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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삿갓골에서 바람골의 피서(덕유산)

★피서-삿갓골에서 바람골로 (덕유산)★


“참 이런 일도 다 있네요.” 바람골 냉수에 막 탁족을 한 M(엠)이 어이가 없다는 툰지, 별난 짓의 뒷맛도 씁쓸하지만은 않다는 속셈인지 웃으면서 말하고 있다.

“난 좋은데요. 별스런 경험도 하면서 더구나 엠이랑 같이 말이죠.” 내 딴엔 좀 미안함도 뭉개고 싶기도 해 너스레를 떨었다. 당황스럽고 긴박했던 한 시간여의 고민과 걱정이 말끔히 해소 된 지금에선 이젠 시간을 붙잡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시간을 붙잡는다.’는 의미가 이렇게 급물살을 타듯 변 할 줄이야 기회주의에 잘 길들여진 내 자신도 놀랬다. 불과 한 시간 전엔 엠과 난 월성재를 향해 젠 걸음을 땠었다.

“빨리 가면 한 시간 남짓이면 월성재에 이르고 거기서 양식장까진 시간 반쯤이면 갈 수 있으니 뒤풀이 시간까진 닿을 수 있을 겁니다.” 어림짐작의 계산이지만 세 시간정도 강행군을 하면 5시 반까진 갈뫼에 합류할 수 있다는, 그래 걱정할 필욘 없다는 나의 장담에

“그럴 수 있어요?” 반신반의 하며 배낭끈을 곧추매고 따라서는 엠은 다소 지쳐보였다.

그도 그럴 것은 엠은 어제도 모악산을 등정했었다는 게다.

십 분쯤 걸으니 저만치 앞서 가는 제복의 두 사내가 있다. 따라가서 월성재까지 한 시간정도에 갈 수 있느냐? 고 물었다. “예, 빨리 가면 갈 수 있지요.”라고 대답하던 사내가

“양식장으로 넘어가려고요?”라고 되묻는 게 아닌가. 그는 아까 우리가 황점에서 송어양식장을 물었던 공원 안내원 이였고, 거긴 출입통제구역이여서 갈수가 없고 발견되면 50만원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엄포를 놓았던 터다. 이젠 한 수를 더 떠서 만약 계속 가면 따라가서 산악회에 몽땅 벌금을 물게 하겠단다.

엠과 나는 되돌아설 수밖엔 방법이 없었다. 아까 황점에서 했던 고민을 다시 해야만 한다.


시간을 멈출 수는 없을까? 생뚱맞게도 며칠 전 읽던 1848년 이맘때(7월)의 파리시민들의 봉기가 생각났다.

뜨거운 여름의 파리, 총을 든 시민들은 맨 먼저 시가지에 있는 시계탑을 찾아 총알세례를 퍼부어 시계를 산산조각 냈다.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간을 붙잡고 부패한 왕정의 부조리를 끝내고 그 순간의 혁명을 영원히 지속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지금 내 팔목의 시계를 부셔 시간을 붙잡을 수 있으면 그렇게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참으로 조급하지 않음은, 애타지도 않는 기미를 엠한테서도 감지함은 내 둔치 탓일까. 다시 황점에 선 우린, 엠이 갈뫼로 소통을 시도하느라 핸폰을 뺨에서 땔 줄을 모른다. 갈뫼하늘 기사께서 이곳어딘가에 주차했을 금강산우횔 찾아 사정을 얘기하라는 거였다.

갈뫼(나승찬)도 내게 같은 전파를 보내고 있었다. 이윽고 버스주차장에서 금강산우횔 찾은 우린 그들 산우들의 친절과 흔쾌한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5시에 출발, 6시쯤에 마이산 휴게소에 우릴 내려주고, 갈뫼하늘은 그때 우릴 인수하는 007작전이 1507m의 남덕유산을 넘나드는 주파수로 짜여졌던 거였다. pm3시40분이였다.

긴장이 풀린 우린 시원한 맥주 한 잔까지 대접받곤 아래 바람골 냇가에서 탁족을 즐기며 아까완 달리 시간을 붙잡아야 하는 의미를 반추해 본다.

엠은 꼭 일년 전(08.07.17)에 갈뫼 따라간 주흘산행 때 눈인사를 했었으니 기연이라.

난 그때 엠한테서 초코 하나를 얻어먹었기로 초코(산행기에서)라 칭했었다. 금년 4월엔가 보길도행에 이은 오늘, 엠이 내게 보낸 신뢰감은 산우가 아니어도 달리 묘수는 없었겠지만 고마운 거였다.

5시가 미처 되기도 전에 금강산우회는 출발했고, 5시 반엔 마이산휴게소에 우릴 내려줘 앞서 막 도착한 갈뫼인들의 낯 뜨건 박수세례 속에 몸 파묻느라 생쥐가 되어야했다.

“필기는 잘 하는데 시험은 빵점이다.”는 갈뫼의 일침에 변명도 해명도 필요찮는 비밀 아닌 외도의 4시간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 외도를 누군가는 비틀어 짜대고 있다.

“오늘 산행기 쓸 것도 없을 텐데 잘 됐지 뭐-" 그럴런지도 모른다.


am9시반에 황점에서 시작한 삿갓봉행은, 삿갓골의 물소리와 매미의 합창이 요란한 골자기를 짙은 녹음이 커다란 삿갓마냥 차일드리우고 있었고, 이따금 햇빛은 두터운 녹색삿갓 틈새를 헤집어드느라 풀죽어 있었다. 난 오늘 산행을 피서로 생각했기에, 삿갓골에서 토옥동계곡으로 이어지는 코스에서 물소리와 매미울음에 취해보며, 진초록 숲 속의 시원한 피톤치드나 실컷 마시자는 욕심 이였다.

들머리초입에서 빨간 입술에 흰 밥풀 하나를 붙이고 있는 꽃며느리밥풀이 떼 지어 피어있고, 수정처럼 맑은 물이 바위틈에서 부대키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스멀스멀 솟는 땀을 식히며 오르는 삿갓골은 물봉선화와 자주색 꽃수술의 배초향이 물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8월의 태양도 삿갓골에선 맥이 빠진 모양이다. 녹음삿갓을 뚫느라 힘 부친 탓일 게다. 따갑질 않다.

삿갓골재를 넘어 삿갓봉을 오르는 길목엔 모시대가 보라색초롱을 달고 손에 손 잡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그 속에 한 송이 벌개미취가 구절초마냥 해맑게 웃는데 외롭다.


운무는 덕유준령을 넘실대며 산을 가두기 시작한다. 삿갓봉(1410m)이 정오도 못 되서 발아래 깔린다. 모두가 자릴 깐다. 점심을 때우자는 게다. 점심을 즐긴 후의 삿갓봉은 구름위에 덩실 떠있었다. 바야흐로 구름 위를 산책하는 게다. 산행엔 젬병이란 아이더님을 모시느라 갈묀 모처럼(?) 낭군노릇을 하는가? 꼴찌로 올라선 아이더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었다.

난 하산길은 그들과 같이 하려했다. 아이더완 웹상에서 입방알 찧어선지, 갈뫼의 짝이어선지, 순박한 인상 탓인지 산행 중에도 종알대보고 싶었다. 가장 허물없고 친밀감이 가는 익산님과 엠의 동료들과는 오전부터 동행을 해오고 있다. 엠의 직장동료 둘은 점심 먹곤 꼬리를 잘랐는지 보이질 않는다.

발아래 월성재가 운무 속에서 보일락 말락 할 때까지도, 익산 등허리에 엠이 페트병의 물을 끼얹을 때 까지만도 엠과 내가 천하의 고아신세(?)가 될 줄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엠과난 제에서 우회하산 했어야 했는데 건성으로 지나쳤다.

아니 거긴 막대로 막고 출입통제 펫말이 붙어있는 것만 보곤 이정푤 놇쳤다.

우린 가다가 뒤돌아보고, 해찰과 게으름을 오지게 피우면서 익산,갈뫼,아이더가 나타나길 뒤돌아보느라 목뼈가 비뚤어지기 직전 이였다. ‘아이더 땜이라, 아이더가 나자빠져 갈뫼와 익산이 들쳐 매고 오느라 늦는다.’ 고 난 엠이 고갯병 날까 싶다고 이죽거리고 있었다.

아마 그때, 그들 셋이 정상인이라면 나의 입방아에 귀때기가 어지간히 간지러웠을 테다.


쓰다보니 얼추 산행기가 요식은 갖춰가고 있는 성싶어 다행이라. 산엘 갔다 와서 산행길 안 씀 뭣 누고 밑 안 닦은 마냥 꺼림직 하여 입맛이 없다!

금강산우회님들 행복하세요. 친절 잊질 않을 겁니다.

근데 난 갈뫼만 오면 나사가 풀려 옆으로 새는 얼간이 짓도 다 갈뫼님들의 따뜻함 땜이려니 생각합니다.

갈뫼 고맙슴다. 미안 함다.

09. 0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