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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불빛길 답사기

영광불빛길 4,5,6,7코스 답사기

4) 영광불빛길 4코스 : 염산포의 기독교 순교지를 찾아

* 4코스: 연흥사- 군유산 상논령- 북성리- 호암- 19도로- 오산- 205- 오동저수지- 77도로- 설도- 염산교회- 염산포구(기독교인 순교탑)- 301- 310(둑길)도로- 201- 아세아종패장- 군유염전유지- 월평- 가음산- 월야교회

- 답사기 -

연흥사에서 군유산릉을 올라서면 무안군의 지도는 활개를 쭉 편 채 뭍에 닿을까말까 내밀고 있고 영광염산. 함평신광은 같이 손을 벌려 서해를 가둬 함평만을 만들어 놨다. 3군이 바다에서 마주 접하고 밀어라도 나눌 양으로 해무 속에서 살갑게 마주한다.

군유산 능선 상논령(上論嶺)을 넘어 구불구불한 임도를 내리달려 북성저수지와 양재리를 지나 19번 길에서 오동저수지를 경유해 설도에 들어선다.

(후에 월암산 등산로를 개척하면군유산 능선을 따라 월암산정까지 등정하여 하산하면 19번 길과 만난다.) 군유산에서 월암산 등산이 수반하는 절경은 3코스에서 이미 그렸다.



<염산포구> <염산교회>
오동저수지에 손을 씻고 77번 해안도로에 잠시 들어 염산교회를 찾아든다. 염산은 일찍이 기독교복음이 전한 복전으로 독실한 신자들을 배출하였고, 6.25전란 땐 공산인민군에 77명의 목자가 목에 큰 돌을 매달고 설도포구 수문통에 수장당하는 참극에 이어 목자들의 순절이 194명에 이르렀다. 그 순교자를 기리는 순교자탑이 군의 상징처럼 포구에 있고, 이리엔 유물과 기록을 전시한 순교기념관이 있어 많은 기독교인들의 순례지가 됐다.

독실한 신앙인의 자세와 그런 신자를 낳게 한 목회자의 사도정신을 생각해 보게한다.

<순교탑> <제방길>

포구의 상가들은 이곳 특산의 젓갈과 건어물과 활어를 즐비하게 진열하여 불벗들을 반긴다. 상가도 일부 매립지에 갈끔하게 단장을 했다. 염산은 소금동네이다. 예부터 천일염으로 유명한 고장인 것이다. 낙후된 교통으로 옛명성을 잃었으나 소금의 맛은 진짜라고 염부(鹽夫)는 기세를 꺾지를 않고 있었다.

그 소금으로 맛깔낸젖갈과 각종 건어물이 늘비한 장터에서 어물류 쇼핑에 눈 팔다가 봉양저수지 둑길에 들어서양어장으로 향한 310번 재방길에 들면 넓은 평야와 바다에 접하게 된다.

대흥염전과 백산(양어)농장 한 복판을 지나다보면 비로써 염산의 품에 안기기 시작했음을 알게 된다. 종패류부화장인 아세아 수산이 한창 증설을 하고 있었는데 불벗들에게 종패류 학습체험장으로도 역할을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다. 10분쯤 걷다보면 군유염전과 바다를 막아 만든 내해의 아득함에 눈길을 뺏기게 되는데 다시 20여분을 걸어 월평마을에 들어선다.

<내해호수> <염전>

마을을 품고있는 가음산이 어머니같다.주민에게 등산로를 물으니 요즘은 잘 다니질 않아 짙어졌을거란다.벌써 출출해온다.
마을안 나무그늘에 마련한 플라스틱 의자에서 읍에서 사온 모싯잎 송편으로 허기를 때웠다. 상고름한 모싯잎 특유의 향은 천연향이 그대로 베어있어서 여느떡과는 맛이 다르다. 모시대 자체가 야생(요즘은 밭에 식재하기도 한다)이고 쌀과 버무려 찧어서 찐 웰빙음식이다보니 영광의 대표먹거리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10여년 전부터 난 고향에 올적마다 읍터미널 길가에서 커다란 양은다라에 가득 담아갔고와서 팔던 할머니에게송편을 사먹곤 했었다. 송편도 빛고을 인심처럼 어른주먹만큼 크고 값도 싸서요깃거리로 그만한 게 없었다. 이젠 영광읍의 상가는 몇백미 간격으로 모싯잎떡집이 들어섰는데, 간간히 농촌마을에서도 모싯잎떡 공장이 눈에 띈다.

영광의 모싯잎떡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불티나게팔리(전화나 인터넷으로)고 있다는 증거라.불빛길이 트이면 시골의 떡공장도 더 바빠지겠거니.

<가음산> <아세아 종패>
마을뒷산, 가음산(歌音山)을오르며 한 시간남짓 망망 서해바다를, 염산의 산야와 염전을 조망하고 하산한다. 등산길이 인적이 뜸해져 수풀이 우거져 불편했으나 앞으로 불벗들에겐 멋진 코스일 것이다. 하산하여 기독교인들의 순교터인 야월교회를 방문하여 성지를 참배하고 박물관을 관람하는 순례는 빼놓을 수 없는 코스라.

오늘날의 교회는 부와 명예만을 좇는 데 경도 되지는 안했음인지, 가난하고 낮은 자들을 챙기는 교회의 순수성을 일탈하지는 안했는지를 자문해 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날의 순교자들과 목자는 가난하고 낮은 자들이였던 것이다.

지금 지구상엔 3초마다 한 사람씩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고 세계식량기구(FAO)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만에 하나 교회가 눈총을 받는 게 있다면 영적성찰 보다는 외형확장을 선도하려는 일부 목자들의 전도된 포교땜이려니-. 방문하는 순례자에게 교회는 항상 친절한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이 순교의 터에서 발아한 신앙은 이후 불빛길 도처에 세워진 교회가 수난의 역사를 반추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음을 목격케 된다. 여기 순교의 터에서 하루일정을 마무리하는 민박을 찾아 휴식을 취함도 최상의 장소라 하겠다.

194명의 가난한, 허나 마음은 부자였던 순절자들을추념하며, 죽음을직시하며 읊은 남효은(1454~1492.조선의 문인)의 자만(自挽; 내스스로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떠올려본다.

"개미들은 내 입에 들어오고, 파리모기는 내 살을 물어뜯으며, 새로 꼰 새끼줄로는 내 허리를 조르고, 헤진 거적은 내 배를 덮었다. ---일곱구멍이 모두 막혔구나."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부자나 높은 자도 일곱구멍은 막힐 거고, 곤충들의 먹이로 제공될 뿐이다.

그러나 이름없고 가난했던 순절자들의 죽음은 숭고함으로 살아서 빛나고 있음이다.

가진것을 나누는 삶에, 의미있는 길을 후예들에게 남겨야 함이라.

09. 07. 10

5) 영광불빛길 5코스 : 백바위에서 저녁노을에 빠지다

* 5코스: 야월교회- 운곡- 313- 묘도- 죽도- 314- 당두- 상정- 두우리쉼터- 백바위

- 답사기 -

야월교회를 나선 불빛길은 가음산의 반대편을 관망하며 209, 313번도로를 따라 묘도와 죽도를 잇는 314도로에 들어서 당두까지 일직선상을 걷게 되는데, 수평선과 지평선의 실체를 실감케 된다. 가없이 펼쳐진 염전갓길의 너와집 같은 고만고만한 소금창고는 우리를 4·50년 전의 사회교과서 그림에서 보았던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추억여행을 하는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음인데 왜 소금창고는 그대로일까?

바다와 태양과 염전이 변할 수 없음이라 창고도 변하면 안 되는 걸까? 변함이란 염전바닥이 타일과 고무판으로 바뀜인가? 난 염전바닥이 타일과 고무판으로 됐음을 이제야 알았다. 이 드넓은 염전이 타일과 고무판으로 도배됐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천일염전은 불벗들에게 산교육장이 될게 틀림이 없겠다.

천일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애타게 태양을 갈구하고 불볕 태양과 싸우며 하얀 다이아몬드를 일궈내는 구릿빛 사내들과의 얘기 속에서 그들의 순박함도 짙게 묻어나나를 감화시킨다. 소금창고에서 소금출하를 위해 트럭에 싣고있는 염부 두명이 반가워 얘기를 걸었다. 오늘은 소금집하 때가 아닌지 그 넓은 염전에서 사람 만나는 게 처음이였다. 바쁜 그들에게 방해 될까봐 뭘 묻기가 조심스러웠으나 게의치 않고 나의 궁금증을 친절하게 풀어주었다.

죽도염전, 염산염전, 두우염전 등이 어우러진 염전은 가도가도 끝이 안보이는 소금밭의 지평선이라. 걷다가지쳐 안되겠다싶어 승용차로 염전을 누빈다. 염전은 바둑판식이라 차로 달린다는 감을 잡지만 왼편에 펼쳐진 바다는 미동도 않는다. 갯뻘이 다져진 길은 여간 단단하여 차편을 이용하다 잘못하여 수렁에 빠지면 어떻하나 하는 애초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허나 탄탄대로라고 할 순 없는 좁은 뻘길을 어슬렁달리면서도 불안은 떨칠 수가 없었다. 차가 미끄러워 수로에 빠지기라도 하면 어디다 도와달라고 할 사람이 안보인다. 짐짓 사람 그림자가 그리워진다.

바다와 염전의 경계를 한시간남짓 걷는 기분은 어떨까? 우리나라 (섬 아닌)해안에서 오직 염전세계 속에 한시간을 푹 빠져들 수가 있는 곳은 여기뿐일 테다.가없는 염전 한 가운데서 이글거리는 태양을 온몸으로떠받치며 서 있어보라.

오만가지의 생각이 스쳐지나간다.여태까지의 삶의 궤적을 되돌아보게 하기도 할 것이다.

더는 존재의 고마움에, 지금 이렇게 꾿굳히 버티고 있슴이 행운이란 걸 절절히 깨닫기도 할 것이다.

당두마을에, 당산나무 아래 모정에 마을사람들이 모여앉아 여름을 쫓고 있었다. 꾀 큰 마을은 풍요가 물신 풍겼다. 바다와 염전과 들판만이 시야에 들어오는 마을이니 풍성할 수밖에 없겠다. 나그네의 질문에 내 또래 어른 한분이 친절하게 응해 주신다.모정에 지도를 펴고 길답사를 하고 있다니 '무슨 길을 어디로 내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데 말문이 막혀 낭폐였다. 물 한사발을 얻어 먹고 의뭉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모르는 채 하며 자리를 떴다. 반시간쯤 들길을 가니 아까의 당두마을쯤 한 상정마을에 닿았다. 밀짚모자로 햇볕을 차단하며초록들녁과이웃한 바다를 들락거리며 오수에 졸고 있는 농촌의 풍경을 숨바꼭질하다보면 두우리쉼터(해수욕장)와 어깨 한 백바위 송림모래톱에 안기게 된다.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을 즐기거나 해발 100m쯤의 백바위 정상에 오르면 짙푸른 바다는 코밑에 인경도를 하나 띄우고 뒤론 칠산도를 점점이 뿌려놓곤 아스라이 송이도를 선뵈고 있다.

며칠 후면 해안길 달리기대회가 열린다고 여기저기 길단장을 하느라 부산했다.아침에 면사무소를 방문했을 때 신임 김종옥면장께서 마라톤대회 땜에 바쁘다고 손사레를 치던까닭의 현장이였다.푸른바다와 해풍이 날라와쌓은사구를 지킴이하고 있는 해송숲에 차를 세우고 모래톱에 빠진다.세찬 해풍과 맞서느라똑바로 서질 못한 해송들사이로 펼쳐진 하얀모래사장과 푸른바다는 액자에 넣으면 그대로 명화가 된다. 거기 망망바다엔 검은 섬들이 수평선 속으로 들락거린다. 칠산도라.

칠산도 조기는 법성굴비로 재탄생하여 명품이 되고, 법성은 전라도의 조창으로 조선조 때부터 명성을 날리니 불교도래지요 수은선생의 섭랍지란 역사성까지 더해 불빛길의 발화점이라!



백바위 정상에서 무한대의 바다에 빠져보라. 그리고 내려와 송림밭의 민박촌에서 하룻밤을 잠들라. 푸른 바다란 캔버스에 제멋대로 휜 아름드리 해송사이로 붉게 타는 해넘이를 그려보라. 푸른 캔버스는 주황으로 물들다 빨갛게 이글거리는 무안홍의 신비경을 연출한다. 대한민국 어디에 이토록 한적하고 기막힌 팬션(민박)단지가 있을까보냐.

그런데 숙박업소는 대게가 철시를 하여 빈집으로 남아 멋잇는 풍광을 다소 을씨년스럽게 하고 있었다. 장사가 안되기 땜이려니. 평상에 앉아 가게 아주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빈집이 즐비하지만 매물은 없단다. 언젠가 활기를 되찾을 거란 기대감에 철시한 채로 세월을 낚고 있음이라. 땅값도 셋다. 여기다 아담한 별장하나를 갖고 싶은욕망이 솟는 건 여길 방문한자는 누구나 공감하는바 일게다. 그만큼 멋들어진 풍광을 갖춘 곳이라.

두우리쉼터는 불빛천리길의 절반쯤 되는 지점일 테다. 바다를 안은 풍광이 너무 멋있어 불빛길의 또 하나의 명품장소가 될게 틀림없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은 썰렁해서 폐허가 된 숙박시설의 을씨년스럼이 불빛길이 열리면 활기를 찾게 될 것이 눈에 선하다.

09. 07. 10



6) 영광불빛길 6코스 : 우주의 점 하나 (천상천하유아독존)

* 6코스: 백바위- 창우선착장- 야월염전- 315- 불갑방조제둑길- 동산교- 불갑방조제길- 함평염전- 21- 백수농장방파제길- 지산교- 백수서초교

- 답사기 -

백바위 솔숲에서 하룻밤을 휴식한 후 밭두렁길을 반시간남짓 걸으면밭구릉 넘어 창우마을이 나타나고, 마을 고샅길을 휘젖고 선착장에 서면 막 기착한 통통선이 갓 잡아온 싱싱한 어물들에 눈길을 팔게 된다. 불벗들 래왕이 많아지면 이 활어들은 백바위숲 팬션단지에서 마주하게 되리라. 더는 창우마을 뒷산 해안갓길이 뚫리면 단숨에 달려와 뱃전에서 흥정하고 회쳐먹는 즐거움을 추억으로 간직하게 될 것이다.밤의 바닷가를 거닐다 이곳 선착장의 포장마차에서 회안주에 소주 한 잔을 걸치는 낭만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테다. 선착장에서 이어지는 해안재방둑길은 엷은 안무 속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야월염전을 끼고 가는 315번 길에서 검은 옥토에서 일궈내는 하얀 다이아몬드의 집산을 다시 목격케 된다. 불갑방조제길을 따라 녹색들판을 반시간쯤 달리다(걷다가 지쳐 다시 차로 답사했다)동산교에서 U턴을 하여 함평염전에 발을 담그고 다시 서해의 수평선을 이어 놓은 백수농장의 초록지평선을 바라보게 된다.


녹색과 청색물감을 풀어헤쳐놓은 끝없는 수·지평의 원심점에 서면 비로써 나의 실체에 대해 자문케 된다. 무한대 우주 속에서의 점 하나인 자신을 발견하고 초라함에 자조하다가 언뜻 우주의 중심이 자신임을 자각하게 된다. 나 없는 우주는 의미가 없음이라. 나(自我)의 지존을 체감하고 생의 의의와 목적을 반추하게 될 것 같다.

그 세상의 중심에 서서 두서너 시간을 걸어보라. 시원한 바닷바람이 페를 후비고, 풍요로운 들판의 녹색 일렁임이 물결처럼 시선을 붙들다 이따금 먹구름 가득 몰고 온 하늘은 머리위의 따가운 햇볕마저 거둬가는 망망한 지·수평 속을 몇 시간째 걸어보라. 그대는 여길 왜 왔던가? 단조롭고 그래 심드렁해지다 짜증나는 고행의 뒤안길을 찾아보기 위해 일상을 탈출하지 않았던가?


그 뒤안길을 빨리 찾고 싶다면 여기 백수농장방파제 길을 걸을 일이다. 그 길이 마무리 될라치면 바닷물은 깊숙이 파고들어 뻘에 통통마디와 칠면초를 키우고 농개를 비롯한 수많은 수생곤충의 또 다른 세계를 발견케 될 것이다. 불과 몇m 앞의 농개가 뻘을 열심히 정화하다 인기척에 놀라 줄행랑치더니 점하나 되어 사라지는데 내가 정화할 곳은 어디일까를 자문해 본다. 보다는 행여 내가 세상에 쓰레기만을 보태는 농개만도 못하는 자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산교를 지나 백수읍 대신리 열부순절지를 참배하여 정유재란시의 질곡의 참상을 되새김질 해 본다.

1597. 9월 왜구가 처들어오자 이곳 동래`진주정씨 문중의 부인 12명은 포로가 되느니 죽는 게 낫다고 바다에 투신한다. 붙잡혀 능욕당하거나 굴욕적인 죽음 후에 코나 귀를 베어가는 만행을 당하지 않으려는 소이연 이였다.


이른바 "시신에서 코 베가는 수모라도 면하자."는 치욕의 도피였다. 당시 일본의 대불사(大佛寺)란 절의 마당엔 조선인의 코와 귀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코 베가는 험한 세상'의 상징이였던 것이다.전쟁을 독려하려고 괴수 히데요시(風神秀吉)가 휘하 장졸들에게 시신의 코를 베어 오면 포상을 하겠다고 악발이 짓탓이라. 전무후무한 후안무치의 만행을 일본역사에 장식한것이다. 수은 강항선생은 대불사를 지나치다 그 원혼들을 위무하기 위해 제문을 지어 제사를 올렸다고 간양록에 기록하고 있다. 그 제문을 옮겨본다.

鼻耳西시; 코 귀가 서쪽으로 솟았고

隋蛇東藏 ; 긴 뱀은 동쪽에 감춰졌다

宰파藏鹽 ; 제의 건육은 소금으로 절였고

飽魚不香 ; 썩은 고기는 향기롭지 못하다

애초엔 코와 귀를 베어오라 했다. 허나 귀가 두 개여서 셈하기에 골터졌던지 나중엔 코만 베라고 닥달을 했다.

오늘날 일본 히로시마엔 '평화기념박물관'이 있다. 제2차세계대전때 미국의 원폭투하로 인한 참상을 보여주고, 피폭당시의 처참한 고통을 유추할 수 있도록 첨단체험공간도 만들었단다. 자기네들의 침략만행 자료도 있다지만 피해참상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자는 데 중점이 있단다.

왜란때 우리네의 참상이야 말할 수 없지만 전라`경상도 사람들의 살상이 극심했었고, 자연 대불사의 코무덤의 수량도 그랬을 터다. 그 만행의 자료를 모아 '일본의 코베기 전쟁'의 실상을 알리는 자료실을 열부순절지 옆에 세워 추악한 전쟁을 극명하는 장소로 거둡나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면수심의 왜적들은 그 후 우리의 국모(명성황후)도 난도질 하고 시신을 불태웠던, 그 뻔뻔스러움을 누구 하나 사죄한 적 있었던가?

일본의 만행을 새기며 서초교가 있는 봉무산자락의 어느 민박집에 여장을 푼다.

09. 07.11


7) 영광불빛길 7코스 : 환상의 백수해안도로

* 7코스: 백수서초교- 동봉- 317- 시장- 백수면사무소- 천마저수지- 오두재- 입석- 길용재- 문암- 절골- 봉화령- 야동- 답동- 석구미찜질방.

- 답사기 -

앞산 봉무산에서 조킹을 하고 동봉부락을 빠져나오면 아옹다옹 연결된 농촌마을을 왼쪽에 우측엔 가지산을 거느리며 초록들판 길을 걷는다. 시장에서 군입거릴 챙기고 천마저수지를 향한다. 여기서부턴 등산로라. 오두재를 넘고 길용호수에 오르는 산로를 오른다. 모처럼 산행이 시작됨이다. 호수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 수풀 사이로 넘나드는 풍광에 경탄케 된다.


푸른 바다는 쉬지 않고 달려와 절벽 따라 굽이친 해안도로를 잡으려다 바위에 부딪쳐 산산이 부셔진다. 그 흰 포말을 잡으려 괭이 갈매기는 곤두박질을 하는 걸까. 해안도로는 흰 구렁이처럼 기고 있다. 백수해안도로가 왜 10대 드라이브코스인지를 실감케 된다. 절골로 이은 하산에 들면 야동마을에서 유명한 백수해안도로(77번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도로변에 ‘석구미찜질방’이란 입석이 안내를 하고 있다. (등산로에 자전거길이 나기까진 바이클은 우회로를 택해 염소를 지나 27번 해안길을 달려 답동에 이른다)


십 여분 숲길 포장길을 내려가다 보면 답동부락이 푸른 서해바다를 보며 산비탈에 매달려있다. 마을 고샅 여기저기서 조망하는 서해바다는 한 폭의 그림이다. 썰물 땐 깊숙이 뻗은 갯벌에서 조개류를 채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으로 다가온다.

바닷가에 내려서면 해수찜을 하는 손님들을 마주하게 된다. 바다에서 끌어온 해수를 가마에서 끓여 옷이나 수건 따위를 적셔 찜질하는데 옆의 천연바위 탕에 들어누워 서해바다를 조망하는 완전 노천찜인 것이다. 관광버스로 온 손님들의 활기가 노천에서 가관이라. 깎아지른 바위벼랑 앞에 들어선 민박숙소는 이미 성업중이였고, 일부 손님들은 썰물의 갯벌에서 바지락 채취에 흠뻑 빠졌다. 막 잡은 바지락을 삶아서 바위웅덩이에 누워 찜질하며 먹는 여유로움과 낭만은 여기 석구미가 아니곤 어디가 있으랴?


석양의 낙조가 수평선과 갯벌을 달구면 서해는 온통 황금빛으로 눈부시다. 이토록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가장 편한 자세로 완상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 있을까. 몸은 찜 속에 시선은 해넘이를 쫓는 불벗은 정녕 혜택 받은 사람이란 걸 자각하게 될 것이다.

영광불빛길이 트면 가장 붐빌 데가 여기다 싶은 생각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 천마저수지, 오두재, 길용호를 오르는 산책로가 아직 자전거 도로로써 미흡한 점이 많아, 이 길을 등산로로 본격 조서하기 전까지는 6z

09.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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