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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불빛길 답사기

영광불빛 2코스 답사기

★ 영광불빛 오백리길 2코스 답사 ★

1) 영광불빛 2코스 "고매한 선비의 향찾아"답사기 (09.6.17~18)

* 1코스는 불갑산 등산 완주 코스로 익히 아시는 분이 많을 것 같아 다음에 답사기를 올리겠음.

* 2코스: 불갑사 천왕문-불갑사 천변 길-단산정-삼수정-운재앞 논두렁길-내산서원-박산-불갑저수지 수변 길-금계교-전촌-유봉산 임도-유성교-진천-만남의 광장‘요나’-연두개재-불갑저수지 수중보-수변공원-수중보 밑 벚꽃 길-불갑 천변 뚝길-가오교


-답사기-

영광불빛 시발점인 불갑사 천왕문 사천왕상(북방;다문, 동방;지국, 서방;광목, 남방;증장)께 묵념을 하고 불갑사 천변 길을 따라나선다. 짙은 녹음 속의 물 흐르는 소리는 갈수기 탓인지 바위와 돌멩이 사이를 힘겹게 빠져나가는 만큼 가늘다. 불갑사 저수지를 끼고 동백골이나 사찰 뒤쪽을 택하는 1차 코스 불갑산 등정도 이곳에서 시작된다.


2코스는 천변을 따르는 내림 길이라. 1600여 년 전(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인도 승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배를 타고 한양으로 오다 풍랑에 남하하여 법성나루 곶에 기착하여 모악산에 이르고 불터를 닦아 최초로 창건한 사찰이 불갑사라. 그 마라난타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찾아가는 여정이 불빛길의 한 축인 것이다.

pm8시가 안된 산사 앞의 녹색터널 길은 엷은 안개가 아직껏 아장거리고 있다. 실 날 같은 물 흐름소린 아침의 고요를 깨우겠다는 깜냥인가? 5백미쯤 걷다보면 잘 다듬어진 잔디공원이라. 천변 오솔길도 뱀처럼 굽이친다. 가을쯤 돼봐라! 빨간 상사화가 핏빛으로 불빛 길까지 물들어 불빛으로 타오를 게다.


깔끔한 상가들을 옆에 끼고 천을 따른 불빛길은 단산정으로 잠시 천변을 이별한다. 몇 백 년은 됐을 느티나무가 수호신처럼 동구를 지키고 있는데 모정엔 인기척이 없다. 여기다 나중에 불빛길 무인가게를 설치하고 이곳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토종농산물을 판매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심을 잡은 벼이삭이 초록 손짓을 무수히 해대는 들판을 조망하며 때고봉 품에 깊숙이 파고든 삼수동의 당산나무 두 그루의 영접을 받는다.

난 이맘때쯤 이곳에 사는 친구의 복분자 밭에 있기 일 수였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손을 거든다고 내 딴엔 농활을 나온 셈이지만, 이곳 복분자는 유기농청정지역이라서 값이 센대도 없어서 못 판단다. 불빛길이 트이면 여기 농산물도 더 많은 인구에 회자되리라.


운재 재를 넘는다. 잘 다듬어진 농로를 따라 내산서원에 닿았다. 한 시간쯤 소요됐다.

수은 강항(1567~1618) 선생의 청동상과 홍살문이 서원입구에서 래방객을 맞는다. 경내 푸른 잔디밭의 구릉엔 소나무가 재롱을 떨고 앙증맞은 호수 옆엔 팔각정자가 날아갈 듯하다.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강간회요 원판을 소장한 서원은 젖가슴처럼 오붓한 방마산을 뒤로 저윽히 평온하다.

호수 옆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는 불벗(불빛 길을 걷는 사람들)들에게 선생의 우국충정과 선비정신을 되새김질 해 줄 수 있는 길 -역사문화의 전당을 고민해 볼일이라.

선생은형조좌랑이란 몸으로 휴가차 향리에 머물다 정유재란(1570)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항전을 독려타 이순신장군의 휘하에 들기 위해 서해로 나갔으나 왜구에 붙잡혀 3년간 적토에서 포로생활을 해야 했다. 형극의 억류생활 속에서도 적의 지리, 군세와 파벌, 적정 등을 염탐 기록하여 주상께 세 번이나 은밀하게 상소를 올렸다. 우국충정의 일념뿐 이였던 것이다.

선생의 동짓날 임금(선조)을 향한 단심 한 편을 옮겨본다.


去歲玆辰捧御床 : 지난해 이날엔 우리 님 뫼셨는데

戴星先捧祝堯觴 : 엎드려 올린 술잔에 태평을 빌었나니

今年流落丹心在 : 임 그린 일편단심 어디선들 잊으리오

一日愁隨一線長 : 한줄기 솟는 시름만 가슴속에 어리누나

선생의 고매한 인품과 출중한 학문은 적의 식자들을 감화시켰고, 특히 왜장 광통(廣通)의 스승인 순수좌(舜首座)는 선생보다 6세 연상 이였으나 제자로 자청하여 유학을 사사하여 일본주자학의 효시가 됐다. 이때 선생께서는 四書五經, 近思統錄, 小學, 曲禮全經, 近思別錄, 通書正蒙 등을 필사해 줬는데 이 책들은 지금 일본내각문고에 보관 돼 있다.


선생의 박학을 가늠할 수 있음이다. 선생이 5세 때의 일화하나, 동리모정을 지나는 책장수가 있었다.

꼬마가 책명을 물어보자 책장수는 갓잖하나 마지못해 보따릴 풀고 ‘맹자’책을 꺼내 아느냐? 알면 공자로 주겠다, 고 너스레를 떨었다. 꼬마는 책을 펴지도 않고 줄줄 왼다. 경탄한 책장수는 약조대로 책을 주자 꼬마가 사양을 해 맹자를 모정당산나무에 걸어두고 갔단다. 하여 동리이름이 ‘맹자정’이고 현재 불갑면사무소가 있는 곳이다. 사서삼경쯤은 벌써 통달한신동(神童) 이였던 것이다.

선생께서 괴수 히데요시(風神秀吉)가 죽어 묻힌 황금전(黃金殿)을 지나다 대문에 일필휘지 격문을 썼다.

半世經營土一坏 : 반평생동안 경영한 게 흙 한줌이라

十層金殿漫崔웨 : 십층의 금전이 부질없구나

彈丸亦落他人手 : 총알만한 권력도 남의 손에 갔으니

可事靑丘犈土來 : 뭣하려 우리땅 권토하러 왔던고

따르던 순승(舜僧)이 기겁을 하였지만 선생의 기개와 학문에감흡하여 귀국길을 후원했다. 선생께선 귀국하여 순조를 배알하고 죄인이라 자청, 관직을 사양한 채 낙향하여 학문과 후학양성에 매진하였다. 선생은 일본 주자학의 비조로 숭앙 되여 1990. 3. 11일엔 오즈(大洲)시에선 <鴻儒 姜沆顯彰碑>를 세워 공적을 기리고 있다. 선생의 저서 간양록(看羊錄)은 수년 전에 mbc에서 극화 연속방영하기도 했으며 조용필씨의 동명 주제가 절창은 지금도 심금을 울린다.

선생은 나라의 록을먹는자(공복)의 우국충정과 선비정신이 어떠해야 함인지를 실천함에 오늘날 더 절실히 본받아야할 귀감이라 하겠다.

서원에서 2십여m을 산길로 접어들면 선생의 묘역이 좌측에 은거하고 얕은 오르막 임도를 오르면 박산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허나 비포장·포장한 길도 거기서 끝이라. 난 낫을 들고 숲을 헤치며 박산 가는 길을 찾는다. 일백m쯤 새로 길을 만들고 나머진 비포장의 임도를 사용하면 훌륭한 불빛길이 돼 불갑저수지 수변도로에 닿을 수 있음을 알아냈다.

(이 애길 나중에 정노성 불갑면장, 강필구 군의원과 함께한 자리에서 꺼냈을 때 두 분이 여간 긍정적이어서 뿌듯했었다.)

금계교를 건너 전촌을 향하는 수변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불갑저수지의 위용을 실감케 된다. 전촌 고샅길을 지나 유봉산 자락 임도를 걷는다. 멋대로 자란 육송의 몸매와 울창한 녹음 숲길은 인적이 없어 고적하다. 숲 사이로 언뜻언뜻 얼굴 내미는 불갑저수지는 가뭄 탓에 황갈색 속살을 들어내고, 장끼새끼 몇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황급히 숲으로 달아난다.

이렇게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산길이 몇 군데나 될까? 허나 그 숲을 파헤치고 몇 개의 별장이 이미 들어섰고 공사 중인 곳도 있었다. 이런 우리들의 욕심이 더 수려한 경관을 망가뜨리기 전에 불빛길이 조성되고, 시멘트길이 되기 전에 흙과 풀을 밟는 원래의 자연길을 만들고 지켜야 함이다. 이 호젓한 길을 사람들은 얼마나 그리워하는가! 얼마나 인성을 살찌우게 할 것인가!


일상에서 탈출하여 온갖 것 잠시나마 접고 자연에 동화하여 여유롭게 걷다보면 낭만과 피곤이란 늪에 이르고, 몇 일간동안의 이 느림의 여정이 선물하는 고행 후의 자아발견에 따른 새로운 활력소는 전혀 다른 용기로 긍정의 삶을 살게 한단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한 달여 남짓 걸은 모든 사람들의 이구동성이라. 포장된 그 산길은 한참을 굽이치다 끝났다. 허나 여기서부터 유성교까지의 임도 만들기도 그렇게 큰 토목공사랄 것도 없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되돌아서 유성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진천마을 앞을 지나는 수변도로를 따라 아스라한 저수지를 즐기다보면 이국풍의 레스토랑 한 채가 멋 부리고 있다. 만남의 광장 “요나”였다. 난 사진 몇 컷을 담고 있는데 여주인장께서 나와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난 변명(?)을 해댔다. 안으로 들잔다.

커피 대접을 받으며 “영광불빛 백리길”에 대한 얘길 쏟으며 불빛길이 빛날 때 여기 ‘요나’는 불빛 속에서 너무 행복해 할 거라고, 옆에 게스트하우스 한 채를 지어야 할 거라고, 그 때 내 어쩌다 들리면 차 한 잔 공짜로 달라고 기염을 토했다. 여사장님의 밝은 미소를 뒤로하고 연무개재를 넘는다.


차도를 벗어나 산비탈 농로를 따라 내려오면 불갑천에 닿는다. 천변 벚나무를 그늘 막으로 저수지 수중보를 향한다. 가파른 계단오름길이 숨을 헐떡거리게 한다. 허나 올라서보라! (만수였담)넘치는 물은 수중보에 흰 광목을 깔아놓고 기포를 일으키며 아우성치고, 검푸른 저수지는 바다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끝이 없다.

폭 수십m, 길이 수 백m의 재방은 공원으로 잘 다듬었다. 방마산 자락의 몇 백m수변을 수놓은 수변공원길은 불벗들에게 최고의 휴식공간으로, 로망스를 꿈꾸는 장소로 태어날 것이다. 여기서 하룻밤을 머무는 불벗들이 맞을 오색가로등, 그 불빛이 있게 한 풍력발전 바람개비, 회전하는 바람개비를 그대로 담은 호수, 호수의 검푸른 물결위에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오색불빛은 일류미네이션의 황홀경에 빠지게 할 것이다.


불갑산을 등정한 1코스 완주자나 2코스 15km정도를 걸은 불벗이 내일의 3코스를 위해 휴식을 취하지 않고는 안 될 지점인 곳이 수변공원이다.

여기다 수상레포츠가 활성화 돼 봐라. 자동차 먼지와 관광객들의 쓰레기만을 치워야하는 현재의 일회성관광코스완 질과 류가 다름이다. 2코스는 다시 수중보를 내려와서 벚나무길을 따라 불갑천을 따라 가오교까지를 이름이라.


09. 0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