길로부터 천여 년을 살아온 사찰은 온대간데 없고 근래에 중창했을 대웅전이 휑덩그러니 넓은 터에 좌정을 했는데 어찌 영 어설프다.

한 바퀴 돌아 뒷마당 구석에서 세월의 때를 뒤집어 쓴 ‘능가사사적비’를 발견한다. 1690년(숙종16)에 건립한 사적비는 오수채(吳遂采:홍문관 대제학)가 찬자했고, 조명(曹命:사헌부 대사헌)이 전사했단다. 조명이라면 국사시간에 얼핏 들은 이름이 아닌가?

 

대웅전 앞 오른편에 왠 거목 두 구루! 한참 돋는 연푸른 싹과 진홍 꽃받침과 꽃수슬이 어우러져 떠나기 싫다는 하얀 벚꽃 몇 잎을 밀쳐내고 있었다.

잔인한 4월은 숭고한 순환의 섭리를 사찰 마당에서 보시하고 있었다.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닌 생명의 달’이라고!

07.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