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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갈뫼발 택배 - 구계탕을 받고

편하게 죽을려면 건망증을 사랑하라!


아침 7시가 체 안됐을 시각 이였다. 전화우는소리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난 피아노위의 휴대폰을 잡자 얄궂게 놈은 죽어버렸다. 잠자리에 다시 들어가려는데 놈이 다시 운다.

“여보세요, 산에 안가요?”

“예~에, 누구신데- 무슨 산요?”

“익산입니다. 오늘 산에 간다 안했어요?”

난 이때도 ‘익산’이 지명으로 헷갈리고 있었고 동문서답을 더 하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오늘이 셋째주일이고, 갈뫼의 정기산행일자고, 난 보름 전에 동행을 약속했고, 이 시간 탑승했어야 했는데 쌍통이 안 뵈자 익산님이 궁금해 전화통을 울게 한 거였다.

망연자실했다. 창문을 열었다. 빗발이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가뜩 흐린 아침, 빗발 속을 헤치며 달릴 갈뫼의 면면들의 얼굴들이 잽싸게 스치고 지나간다.

애먼 전화통을 때리라고 주문했을 송회장의 곱지 않은 인상이 선명했다.

둘째 줄 뒤로 자릴 달라고 아이더님 옆구리 쑤셨는데 내 자린 어딜까?

그나저나 살면서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 이 감쪽같은 건망증에, 치매기에 헛웃음을 내며 주절대고 있으니 아낸 ‘다 그게 가까워졌단 거요’라고 빈정거렸다.

늙어가면서 건망-치매기가 발동하는 건 편안하게 임종을 하기 위한 애착 내려놓기 연습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봤다.

치매기라도 있어 애착 끊어야 눈 감지 그 많은 그리움과 미련을 어찌하고 죽을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이 둘째 주일이란 걸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건 어제 갔다 온 여수엑스포 나들이 땜 이였다.

초친(초등학교동창) 일곱 명이 삼십년 넘게 격월재로 홀수달(月) 둘째토요일에 모임을 갖고 지난 5월 모임 땐 7월 모임엔 동부인하여 여수엑스폴 가자고 주둥일 맞췄었다.

하여 어제 엑스폴 갔다 자정을 넘겨 왔으니 오늘이 둘째일요일이고 셋째 주일 갈뫼산행은 담 주일이라고 의심의 여지없이 알고 있었던 참 이였다.

이 서글픈 충격은 아침 한 번으로 끝맺음해도 충분할 터였다. 오후 다섯 시 반쯤 이였다.

휴대폰이 부르르 떨며 울어댔다.

“강대화씨죠? 택뱁니다. 7시쯤 배달해 드리겠는데 집에 계시지요?”

“여보세요. 물건이 뭡니까? 우린 주문한 게 없는디-.”

“모르겠습니다. 주문했으니까 있겠지요. 이따 7시에 집에 계셔요.”

“여보세요. ----” 아내도 외출한데다 나 또한 외출중이라 7시 약속이 뭣해 말 하려는데 이미 전화는 끊기였다. 어쨌거나 일찍 귀가했다.

여섯시 반쯤에 외출한 아내가 ‘늦을 것 같으니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저녁잡수면 좋겠다.’고 전화통을 울려대자 난 그 울음소리에 ‘걱정 말라.’고 덤 얹어 반송했었다.

그리고 혼자 배를 채웠는데 7시 택밴 반시간이나 지나 휴대폰을 울렸다.

“택뱁니다. 집에 계시죠. 댁이 어디쯤입니까?”

“W대 사거리 농협아시죠? 그 옆에 시험정보센터 있는데----익산님?”

난 또 이때에 비로써 택배가 익산님이란 걸 알아채는 형광등 이였다. 난 무지 궁금했다.

택배란 게 뭐며 뭣 땜에 굳이 우리 집엘 와야 하는지를?

더는 오늘 산행에서 회원들에게 베푼 구계탕(九鷄湯;세 가지씩 약초를 넣고 끓인,합하여 아홉가지 약초를 세 번 끓인 약물에 닭을 넣은 탕)을 내게까지 몫 챙겨 줘야만 하는지를? 감사하단 맘으로 덥석 받아도 되는지를?

그보다 더 고맙고 미안한 건 익산님의 수고스럼에 난 그를 보다 빨리 알아채지 못하는 무디고 맹숭한 처신머리였다.

익산커플의 친절에 매번 고맙다고 말인사치례만 했단 걸 까발려 들켰으니 말이다.

진즉 익산님 전활 저장하고 한 번이나마 소통했다면 오늘 같은 형광등노릇은 좀 면할 수도 있었을 거란 후회가 생겼다.

암튼 그는 구계탕택배를 들고 우리 집엘 들어섰다. 어떻게 보관했던지 지금도 따끈따끈했다.

금년이 갈뫼산악회창립(1985년) 27주년이고 매년 7월 셋째주일엔 자축을 한다.

오늘도 그 일환으로 송(전)회장은 구계탕을 만들어 회원님들에게 포시를 한 거였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고 갈뫼님들껜 얄밉기만 했을 내게 구계탕이 배달 된 게다.

부끄럽고 황송했다. 허나 난 또 오늘의 황송함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건망증이 발작하면 갈뫼에 대한 고마움이 까맣게 잊어버릴 지도 모르니 말이다.

편하게 죽으려면 세상의 애착은 하나라도 더 내려놓아야 한다니 말이다.

갈뫼의 약진과 송회장, 익산커플, 갈뫼커플, 갈뫼산우님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2012. 7월 셋째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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