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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제비 똥은커녕 헛발질한 구담봉(월악산)

★ 제비 똥은커녕 헛발질한 구담봉 ★


제비 잡으러 외중방리를 출발한 시간은 오전 10시 반을 넘겼었다. 골자기 이름이 얼음골인데다 아래 물살은 겹겹 녹음 속을 요란스레 흐르는데도 습한 열기가 골을 메우고 있어 후덥고 바람 한 점 없이 찐다.

어제까지도 산행을 반신반의해야 했는데 빗발 거둔 것만으로 다행으로 알라는 듯 초록이파리는 반지르르하다.

땀 한번 훔치고 거대한 적송을 우러러보고 또 한번 땀 털고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를 쳐다보느라 모가지를 꺾는다.


제비봉 오르는 완만한 길목이 심술타보니 후미에서 정남국선생님(회장님이라 칭하지 않고 굳이 선생이라 함은 그가 똑 같은 거짓말을 서너 번 하는 걸 내가 들었기로 그의 천직에 흠을 내려고?)이 ‘쫌만 더 오르면 제비 한 마리 잡을 수 있다’고 속 빤히 뵈는 훈수를 뱉고 있는 거였다.

그렇더라도 선생님이 설마 어른들께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을 거짓말이야 할까? 하고 귀담아두고 올랐다. 땀 쏟아내며 오른 얄궂은 기대 하나는 제빌 잡아 어찌해야 할까하는 상상에 한 시간 남짓 헉헉 숨을 고를 순 있었다.

드디어 제비봉이 발아래 깔린다.


제비는 고사하고 똥냄새도 없다. 제비가 날고 있을 하늘은 심술궂은 시엄씨 얼굴로 회색구름 살짝 가린 채 웅크리고 있고, 저 밑의 충주호도 화가 났던지 벌겋게 잔뜩 부어있다. 조금 위안은 짙은 녹음의 산령들이 뾰쪽 바윌 숨겨놓고 인사를 해 온다는 사실과 멋들어지게 굽어버린 적송들이 몸짱을 무료로 보여주고 있는 거였다. 거짓말 선생은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대신(?) 정 부회장이내 뒤를 감시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거짓선생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가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쫓아오고 있다는 거다. 삐딱하게 행동했단 여지없이 걸려들어 벌금 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라치면 더위가 싹 가신다.

말하자면 옆으로 비켜서서 숲 속에서 급한 볼일이라도 보다 그의 카메라에 찍히면 말이다. 그가 쉬파리친(국립공원에서 쉬하는 놈 찍어 포상금 타는자)줄 모르잖은가?


암튼 이리떼들은 무섭다. 그 무서운 이리떼 소굴을 걸핏하면 찾아가는 나도 무서운 놈임엔 틀림이 없겠다. 벌건 충주호가 누런 살갗을 꿈틀대니 거대한 황구렁이기 된다. 검푸른 녹색의 산자락을 굽이굽이 휘젓고 있는 황색구렁인 묘한 대칭미를 이뤄 살아있는 걸작을 연출한다.

이런 위대한 자연의 조화는 일년에 한 두 번이나 볼 수 있을까? 푸른 충주호가 황토 빛으로 변장을 한다. 충주호가 황호반(黃湖畔-黃江)으로 변신함을 산님이 아니곤 목도할 수 있을까?

황강-누런 구렁인 나를 호위하며 줄곧 따라오고 있다.

우리가 아니, 내가 산행을 즐기는 까닭의 하나는 다소 유치하드래도 색다름을 느끼는 감수성에 젖어본다는, 무디어진 시감으로나마 접하는 감흥의 맛에 빠져들기 위한 여정을 놓지 않고 싶어서다. 세월에 마모되어가는 여린 느낌의 감정이, 뭐라 딱 이름 하긴 뭐해도 그 감정이 주는 행복감에 머물고 싶어서 산을 찾는다.


늙음을 역행하진 못해도 청춘의 야릇한 감흥은 자꾸 찾아 붙들면 행복해지는 게 아닌가.

삼거리 644m, 소나무아래 햇살팀(평화, 겨울바다, 홍길동)이 점심자릴 폈는데 모처럼 정부회장이 끼였다. 식탐에 빠지다 산악모임의 사에라들도 양념이 됐다.

희생만이 따르는 여느 모임의 무보수 집행부도 ‘자기 버림’이란 사명이 없인 감내할 순 없으리라.

오직 모임의 꾸준한 발전만이 집행부의 행복이리라.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갈파했다.

“삶의 행복은 ‘즐거운 삶’ ‘만족스런 삶’ ‘의미 있는 삶’으로 나눌 수 있다.”라고.

일테면 좋아하는 차 한 잔을 들 때의 ‘즐거운 삶’은 잠깐이고, 취미생활내지 하고픈 일을 해서 얻는 ‘만족스런 삶’은 지속성을 갖지만, 누군가를 도우며 즐기는 삶은 ‘의미 있는 삶’으로 주위사람들까지 감화시켜 오래도록 높은 수준의 만족감에 젖게 하는 삶인 것이다.

나의 삶이 ‘만족감의 삶’이라면 집행부의 삶은 ‘의미 있는 삶’이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만족감의 삶’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가능 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점이겠다. 난 그(정 부회장)를 이해하려 했던가?


광회나룻터를 향해 가는 길목의 적송들은 감칠맛 나는 몸짓을 황구렁이의 몸에 문신처럼 새기고 있다. 1시 반을 넘겨 구렁이 옆구리 나루터에 닿았지만 시원함은 구렁이가 죄다 빨아들였는지 무덥다. 구렁이 건너 구담봉이 몸매를 뽐내며 유혹의 손짓을 해대는데도 별로 구미가 당기질 않는다. 시간 반쯤 그를 찾아 걸어야 하는 발목은 무거운 추를 달았는지 무겁다.

팽배해 터질 것 같은 농한 열습(熱濕)은 내 맘까지 짓밟아 나태란 유혹의 늪에 빠뜨린다. 평화님과 구담봉이라도 밟자고 나섰다. 허나 그 용기는 게으른 자의 오기였다. 구담봉 허벅지와 대각지점 벼랑의 소나무아래 배낭을 풀었다. 먼저 배낭을 푼 평화님을 핑계됨은 나의 오만의 극치라. 옥순봉과 구담봉을 십여 년 전에 실컷 애무하며 연애질 한 나는 그 기억이 발목에 무거운 추로 족쇄가 되었던 것이다.

십여 년 전, 광복절이 낀 연휴 날 황(黃) 소장(파출소)과 난 뜬금없이 설악산엘 갔었다. 일박을 하는데 밤에 퍼붓던 비는 담날도 여전하여 그놈을 피한답시고 남쪽으로 달리다 장회나루터에 이르렀고, 담배 한 모금 빨다가(그 땐 피웠다) 구담봉에 필이 꽂혔다. 입구에서 입산료를 내고 안내인의 설명대로 옥순봉부터 핥았다. 등산이 뭔지도 모른 우린 옥순봉은 연애질 할만 했다. 절경이어서 기분도 그만 이였다. 더듬다 만지고 깔고 뭉개다 구담봉을 찾아들었다.

근데 구담봉은 발목부터가 수직으로 곧게 쭉 뻗어 무르팍까지 기어오르기도 버거운지라. 황소장은 네 발 들어 나자빠지고 나는 만용과 오기로 외줄을 타고 구담봉 허벅지, 사타구니, 배꼽, 젖가슴, 목덜미, 입술, 콧잔등, 눈썹, 이마, 정수리까지 보듬어 비비고 핥으며 연애질 하느라 땀으로 멱을 감았다. 그때만 해도 한나절동안 산님 구경은커녕 냄새도 없었다. 난 홀랑 벗었다. 땀을 짜냈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온 후 열습이 정적만 씹고 있었다.

저 아래 충주호에 유람선이 내 사타구니를 향하여 어슬렁거리며 기어오고 있다. 쥐어짜던 옷가지를 흔들며 선상의 피그미(난쟁이)들을 향하여 고래고래 목청을 찢었다. 내 목소리가 선상 갑판을 때리고 메아리침인지 피그미의 답인지 모기소리가 들리긴 했다. 그들 피그미가 내 사타구니 바로 밑까지 왔을 때 난 돌연 몸에 이상을 감지했다. 서슴없이 쐈다. 물줄기가 가늘어서였지 굵기만 했음 베네주엘라 엔젤폭포보다 더 높았을지도 모른다. 뜨거운(?) 폭포수를 쏟아내니 좀 시원했다.

구담봉 바위도 죄다 알몸, 나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내가 터득한 자세는 다 끄집어내어 개지랄 떨었으니 오늘같이 후덥고 더구나 산님들도 많은데 또 연애질 하러 갈 생각이 안 나는 것도 정상이라. 추억을 꺼내 씹는 맛이란 추억의 현장에서일 때 더 감칠맛이 나는 법이라. 소나무 그늘아래서 헤헤 하고 있는데 한 마장 뒤에서 평화님은 세상물정모르고 평화스럽게 이제 그냥 가잔다.


오늘 구담봉 등정은 추억산 속에서 오름이라. 좀 찝찝하긴 했지만 추억속의 등산도 일미가 있긴 했다. 근데 사람 속 알다가도 모른다는 건 진리라. 홍길동님은 오전 내내 햇살팀 보좌를 철저히 하더니만 옥순`구담봉에선 홍길동이라. 그 실은 구담봉 바라보면서 나야 추억산에 오르기라도 했지만 평화님은 홍길동님 나타나기만을 고대했던 거다.

거짓말을 입 싹 씻고 언제냔 듯 표정관리 하는 정 선생보다야 홍길동이 홍길동 된 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으니 이미지 구긴 건 회장님 혼잔가? 늦둥이 꼬리진달래가 바위사이에서 외롭게 웃고 있었다.

새 이리떼 고맙수다. 거기다 이번 토욜엔 맴 몸으로 오라구요.

그나저나 회장님 체면 긁었다고 쫓아내면 난 어쩌나.

09. 0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