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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대승폭포와 십이선녀탕 계곡(설악산)

★ 대승폭포와 십이 선녀탕 계곡 (설악산) ★


오전 10시 무렵 버스3대는 새 이리떼들을 한계령 장수대에 풀어놓았다. 내 둔치로 생각해 보건데 이리떼소굴이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은 영양가 있는 먹잇감 땜만은 아닐 거란 게다. 암튼 골치 아픈 생각 접고 폭포계곡 길로 들어선다. 밤까지 내린 비는 골자기를 빨리 씻어내야겠다는 듯 바쁘다. 그래 아우성이다. 몇 길은 족히 될 바위 절벽에 희고 길게 달라붙은 물길은 녹음사이로 윙크를 하고 있지만 눈길 빼앗겨 서는 산님이 없다. 사중폭포라. 저 놈도 다른 산에 있음 한껏 유명세를 치룰 텐데 태생적 불운을 어쩌랴.



그를 휘돌아 벼랑을 오르는 길목은 엄청 급해 나무계단으로 지그재그 엮었다. 하늘이 구름 한 자락을 앞세우며 내려다보고 있다. 말끔히 청소를 했는데 이리떼들 혹여 해선가? 우람한 적송 가지 사이로 넘나드는 앞산의 위용이 멋들어 부린다. 근데 자자들었던 물소리가 거칠게 다가온다. 계단을 오를수록 굉음으로 협곡을 흔들어대고 있다.

그 놈도 삐긋이 초록수목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천길 단애를 뛰어내리는 물들은 혼비백산 부서져 흩날리고 계곡은 그를 주어 담느라 난리 통이다. 일찍이 봉래(양사언)선생도 이곳에 와서 입을 닫았는데 내 짧은 혀로 표현할 길이 없다. 선생은 마지못해서였을까? 맞은편 반석에 “九天銀河(구천은하)”라고 새겼었다. 시인 이백이 요산폭포를 읊은 ‘시’를 차용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 흩날리는 물이 삼천 자는 떨어지니,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하구나.>라고 이백은 찬탄했던 것이다.




천이백 고지 대승령을 넘어온 물길이 크게 어우러져 쏟아내려 한계령을 살찌우는 폭포는 전설도 많다. 포석정을 침입한 견훤은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왕위에 앉혔다(927년). 왕 노릇하기 7년, 경순왕은 천년신라의 사직까지 왕건에게 바치고(935년), 왕건은 맏딸 낙랑공주를 경순왕에게 시집보냈다. 이후 경순왕은 호사를 하며 왕건 보다 오래 살았다(81세). 그 경순왕이 낙랑공주를 품에 안고 여기 폭포에서 피서를 하곤 했단다. 경순왕이 사타구니를 시원하게 하고 있을 때 그의 맏아들 마의태자는 아버지에 반기를 들고 금강산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신라복원을 꿈꿨다. 신라부흥의 한을 달래는 인근의 아들과 이곳 어느 쯤에서 낙랑을 보듬고 노닥거렸을 애비의 심사를 생각하느라 전망대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런 경순왕의 ‘나라 바침’이 위민정략 이였다고 그를 시조로 모신 김씨문중은 찬양을 한다. 하긴 싸워봤자 백성들만 골 터질 터이니 전혀 틀린 말도 아니겠다. 경순왕, 마의태자, 낙랑공주, 양사언, 이태백을 생각하며 대승령(1210)에 올랐다. 홍송과 신갈나무가 위용을 뽐내며 짙은 녹음을 드리우는 숲길을 올라 삼거리에 이르니 정오가 막 지났다. 삼삼오오 점심자릴 편다.

난 안산을 향하기로 한다. 안산로는 출입금지구역이여서 후딱 거기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와야 된다는 입소문이 금세 쫙 깔렸었다. 그 땜에 포기하는 자가 많았다. 난 홀로 길을 즐기다 기갈을 해소하자는 속셈 이였다.

십 여분 숲길을 오르니 1396고지 아래 전망 끝내주는 바위절벽이 나를 안내한다. 배낭을 풀었다. 우측의 깊고 넓은 협곡아래 흰 띠의 물길과 도로는 뱀처럼 구불거리며 한계령굽이굽이를 만들었다.

김밥을 입에 넣는다. 저 아래 협곡을 더듬고 치맛골 숲을 스쳐온 청량미풍을 마신다. 동편으로 뻗은 한계령을 앗아버린 산록의 하늘금은 뾰족뾰족 어긋난 톱니라. 공룡능선일까? 그 놈도 눈이 시리게 담는다. 내 앉은 바위 틈새에 핀 야생화(한계령꽃인가)향도 폐에 가득 채운다.

나 홀로 멋대로 하는 여유롬과 쏠쏠한 재미는 어떤 포만감도 대신할 수없다.


높은 산의 야생화향은 엄청 짙다. 기온차가 심하기에 언제 꽃봉오리를 떨굴지 모르기에 절박한 만큼 짙은 향을 내뿜어야 한다. 충매쟁이를 불러 종을 유지하려면 코를 후비는 짙은 향밖엔 방법이 없었겠다. 그 꽃향기 속을 헤치며 희망전사님이 불쑥 나타났다. 실로 몇 개월만의 해후였다. 달마산 땅끝에서 말문을 트고 지금이니 여간 반가웠다.

근데 난 맹꽁이처럼 그녀가 회원으로 있는 엄지의 요절한 총무님의 비보를 꺼냈다. 그녀가 절감한 고인의 장례수습과정의 심고(心苦)를 알 턱이 없어서였지만, 그 얘긴 괜히 꺼내 아픈 기억을 되새김질 시켜 난 미안했다. 암튼 난 안산을 가자고 했고 그녀는 망설였다. 금지구역에 입산하다 봉변당한다고 엉거주춤하는 그녀를 난 앞장섰다. 여기까지 왔으니 갔다가 오자는 나였다.

1396봉에 올랐다. 안산이 코앞에서 회색바위 숲을 이루고 거만을 떤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대장, 부대장이 이리떼 일단을 대리고 나타났다. 빠꾸않고 선녀탕계곡으로 직진한다는 거다. 쾌재! 안심이 됐다. 돼져도 같이 돼지니까 위안이 되는 의뭉스럼이 새록새록 돋는다.


pm1시를 지나 안산(1430)정점에 섰다. 하늘을 흐르는 구름 몇 점과 쏟아지는 감미로운 햇살에 번들거리는 녹색의 이파리는 녹음 속에서 야생화향까지 일구어 쥑여 준다. 인적이 뜸해선지 태곳적 숲 같다. 안산일대를 점령한 개불알란들의 위세, 손바닥만한 곰취, 활개 오지게 편 관중이 바닥을 도배했다. 물기 밴 숲길은 열섬까지 일어 원시를 느끼게 한다. 그 습하고 미끄런 내리막길을 반시간이상 쏟아서야 십이선녀탕 계곡에 닿는다.

울울 빽빽한 녹음 속에 물소리가 정겹고 산님들도 부쩍 많다. 이리떼들 대게는 그냥 이 계곡길에서 콧노래를 불렀을 테다. 한 시간을 물 따라 숲 속을 음탐하며 걷고 있다. 물소리가 점점 골짜기를 집어삼키고 녹음 속을 숨어 든 햇살덩이도 물보라에 녹아버린다. 물들이 죽기 살기 달리다 바위위에서 곤두박질을 해댄다. 그 헤딩을 고스란히 안아야하는 바윈 서럽다. 시퍼렇게 멍들어 살점을 앗기면서도 물을 보듬느라 단단한 바위가 웅덩이가 되기까지의 아픈 세월을 가늠해 볼 수가 있을까? 두문폭포 밑의 복숭아 소(沼)는 바위의 그 기나긴 아픔을 시퍼렇게 말하고 있음이라!


그 처절한 바위의 아우성을 물은 쏟아지며 거품으로 입막음하고 있다. 그걸 사진에 가둘 수 없어 맘에 담는다. 그들, 자연의 아픔(?)을 우린 즐기자고 나무계단으로 길을 냈고 전망대를 만들었다. 허긴 그렇게라도 하기망정이지 가이드라인이 없다면 그들은 우리들에게 훨씬 더 아픈 상처를 입게 될게다.

벌써 pm3시를 넘겼다. 아직 갈 길은 6km이상인데 눈과 발은 한 없이 게으름을 피우고만 싶다. 잘 다듬어진 길은 십이선녀탕 물길과 자주 스킨십을 즐긴다.

그 스킨십이 매력이어 서랄까 산님들도 계곡물속으로 들어가 스킨십 하느라 풍경을 망친다. 나도 그림풍정 망치려드는 악취미에 재미를 붙인다. 시원하다.

십이선녀탕의 소들은 소나무와 하늘까지도 키우고 있었다. 녹음 아래 있는 소는 녹색까지 풀어 넣어 초록이다 못해 검푸르다. 거기에 알몸으로 들었다간 잉크색 보디페인팅을 하고 나올 참이다. 그것들을 즐겨야 되는데 시간이 물같이 흐른다. 설악은 어느 곳에서나 우릴 자연의 멋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거기다 친절한 산님들이 나를 하루 종일 기분 째지게 한다.

짝-홍길동님의 배려, 웬지 격의 없는 오아시스 커플,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던 정아의 인사와 무릎고장(?)이 준 각렬한 인상에 이은 두 번째 만남, 친절·씩씩·바지런함으로 똘똘 뭉친 캡틴(닉네임)을 이제야 알은 나의 둔치, 스스럼없는 달봉님과 진달래, 쿨·바이러스의 친절, 처녀 적부터 해온 등산에도 글래머인 고향소나무, 산행기에 얼굴 좀 끼우라는 부두목, 그리고 낯은 하 익고 마주치면 환하게 웃는 산님들~이 나를 산행재미에 푹 빠지게 한다.

행복한 하루였다.

09. 0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