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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조계산에서의 행복했던 나 홀로

★조계산에서 행복했던 나 홀로

(선암사-장군봉-연산봉-천자암-송광사)★


am9;40, 선암사주차장을 나선 내게 7월초의 풋풋한 신록은 청량한 기운을 뿜어대며 짙은 녹음터널로 안내하고 있다. (철지난)연등이 외줄박이로 푸른 숲에 끼어 연꽃인양 산사 길을 밝히고 있고 계곡의 물소린 찬불송(讚佛頌)처럼 내 몸을 후빈다. 그 물소리에 매미의 울음은 또 다른 코러스로 녹음 속을 흐르고 있다. 나무장송이 귀를 쫑긋 세웠다. 승선교가 물길을 보여주고 강선루가 다가오더니 일주문으로 나를 안내한다.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맞는 선암사를 외면하고 나는 조계산 품에 안긴다.


아름드리 적송들이 산의 품격을 자아내고 삼나무 또한 군락을 이뤄 세속의 일탈을 재촉 하는 것만 같다. 흙산의 부드러운 찰흙 길은 촉감이 그만이나 산세의 가파름에 초하의 열습까지 더해 연신 땀을 훔쳐내게 한다. 행남절터를 끼고 장군봉 오르는 길은 졸참나무마저 미끈하게 치솟아 녹음을 한껏 들어올린 탓일까 매미의 울음소리가 가녀리다. 그 놈들에 눈귀 팔기 한 시간도 안돼 장군봉(884m)이 붉은 산나리 한 송이를 피워 나를 영접하고 있다.

옅은 안무는 검푸른 능선을 감싸고 희미한 능선은 아스라이 하늘금을 긋다 내가 오를 연산봉을 봉긋하게 그리곤 또 어딘가로 치달리고 있다. 완만한 내리막길이 그린카펫이라. 그늘사촌 죄다 여기로 모여들었나싶게 지표를 덮었고, 허허롭던지 애늙은 땅딸이 떡갈나무를 배배꼬아 키웠다. 떡잎이 하늘을 가린 녹색터널의 녹색카펫 위를 밟는 산님이 아니곤 맛 볼 수 없는 신선한 평온을 만끽케 한다. 그 멋은 어쩜 조계산만의 은전일지 모른다.


반시간 남짓을 그 멋에 취하니 산죽이란 놈이 삐긋 대더니만 그늘사초를 몰아내고 있다. 난 처음부터 나 홀로라.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진종일 폭식해도 된다. 산죽이 점점 키를 키우더니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커서 빽빽 울타리를 양쪽에 치곤 나를 가둔다. 포위된 난 그들이 빼꼼하게 내 주는 길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마주치는 사람도 없다보니 영락없이 산죽나라에 온 에트랑제라.

이따금 앞뒤를 살피는데 반시간쯤 흘렀을까 내 뒤에 활기찬 여자 산님이 당당하게 다가온다. 내 배낭에 단 카페꼬리표를 보고 말을 걸어 온 그녀는 순천 ++여고 선생님인데, 거북이 낭군님과 보속(步速)이 안 맞아 장군봉에서 랑데부를 하기로 하고 각자 즐기는 중이란다. 별난 부부의 산행와중에 그 여선생님은 나에게 오늘 산행의 행운의 여신이 돼 주었다.


오늘 예정된 산행코스에 없는(산행도에도 체크 안한) 연산봉에서 천자암 가는 코스를 그녀가 적극 강추했기 땜 이였다. 여선생과 나의 산죽사열은 반시간정도 지속됐다. 그녀는 정말 속보(速步)였다. 훤히 꿰고 있을 그녀와 달리 초행인 나는 곁눈질 구경도 해야 함에 그녀의 보폭에 맞추느라 땀이 솟았다. 연산봉까진 동행하고 싶어서였다.

떼거리 산죽도 사라져버린 연산봉(851m)은 밋밋한 봉우리였고 산님도 너 댓 사람뿐인 한량 이였다. 여선생은 거북이 신랑을 만나러 되짚고 난 그녀가 가르쳐 준 천자암 가는 길로 들어섰다. 막 정오를 넘기고 있었으니 약속된 송광사주차장 3시까지는 충분하다는 그녀의 장담에 용기백배하며 헤어졌다.


산록사이로 은빛살치는 주암저수질 훔치곤 연산봉을 내려서자마자 다시 산죽이 양편에 늘어서서 길을 내고 있다. 어느 이름모를 새가 내가 무서워 울고 있음인지 지척에서도 울어 재끼고 있다. 다람쥐 숨는 소리며 풀벌레 나는 소리까지 정오의 숲 적막을 깨뜨린다. 무슨 등산로에 이렇게 산님이 없을꼬? 천자암까지 한두 분 만나면 다행이란 아까 그 여선생님의 말이 실감난다. 짐짓 천자암에 이르기까지 두 시간 동안 사람구경을 못했었다.

삿갓바윈지 거시기 바윈지를 골몰하다 다시 아늑한 녹차밭에 마음을 내려놓았다.이 깊은 골에 찻밭이라! 천자암이0.7km라고 씌었다.나 홀로 두 시간동안 산죽을 사열하며 적요한 숲길을 걷는다는 게 얼마나한 행복인가!

자연이 한 종만의 식물로 일궈 논 조붓한 산길을 두 시간 동안 흠뻑 빠지며 교감하기란 산님이 아니곤 상상이나 할 손가? 산님이 아니곤 그 행복을 맛 볼 수가 있을까? 아니, 그 멋에 취하기나 하겠는가?


초록의 터널, 신산한 숲 향, 오밀조밀하게 굽이친 산길에 풀벌레와 야생화까지 덤 해준 시간은 금세 흘렀고, 천자암은 거대한 향나무 두 그루를 앞세워 달뜬 나를 맞는다. 송광사 삼보(비사리 구시, 능견난사)란 쌍향수는 8백년을 살아온 노목답게 속을 텅 비워 성불목(成佛木)이 돼 형형할 수 없는 위엄을 자아낸다.

인간이 인공으로 그의 속을 채운 이물이 흉하나 향나무가 더 오래도록 살아간다면, 하긴 성불자리와 외양은 무관타 하던가! 탄성이 절로 솟는다. 그의 발부리에서 솟는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종각으로 내려섰을 때에 한 쌍의 젊은 커플을 처음으로 조우할 수 있었다. 여기서 송광사는 3.4km란다. 그 십리 길도 줄곧 홀로였다. 철저한 고독의 행보라.

천자암에서 송광사에 이르는 이 산책길은 고독한 산책자에게 행복을 주고 이내 행선(行禪)의 길에 들어 성불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스님들의 수로(修路)였을까? 이런 고적한 산책로가 있기에 열여섯 분이란 국사를 낳은 송광사가 아니던가!


어느새 산죽은 사라지고 적송들이 빼곡하게 운구재골을 매웠다. 그 조붓하고 행복한 산길의 마무린 미끈한 편백이 멋지게 장식을 한다. 편백이 이렇게 장관을 이룬 곳도 드물게다. 송광사로 빨려드는 개울물소리가 힘차다. 마음을 깃털처럼 가벼이 하고 들라는 우화각(羽化閣)이 냇가에 삐져나와 흐르는 물소리에도 불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승보사찰 송광사에 든다. 13세기 보조(지눌)국사가 무신정권의 사상공고화를 위해 불교계의 결사운동을 송광사에서 마무리할 때 개혁한 선종이 조계종이라던가? 그래서 ‘조계’의 유래가 시작 됨인가? 독특한 아(亞)자형의 대웅전을 훑곤 숭보전 옆의 비사리 구시(느티나무로 만든 구유통. 4천명의 밥을 담는 밥솥)에 한참을 마음 뺏긴다. 비사리구시는 천자암의 쌍향수와 능견난사(사찰음식 담는 그릇)와 더불어 송광사의 삼보다.


바사리구시 위의 숭보전 벽화의 심우도도 색상이 선명하다. 2층 누각 해우소(선암사거가 더 유명)를 들러 사찰의 장엄하고 수려한 경내를 빠져나오니 노귀목은 신통수라도 보이겠다는 듯 아랫도리에 노오란 뭉개 구름버섯 꽃을 피웠다. 오늘의 장장12.9km의 조계산 산행이 조금도 피곤치 않음은 완만하고 편한 산책길에 다름 아닐 탓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나 홀로 산행이 실로 얼마만이던가!?


09. 07. 05



해바라기
안녕하세요!!
조계산에서 천자암을 적극 추천했던 사람입니다.
쌍향수 사진을 보고서야 역시 다녀가셨구나 했습니다.
나홀로 산행 잘 하셨다니 반갑구요, 산행기를 보자 조계산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조계산의 새로운 모습을 반추해보는 것도 괜찮네요.
영광 불빛올레는 사진을 통해 봤습니다.
그것도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그곳도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산행기 정말 반가웠어요.
2009-07-07
15:40:03



해바라기
다시 들어왔습니다. 올레길 전문가다우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서요.
사진마다 걷고 싶은 길이 보여서요. " 아, 저길은 정말 걸어보고 싶네"하는 그런 길들이 사진 속에 깃들어 있네요. 아마도 그런 길을 만들어보고 싶은 열망이 사진 속에 담겨졌겠단 생각이 듭니다.
저는 팔마중학교에 있답니다. 강대화님의 산행기 책을 받아보고 싶네요. 좋은 글과 좋은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을 거 같아서요.
많이 많이 다니시고 후일담 많이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조계산의 좋은 추억 오래 간직하셨으면 싶어요.
아, 선암사가 일본인들이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서양인들은 불국사를 한국인들은 부석사를 좋아한다네요. 그렇게 좋아하는 절의 특징을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성격까지도 조금은 파악이 되는 것 같지요?
멀리 보이는 태백의 원경을 앞마당으로 끌어들일 줄 아는 한국인들의 지혜도 부석사에서 엿볼 수 있구요.
강대화님의 글 속에 몇 줄이지만 제가 등장하자 기분이 업그레이드 됩니다.
창밖에 내리는 빗물이 산속의 푸른 이파리들을 적시어 푸른 물을 쏟아내리게 하는 것 같은 느낌!!!
2009-07-07
15:56:06



강대화
해바라기님! 참으로 반갑네요. 다시 여기서 마주치리란 생각까진 미쳐 안했거든요. 바람결에 제가 '산행기 란 들라'고 주둥인 깟지만도````.
천자암과 쌍향수는 해바라기님께서, 아니 그 조붓한 산책길에서의 두 시간의 행복도 님께서 준 선물이지요. 감사하죠. 책(낙서장이지만도)을 드리고 싶긴 한데 멍충인 후딱 묘안이 떠오르질 않네요.
심심하니 그걸 고민해 보죠.
고민이 고민으로 끝나면 <팔마중, 해바라기>라고 수신을 띄움 될까?
2009-07-07
17:09:00



해바라기
책 잘 받았습니다. 어찌나 재밌던지 깔깔깔 웃느라 책장을 넘지기 못하고 있어요.
그 순간들이 눈에 훤히 보입니다. 그리고 또 깜짝 놀란 거 있어요. 청춘의 사나인 줄 알았더니 그만...
그 비결이 뭣인고 하니 바로 젊은 사고 였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젊으면 저렇게 청춘으로 살 수도 있다는 걸 님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러니 글이 팔딱 팔딱 뛴다고나 할까!!
지인들께 인터넷 서점을 통해 꼭 구입해볼 것을 강추!! 할랍니다.
저희 학교 교무보조가 하고 많은 70여명 샘들 중에 하필 저를 찍어낼 수 있다는 데 또한번 흐뭇하기도 하고 행복했지요. 산 좋아하고 키 큰 여자 샘!! 이 한 마디에 제가 생각났다는... 이것 행복하지요??
2009-07-13
07:59:03



혜시미
강대화님!
해바라기님이 책장을 넘기지 못 할만큼 재미있었다니까
저도 그 책에 호기심이 생기는데 어쩌죠(?)
어디서 구입 가능한지 알려주세요...
저도 자연과 문학에 관심을 조금 가지고 있어서요.
2010년이 가기전에 그 책을 읽고
한 바탕 웃으면서 추억으로 걸어두고 싶네요.
2010-12-18
22:2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