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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불빛길 답사기

영광불빛길 1 코스 답사기

 영광불빛길 1코스 

                        <영광불빛길답사기는 한 달간 영광신문에 연재됐다>


 

1) 불갑산 상사화 산책길


9월 마지막 주에 찾은 불갑사의 꽃무릇은 절정을 넘겨 깔닥고갯길을 넘고 있었다. 불갑사를 향하는 갓길의 산자락은 온통 진홍의 바다였다.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마주치는 핏빛은 꽃무릇을 모르는 손님에겐 경탄과 신비경에 빠져들게 하기 충분하다 할 것이다. 그 진홍의 바다는 초록의 두터운 장막아래 펼쳐지고 있어 색의 대칭미까지 더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신선의 정원에 들어선 기분을 느끼게 한다.


< 상사화> <꽃무릇>


누가 선혈을 홍건이 뿌려 피바다를 만들었을까. 그 피바다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옅은 녹두빛 밴 흰 꽃대는 한 자쯤 올라와 피를 뿜다가 순간적으로 멈춘, 찰나의 고형체가 꽃무릇일 것 같다. 핏빛 꽃잎은 여느 꽃과는 다른 독특한 파격의 찢겨짐이라. 각혈하다 멈춘 찰나의 모션을 모아 산자락에 질펀하게 깔아놓았다.

핏빛 바다! 불갑사가 아니고선 어디서 선홍의 세계에 빠져들게 될 것인가? 그 피바다 속을 게으름 오지게 피우며 뭉그적대다 불갑사에 들어선다. 불갑사는 한창 중수 중이였다.

인도승(지금은 파키스탄 부뚜마을) 마라난타는 어렸을 때 천민여자가 도둑질하다 붙잡혀 맞아죽는 걸 보고 출가한다. 서른 살까지 수도를 하다 동진으로 갔고, 거기서 십년포교를 하다가 법성나루 곶에 기착하여 모악산에 찾아들어 불사를 일으키니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인 불갑사가 창건 된 것이다.(백제 침류왕 원년;384년)

마라난타는 도갑사, 봉갑사,불갑사를 창건사찰하고 세 사찰 중에 으뜸이라 하여 불갑사라 명명했다고 한다. 대웅전 용마루 반듯이 탑을 올리는 양식은 마라난타의 사찰건축양식인데 충렬왕 3년에 잔거거국사가 중창할 때도 이어졌다고 수은선생의 불갑사 중수기>에 기록 됐다. 규모는 전각 100여 칸에 승방 70개소, 요사채 40여칸에 수백 여명의 스님이 있었다고 했다.

불갑사 대웅전(보물830호)의 문살은 연화·국화문양의 소슬 빗살문으로 섬세하고 정교하여 그 세공의 미가 부안 내소사의 문살과 쌍벽을 이루는 사찰문의 백미다. 허나 이 천년고찰도 정유재란 때 전소의 화를 입었다.

왜구가 끼친 해악을 열거할 순 없지만 불갑사소실과 강항선생의 피랍은 이곳의 재앙중의 재앙 이였다 할 것이다.

3년간이란 형극의 포로생활 끝에 귀국하게 된 선생께선, 불갑사를 중창할 때 상량문을 쓰게 되니 역사문화는 누가 억지로 말살시킨다고 없어질 수가 없음이다. 더욱이 일제강점기엔 일제는 자신들의 치부를 없애려고 선생의 저서(간양록 등)들을 소각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역사 속에서 명명하게 밝혀지게 된다.


내 초등학교 때의 단골소풍 터가 불갑사였다. 사천왕문 앞의 거대한 전나무 네 그루의 위용에 감격하여 문안에 들어서다가 기겁을 하여 눈을 감싸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락부락하고 거대한 사천왕상은 도선국사 작품이란 데 우측에 비파를 든 지국천(持國天)과 검(劍)을 든 증장천(增長天), 좌측에 진주와 뱀을 든 광목천(廣目天)과 창과 보탑(寶塔)을 든 다문천(多聞天)상이 불교의 수호신으로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거였다.

지금은 한창 보수중이였고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은 네 그루의 전나무가 몽땅 사라진 거였다.

어수선한 경내를 벗어나 조그만 한 불갑산 저수지 갓길로 들어섰다. 저수지와 맞닿은 산자락은 온통 붉은 꽃무릇이 도배질을 하여 호수 속에 또 하나의 진홍의 세계를 연출했는데 잔잔한 물결을 타고 흐르는 색의 번짐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파란 호수에 초록과 빨갛의 산이 드리워지고 거기에 구름이 흐르고 있었으니 어찌 무딘 마음이라도 녹아들지 않겠는가. 좀 아쉬운 것은 꽃무릇이 벌써 말라빠져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는 점이였다.


꽃무릇은 일명 석산(石蒜)이라고도 하는데 9월에 개화하고 시들면 녹색의 난초형 잎이 나서 겨울·봄을 지나 여름에 지고 그 자리에 긴 꽃대가 솟아 꽃피운다. 대신 상사화는 녹색 선형의 잎이 봄에 나서 여름에 시들고 7~8월에 긴 꽃대에서 꽃을 피운다. 공히 수선화과의 비늘줄기구근 식물이지만 꽃모양과 개화시기가 다르다. 땜에 9월의 ‘불갑사 상사화축제’는 꽃무릇축제라 해야 옳다.

꽃무릇은 인경이란 구근으로 번식을 하는데 그 줄기뿌리는 살충제와 방부제로 사용되어 사찰의 불서보관이나 장서에 애용됐단다. 반시간을 꽃무릇밭의 녹음차일과 푸른 호수에 흐르는 구름에 취하다보니 동백골에 들어섰다. 명색만 동백골이지 두리번거려야 찾을 정도로 동백은 품귀였다. 우리네들의 무분별한 벌취 땜이렷다.

동백꽃의 색깔도 꽃무릇처럼 핏빛이라. 꽃무릇이 지고 진초록 이파리가 겨울을 날 때 동백꽃은 수줍은 듯 피는데 그 핏빛의 꽃망울은 시들지 않고 통째로 낙화한다. 꽃대에 매달린 채 말라 비뚤어져 가는 꽃무릇과는 사뭇 다른 절박한 아쉬움을 동백은 겨울끝자락에 남기게 된다. 내 어렸을 적 동백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리를 곱게 빗은 신부는 동백꽃으로 꾸민 식장에서 신랑과 맞절을 하며 결혼식을 올렸었다.


동백꽃이 없었다면 결혼식장은 얼마나 삭막 했을꼬! 흰 눈밭에 진초록의 동백이 떨어뜨린 빨간 꽃은 한동안이나 시들지 않고 있었다. 부부의 사랑도 최후까지 그렇게 아쉬움으로 오래 남기를 갈구함일 테다.

천연기념물112호인 참식나무도 동백얼굴보기만큼 귀한 수목이 됐다. 이곳이 자생북한 한계선인 참식나무가 소슬바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녹색 잎 뒷면의 은색깔이 뒤척거리며 흰 너울춤을 춘다. 눈이 부시다.

그 춤에 빨려 들다보면 어느새 마음까지 스산해져 새털처럼 가벼워진 자신을 발견케 된다. 그게 꼭 계절 탓만은 아닌 자연의 보시가 아닐까. 바위너덜 길을 반시간쯤 오르면 해불암이란 암자가 나타난다. 안온한 터와 전망이 일품이라.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가파른 오르막에 반시간을 숨 몰아쉬면 연실봉정상(513m)에 이른다.

깊은 골 아래 불갑사가 요람을 틀고 멀리 불갑저수지는 꼬리를 내보이며, 아득히는 불빛길의 종점일 마라난타 기착지인 법성나루 곶을 품고 있는 서해바다가 가물거린다. 청명한 날엔 무등산도 아는 채를 한다나.

서북쪽으로는 노루목, 장군봉, 투구봉, 법성봉, 노적봉, 덫고개를 넘어 전일암자를 경유한 불갑사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는데, 오늘은 남서쪽의 구수제, 용봉, 용출봉, 수도암을 들러 주차장에 이르는 등산로를 택하기로 했다.


공히 시간 반 남짓이면 주파할 코스라. 서북쪽코스가 칼바위 산준령을 타는 아기자기한 맛은 더하나, 수도암길은 소슬바람이 갈이파리 사이를 흐르며 내는 스산한 밀어와 떨어지는 낙엽을 밟는 산책길로썬 최적일 것 같아서였다.

구수재까진 산님들을 자주 마주쳤으나 용봉을 넘고 용출봉을 가는 길엔 어쩌다 조우하는 적요한 산행이여 좋았다.

상수리나무는 알밤을 토해 낙엽을 일으키고 순간 놀란 적요는 알밤을 타고 굴러 숲 속으로 사라진다. 상수리열매가 아직 숲에 숨지를 못한 놈이 부지기수인데 다람쥐는 풍요에 게을러졌는지 기미가 없다. 그들은 정녕 가을예찬을 하다 오수에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등산로라기 보단 산책길이라 해야 제격일 길목엔 나무벤치와 모정이 분위기를 돋우고 있는데, 바람은 낙엽에 앉아 사각거리며 내 맘을 스산하게 훑는다. 용출봉에서 수도암을 향하는 내리막길은 흰 밧줄이 갈색나무들을 지그재그로 연결하여 ‘막대 숲의 미로’란 독특한 멋을 풍기고 있다. 수도암을 찾는 이들을 위한 선(線)의 요술이랄까!


수도암에 닿았다. 입구에 대나무통을 흐르는 우물이 있는데 가뭄 탓에 통대는 물을 뿜어내지 않고 있다. 요사채에 들러 기침을 해도 인기척이 없어 한바퀴 휘둘렀다. 십여 년 전 나는 나의 종형께서 좌정하고 계실 때 찾아보았고, 입적하신 후 형수님께서 머물고 계신다고 들었던바 오늘 뵈려 했는데 출타하신 모양이다.

정유재란에 폐허된 암자를 일으키신 종형은 대처승이셨다. 종형께서 어떻게 스님이 되셨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본가는 마을에 있어 가솔들은 거기서 생활하고, 종형님만 여기서 불도를 닦으셨던 점이 어렸을 적 내겐 의구심 이였다. 그건 스님은 죄다 비구니로만 생각했던 땜 이였다.

암튼 동그래한 형안에 청아한 음성의 종형은 영락없는 스님이셨고, 저의 부모님 간청으로 나를 태어나게 해달라고 불전에 간절히 기원을 드렸을 테고, 부모님과 종형스님의 지극 정성한 기도 덕 이였던지 나는 누이 아홉 다음에 태어났다. 내가 고교 때도 생일엔 수도암에선 불전에 공양함을 잊지 않으셨으니, 나의 부모님의 마음을 꿰뚫는 종형님의 정성이 지극하였음을 난 성인이 되어서 알았던 것이다.


암자를 휘두른 감나무엔 붉은 가을이 주렁주렁 매달려 손길을 고대함인데 주인마저 출타라 발길을 떼어야 했다.

녹음 짙은 길가 계곡도 말랐고, 꽃무릇도 진홍의 색깔을 거둬들이고 있다. 인적까지 끊긴 수도암 길은 가을을 탐하기도, 빠져들기도 그만 이였다.

잘린 밑동시목에 우윳빛으로 소담하게 핀 느타리버섯을 모른 채 할 순 없어 포획한다. 자연산 느타리를 보기도 처음이라 긴가민가했으나 채취하여 맡는 향은 그윽하고 짙다. 횡재라! 오늘 가을을 나만큼 거둔 자가 있을까? 오늘 세 시간여의 산행은 등산이 아닌 가을을 찾아 나들이한 산책 이였고, 가을에 흠뻑 빠져 포식했던 흥분 이였다.

오늘 시작점인 주차장부근의 식당에서 점심을 때우고 식당가 뒤로 흐르는 개천둑길을 따라 불빛길에 들어서면 단산정이란 마을로 향하는 다리가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 산골풍경을 만끽하며 본격적인 ‘영광불빛 오백리길’에 들어서는 셈이다.

09. 0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