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놈, 지난주 KBS2TV ‘개콘’에서 양상국의 ‘촌놈개그’를 보고 웃다가 옛날 내 모습을 떠올리곤 실소를 했었다. 촌놈 양상국이 여동생(뻘 되는)과 찻집에 들어서자
“오빠는 (시골놈이라)미숫가루 먹을 거지?”라고 여동생이 묻자
“아메리카노! 시골 사는 사람들은 산에서 칡 캐서 칡뿌리 우려먹을 거 같아?”라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여동생이
“오빠, 시골에서 살았으면 강에서 물고기 잡고 놀았겠네?”라고 또 묻는다.
“야, 무시하지 마! 나도 PC방에서 마우스 잡고 놀랐어.”라고 반발 한다.
양상국의 말마따나 지금은 웬만한 시골도 PC방이 있을 테고, 더는 초등학교에도 PC가 있을 테니 마우스 잡고 논건 도회지애들이나 피장파장일 것이다. 영광 불갑 산골 촌놈 이였던 내가 50여 년 전에 광주로 중학교유학을 간답시고 호남에서 제일이란 서중학교 입학시험 중에 음악실기시험을 봤었다. 커다란 강당에서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는 곡을 듣고 답을 쓰는 시험 이였는데 나는 그 소리를 도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풍금소리로 음악시간을 대충 때웠던 나는 피아노의 웅장한(?)소리에 바짝 긴장까지 하여 강당 안을 꽉 메운 소리에 귀가 웅웅거릴 뿐 이였던 것이다. 더구나 서중학굔 480명 모집에 180명만 시골출신을 선발하는 차별입시로 촌놈들은 이래저래 주눅 들고 한숨만 쉬어야 했던 당시였다. 떨어지고 북중학굘 입학했는데 짝꿍이 광주토박이였다. 나의 하숙집이 짝꿍과 가까워 어느 날 그를 따라 (난생 처음으로)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게 됐었다.
짝궁이 자장면에다 간장병의 간장 몇 방울을 떨어 넣기에 (맛있는 양념인줄 알고)나도 따라하면서, 결정적인 것은 공짜여서 몽땅 부었었다.그래 그날 자장면 아닌 짜장을 먹었던 나는 그 날 이후 한동안 자장면은 내게 혐오식품 이였다. 중학교시절 이후 지금까지 줄곧 도시에서 살고 있어 촌놈 면은 했던가 싶었는데 요즘 첨단문명의 이기(利器)가 쏟아지는 통에 다시 난 촌놈으로 탈바꿈 하는 타임머신을 탔다.
양상국처럼 마우스를 잡고 놀긴 한데 PC속에 뭐가 얼마나 들어있는지 감도 못 잡을뿐더러, 어떻게 다루는지도 수박 겉핥기 식이다. 더구나 스마트폰이다 또 뭐다 뭐다 하여 IT첨단제품에 점점 눈 먼 봉사가 되가니, 이젠 출신지가 어딘가에 따라 신분이 갈라지는 게 아니라 문명의 이기 쓰는 공부를 게을리 하면 촌놈이 되는 세상이다.
예닐곱 살 되는 손자 놈이 지 부모의 IT제품 갖고 놀다보니 나보다 훨씬 도시 놈인 것 같고 난 점점 애들만도 못한 촌놈으로 전락하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하긴 애초부터 난 시골 놈이기에 촌놈으로 환원한들 손해 볼 거야 없겠다고 합리화한다. 자장에 간장 진창 부어도 모른 척 한 중학교 때의 짝꿍이 촌놈 된다면 분 해 죽을지 몰라도 난 밑져야 본전인 셈이다. 다만 손자`녀들에게 촌놈 소리 듣기 뭣할 것 같아 오늘도 마우스 잡고 노는 척은 한다.
20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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