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걸어가는 길 - 산행기

깜도 안 되는 자들의 짓(도봉산)

★ 깜도 안 되는 자들의 짓 (도봉산에서) ★


“숲 앞에 문명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라고 갈파한 석학 아놀드 토인비의 말이 명치끝을 때린다. 울창한 원시림 속의 찬란한 문명이 오늘날 황패한 민둥섬으로 변한 이스트 섬을 말하기 전에 - 서울이란 거대한 콘크리트문명에 가둬버린, 속살도 수 없이 핥겨 누더기 된, 산 밑동 가장자리도 야금야금 파 먹혀든 서울의 산들을 오를 땐 떠오르는 말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의 도봉산은 신음하고 있었다. 신음하는 건 이웃한 관악산, 청계산도 다름 아니다. 이렇게 십년, 몇 십 년이 흐른 후엔 어떤 산이 될까 상상을 절한다.

서울이란 공룡이 뿜어내는 온갖 공해를 걸러내다 주말이면 사람들의 발길에 만신창이가 되곤 하는 중 늙은 모습에서 짠함보다는 불안을 느낀다.


갈 곳이 마뜩찮은 서울사람들이 기꺼이 찾는 데야 할 수 없어 품에 안는 서울의 산들을, 일부 등산객들의 무분별한 행위와 관심 밖의 정책담당자와 위정자들이 병들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른바 무신경한 ‘깜도 안 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는 거다. 그들과 우리의 이기심은 이만큼이라도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는 산에게 갈수록 허파고장을 일으키게 하는 죄인인 게다.

B와 함께 원효사를 들러 포대능선을 따라 자운봉과 신선봉, 주봉을 찍고 원통사에서 보문능선을 타는 5시간 여의 도봉산행에서, 산행다운 산행을 기대할 순 없었다함은 나의 괴벽 탓일까. 꼬리에 꼬리를 잇는 등산객과 등산로 주변 쉴만한 장소엔 빠짐없이 등산객이 점령을 하여 모처럼 만난 반가움인지 얘기소리에 시장 통 소음이라.

MP3 아님 라디오에서 토하는 노래를 튼 사람, 시내가 더러워선지 산에서 술을 마셔야하는 술고래들은 국립공원이 어떤 곳인지 알기나 하는지. 그런 깜도 안 되는 사람들 죄다 안으려니 산은 스트레스 받는다.


서쪽의 북한산릉을 이은 북쪽의 수락산, 동쪽의 불암산은 희뿌연 연무(煙霧) 속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비온 뒤 어쩌다 맑은 날 청정한 시계가 저들이 선명하게 보이면 매스컴에선 호들갑을 떤다. 뉴스거리가 된 땜이라. 스모크 현상이 정상이 된 서울 하늘에서 맑음이 정상이어야 할 게 빅뉴스가 된 게다. 비정상을 정상인 듯 착각 속에 살아가는 서울사람들 자업자득이람. 사과해야 하남?

바위에 낀 시간의 때는 매연이고, 나무는 얼굴에 생길 잃었다. 뿐이랴, 수풀은 잠도 못 잔다. 불야성의 불빛이 백야(白夜) 아닌 광야(光夜)를 이뤘고, 시도 때도 없는 등산객들로 가슴여밀 짬도 없다. 떠들기라도 안함 꾸벅잠이라도 잠시 들 텐데 저마다 입으로 정기를 내뱉는다. 그들, 산과 수풀이 보기엔 깜도 못되는 사람들이 가소롭다. 불쌍하다.

사람이 고작해야 100년 살고 죽으면서, 죽어서도 자연을 망치기만 하니까 말이다. 수십·백 년 아니, 천년을 살아가는 그들은 죽어서도 한 점 버릴 게 없이 자연을 풍요롭게 하기에 사람의 삶이란 게 하찮은 것이리라. 서울이란 메커니즘 문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나무는 제 수명도 다하지 못하고 죽어있는 놈이 부지기수다. 원통해서일까 그들은 죽어서도 서 있다.


허나 나무는 서서 죽은 채로 단단했던 껍질을 떨어뜨리고, 독성분 빠진 수피는 미생물에게 살터를 제공하며, 곤충은 산란을 하여 부화를 꿈꾸고, 진물 빠진 수피갱도엔 박테리아균이 버섯꽃을 피우게 한다. 그렇게 분해하며 자연의 양분이 된다.

어찌 사람이 깜이 되겠는가! 그 깜도 안 되는 자들이 보금자린가를 만든다고 산 가장자리를 야금야금 파먹겠단다. 산자락 파먹지 않고는 보금자리를 만들 수가 없다는 건가. 시급하지도 않는 4대강 사업에 수 십 조원을 쏟느니 몇 조원쯤 빼서 보금자릴 만들고, 더는 대가족도 아닌 초미니 가족이 30평 이상의 거주공간을(6억원이상) 사용시 중과세를 해서 그들로 하여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하게끔 하면 어떨까.

구미선진국이나 일본이 우리보다 가난하여 대형아파트를 경쟁하듯 짖진 않을게다. 다 깜도 못되는 자들의 무신경한 탐욕과 장난질이라.

도봉산에서 몇 십 년도 채 살지 못하고 죽어 서 있는 소나무는 한 평의 땅을 소유하고도 시목(屍木)으로 자연에 보시하고 있었다. 50~100여 평 이상씩 점령하고 사는 자들은 죽어서 자연에 뭘 어떻게 보시할지 궁금하다.


서울사람들은 불쌍하다. 그 서울에 포위된 산들은 더욱 불쌍하다. 좀이라도 위안을 하려면 그 깜에 깜도 못 되는 자들을 추려내어 혼 내키는 일이다.

서울사람들 당신네의 몫이라.


09. 09.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