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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울릉도판 트로이전쟁터를 가다

 울릉도판 트로이전쟁터를 가다 


새벽 4시의 곤한 잠을 붙들고 달리기 시작한 나는, 포항여객선터미널에서 뒤 마려워 일보다 쫓겨난 꺼림직 하고 얼벙함을 떨치지 못한 채, 북쪽 끝머리 깨의 묵호항을 향해 진절머리 날 여정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실패는 찬스일 수도 있고, 그걸 기회로 이용하기 나름에 따라 더 나은 보람을 가져올 수 있다.”는 취지의 회장(서동요산악)인사말은 울릉도행이 어딘가 어깃장 났다는 걸 말해 줌 이였다.

포항앞바다의 해면은 약간의 너울파도가 일었고, 바람도 나뭇잎사귀를 흔들 뿐인데 울릉도행 선편은 몽당 취소란다. 얼른 가늠이 가질 안했다.

난류와 한류가 조우하며 합치는 곳이 포항 앞바다여서 그 합류의 뒤척임이 약간의 바람에도 거친 파도를 발생시킨단다. 그 자연현상을 알리 없는 내가 거대한 배가 이따위 파도에 겁 먹고 요지부동함에 의아해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는 나 같은 무지가 빚는 만용의 고배를 철저히 외면하겠다는 그들(회사)이, 무식한 나로썬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우리는 묵호항으로 향하기로 했다. 거긴 입출항이 되고 있다는 게다. 다만 배표가 없어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시나브로 동해를 염탐하며 찬스를 기회로 포착하는 요행을 하자는 거다. 7번 국도를 한 시간여 뭉개다 내연산 자락을 후비게 됐다.

등산 합내 하는 주제에 여태 내연산도 모르고 있다 그의 품속에 발 디디며 놀랬다. 입구의 보경사를 앞세운 산골짝은 깊고 맑게 S자로 수없이 굽이친다. 안내서엔 폭포가 12개란다. 가뭄 탓에 폭포는 제 구실을 다하고 있지는 않지만 청정 깊은 골은 물소리를 가둬 나를 들뜨게 하고 있다.

수백 년을 살아왔을 적송은 세월만큼 뒤틀려 폼을 잡고 산길 내내 쇼를 하고 있다. 상수리나무는 벌써 진갈색 알을 토해내어 가을을 알리는데, 산짐승이 아닌 어느 아낙네는 비닐봉투에 상당한 도심(盜心)을 담았다. 다람쥐가 지켜보며 눈곱을 닦는데 그걸 놓치지 않으려 디카에 담았다.

바위벼랑에 붉나무가 빨갛게 불붙었다. 그 아래 소(沼)도 똑같은 가을풍정을 키우고 있다. 상상폭포로 시작한 12개의 폭포는 릴레이하며 4km를 이어진다고 안내서는 말한다. 하지만 갈수 탓에 관음과 상상이 폭포구실을 하고 내연폭포가 그나마 폭포조갈증에 걸린 나를 시원하게 해갈시켜준다.


깊은 협곡의 바위 숲과 짙푸른 소나무들은 골짜기 물이 많아질 땐 그 깊이를 두 배로 늘려 소금강을 이룰 것 만 같다. 문수, 삼지, 향로봉 잇는 등정 후에 골자기를 완주하는 7시간여의 산행은 끝내 줄 것 같다. 회장 말따나 포항에서의 실망이 안겨준 찬스 하나는 멋지게 살린 거였다.

산채나물로 끼닐 때운 후 다시 7번 도로에 들었다. 뭉개구름 간간히 띄우고 있는 파란하늘과 초록의 숲 그리고 감청색 바다가 7번 도로를 따라 줄 차게 따라온다.

시나브로 울진 성류동굴로 기어들었다. 2~3억년동안 정성들여 키운 석회순과 종류석의 신비한 걸작들을 무지막지한 사람들이 난도질한 상처와 관리부실로 공해에 까맣게 그을려 있어 그 신비감은 보다 빠르게 사라질 것 같아 아쉽다.

동굴을 나서니 양양이란 이정표가 어슬렁거린다. 몇 년 전 여름에 서쪽으로 갈라진 11번 국도를 타고 굽굽이친 계곡속의 불영계곡에서 ‘시간에 날 잡아봐라’라고 불알친구들과 더위를 쫓던 추억이 새롭다. 7번 도로를 어슬렁거리다가 삼척 해신당 성(性)태마공원에 들었다. ‘요것이 뭣인고?’를 앞세운 공원은 요것만을 수없이 잘라다 놓았다.


이곳 신남마을에 혼약한 처녀총각이 살고 있었는데, 처녀가 해초를 따다가 파도에 휩쓸려 익사했다. 그 후론 바다에서 고기가 안 잡혀 마을에선 처녀귀신을 달랜다고 남근을 만들어 사당에 놓고 제사를 올렸다. 그러자 풍어가 된 거라. 매년 정월대보름과 시월 첫 오일(午日)엔 남근을 새로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

알고 보면 처녀는 숫처녀는 아닌 셈이다. 이미 남근 맛을 알고 있고, 그걸 입증이라도 할참인지 총각(덕배)네 움막에선 처녀(애랑)와의 정사신이 리얼하게 진행 중이고, 그 장면을 엿보려고 창구멍은 찢어져 있었다. 그 절정의 쾌락은 총각도 잊을 수가 없는지 벼랑바위에서 앞 바다 위 애랑섬을 향해 목 찢어지게 악을 쓰고 있는 거다.


바다는 대답한다. 그 절절함을 실현할 양으로 시퍼런바다는 달려와 바위에 올라타 괴성을 지르며 개 거품을 뿜어대고 있다. 교접의 절정을 연출함일까. 공원엔 애꿎게 잘린 남근만 수없이 뒹굴고 있었다. 땅거미가 어슬렁대며 그들을 감싼다.

애간장은 더 자지러질 텐데. 덕배를 때놓고 포장마차에서 입가심이라도 해야 했다. 동해시를 향해 자리를 턴다. 내일 울릉 관광만 제대로 한담 ‘실패의 찬스’는 잘 붙잡은 꼴이라. (구)회장과 총무께 <남김없이 내려놓은 우리명산 답사기>를 선물했다. 책 좋아하는 두 분을 소개해 달랬더니 멀리 찾을 필요 없단다. 잠 안 올 땐 수면제 역할도 거뜬히 한다는 소리에 토 달 이유가 없잖은가.

속 뵈는 짓이긴 하지만 처음 찾는, 초면의 그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젤 좋은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동해에서 하룻밤을 입맛대로 세우라나. 잠자리 바뀜 잠까지 놓치는 잠버릇이 걱정이 됐다.


아침 9시발 울능도행 쾌속선은 떴다. 달뜸도 잠시 망망대해가 세 시간 채 무변이다. 정오의 따뜻한 햇살을 가득 안은 도동항은 오붓하게 들어앉아 지극히 평온하다. 고개 넘어 촛대바위를 앞세운 저동항 골목식당에서 기갈을 푼 우린 봉래폭포를 향했다.

상록수림이 가로수가 된 거리의 후박나무는 빨간 열매로 꽃을 피웠다. 이곳 텃주 새인 흑비들기가 열매를 애용한다나. 마가목의 윤기 돋는 이파리도 이국적이다. 봉래폭포를 오르는 길목의 삼나무군락이 단연 압권이고 처음 뵈는 왕호장이라는 약초가 특별하다.

용천수가 솟아 흘러 폭포를 이룬다는 봉래폭포는 높이 750m의 3단 폭포로 규모가 상당하다. 울릉은 지하 담수의 분출로 식수를 어지간히 해갈한다니 자연의 경이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니버스로 제주해안 일주도로를 답사키로 한다. 화산의 분출로 생긴 섬은 검은 바위로 천태만상의 형상을 만들었다.


촛대암, 거북바위를 훑다가 천길 벼랑바위를 붙들고 수백 년을 자생하고 있는 향나무들을 보면서 향나무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단 생각이 간절해졌다. 통구, 남양터널을 지나 얼굴바위를 일별하고 사자바위를 한 바퀴 빙 돈다. 투구봉이 투구를 여태 벗지 않고 있다. 얼마나 오래 쓰고 있는 걸까? 투구는 우산국(울능·독도 등 동해상의 섬들을 거느림)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의 우해왕의 모자였다.

1500년 전 우산국의 우해왕은 대마도까지 정벌하며 신라의 변방을 약탈하는 위세를 떨쳤다. 대마도에서 풍미리라 하는 여자를 대리고 와서 왕후에 앉힌 뒤론, 정사(政事)엔 등한히 하고 노닥질만 즐기니 백성이 살기 힘들어 인접한 신라를 자주 침범하여 도적질하기 일쑤였다. 신라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자 지증왕은 강릉태수 이사부[朴伊宗]를 시켜 우산국을 토벌하라고 명한다. (삼국유사; 王命伊嗿朴伊宗將兵計之 宗作木偶師子 에서)

첫 원정에서 패한 이사부(異斯夫)장군은 다시 패장이 되면 제 목숨도 뻔할 뻔자라 머릴 싸매고 고민하다가, 고대 그리스와 트로이의 십년전쟁을 마무리한 ‘트로이목마’를 생각했을까? 싶다. 어떻든 그는 목각으로 사자상을 만들어 뱃머리에 세우고 재차 출정을 하였다. 우산국엔 뱀 한 마리도 없는 곳이라 사자를 보면 기절초풍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드디어 해상전투는 시작됐다. 사자같이 생긴 짐승이 신라군의 뱃머리에 서 있어 그 요상함에 머리가 빠개질 판에, 갑자기 아가리에서 불똥이 튀고 연기가 솟아오르자 기겁을 한 우산국병사들이 일제히 뺑소니를 치기 시작했다. 패색이 짙은 우해왕은 싸울 생각도 않고 항복을 한다. 그는 이사부에게 항복하며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다. “데려온 사자를 남겨놓아 이 섬을 수호케 해 주십시요.”라고.

이사부가 수락을 하고 사자를 배에서 떼어 바다에 띄우자 해안가로 밀려가서 바위가 됐다. 사자바위라. 동시에 우해왕은 투구를 벗어 놓고 바다에 투신자살한다. 누군가가 그 투구를 주어다 바위위에 올려놓았는데 지금도 그 투구를 쓰고 있어 투구바위라 한다. 때는 512년 이였다.

울릉도판 트로이전쟁은 그렇게 싱겁게 끝났다. 허긴 목마 땜에 철옹성의 트로이도 싱겁게 무너지지 않았던가. 우산국은 후에 신라에서 고려조까지 조공을 바치다 930년 합병됐는데 언제 어인영문으로 무인도가 된다.

요즘 망령이 솟으면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을 이젠 쇠로 호랑이를 만들어 쳐들어가서 놈들의 간담을 서늘케 해주면 트로이전쟁은 3차까지 내려오게 되나! 우라질 놈들~!

대마도를 속국으로 만든 우해왕이 들으면 투구가 어찌 변화할지 상상을 절한다.

곰바위를 한바퀴 빙 돌아보고 만물상과 태하리 성하신당을 찾는다. 조선조 때 삼척태수는 매년 한차례 울릉 순찰했다. 그 땐 아마 무인도였던가 싶다. 그날도 통인(通人)과 기녀(妓女)를 대리고 순찰 왔던 태수는 잠시 오수에 들었는데,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인종(人種)을 뿌릴 것을 애원하고 사라졌다. 귀임하려고 배를 떼려는데 배가 요지부동이라.

고민하다가 아까의 선몽이 생각났다. 꾀를 내어 통인 한 사람과 기녀를 시켜 아까 쉰 곳에 가서 빠뜨린 물건을 찾아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곤 남녀가 섬으로 달려가자 일년 치의 식량을 내려놓고 배를 떼니 그제야 배가 움직이는 게 아닌가.

배가 바다 가운데로 왔을 때 두 남녀는 나타나서 울고불고 난리였다. 다시 일년이 흘렀다. 태수는 여간 궁금한 게 아니었다. 허나 두 남녀는 어인 까닭인지 부두에 백골로 남아있었다. 젊은 남녀가 안 붙을 리는 없고 필시 누군가가 성 불능으로 자결한, 원혼을 달래려 백골을 수습하여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올렸다, 그 후엔 사람들이 정착을 했단다.

지금도 울릉도 주제단(主祭壇)으로 성황당은 그 몫을 다하고 있다. 그 사당을 시간 없다는 버스기사의 말에 꽥 소리 한마디 못하고 사진으로 보는 걸로 삭혀야했다. 코끼리바위와 송곳봉을 돌아보며 나리분지를 오르느라 미니버스는 엉덩이가 부서질 판이다.

궁둥이가 부셔지는 것은 괜찮지만 급경사의 S자 오름이 어찌나 가파른지 사고날까봐 눈알이 튕기고 간이 벌렁댔다. 한참을 요동친 후에 오른 고지에 이만한 분지가 초록들판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며, 티브이의 ‘동물의 왕국’에서 심심찮게 접하는 탄자니아 세링게티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떠오르게 하였다.

그 분화구, 사방을 가파른 산릉들이 둘러 싼 평원은 제주의 유일한 평야라. 이 분화구가 만든 평원에서 수확하는 더덕은 체주의 특산물이란다. 화산토는 더덕의 섬유질을 연하게 하여 씹으면 사각사각하고 유기농법은 향을 짙게하여 도특하다. B가 그 더덕을 구입하여내게 선물하여기뻤다.

제주의 밭뙤기란 화산섬의 구조적인 조건으로 경사가 심하여 모노레일 설치로 경작을 하고 있었다. 코딱지만한 밭에 왠 모노레일일까 궁금한데 설치비용은 정부에서 7할을 보도해 줬단다. 정부가 그렇게라도 하지않음 울릉도 농민은 살아가기 어려울 테다. 해산물 아닌 섬의 주산물은 약초와 나물류란다. 무려 515가지의 산나물을 채취한다고 한다.

자연의 신비와 경외를 실감케 하는 나리분지에서를 뒤로하고 어둠을 맞는다.

칠흑같은 밤이 펼치는 빛의 황홀경은 동해의 또 다른 별천지일 것이다.
인류가 발명한 것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불빛 일게다. 그 빛이 어둠의 끝에서 하나씩 밝혀지고 그 불빛들이 일직선으로 광평선(光平線)을 이루는 장관을 목도해 봐라. 불빛 하나가 1500룩스의 조도인데 수십 개를 단 배가 수십 척이 선단을 이뤘으니 빛의 장관이라.

그 불빛이 칠흑바다를 흐르며 조그만 파장이 일면 금빛율동은 황홀경을 일군다.

내가 시인이 아닌걸, 아니 이 순간에 떠오르는 시 한 수를 외우고 있지를 못함이 슬프다.

허나 그 빛의 황홀경에 나를 잊는 즐거움은 한참 후에 더욱 달콤함으로 다가왔다. 오징어잡이 불빛은 오징어를 유인하고 나를 몰아의 순간에 이르게 한다. 그런 시간을 한두 시간쯤은 맘먹기 나름으로 맛볼 수가 있는 곳이 동해의 밤바다다.

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것도 오랜만에 맛본다. 행복한 밤이라.

09. 0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