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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금정산 고당봉(姑堂峰)

금정산 고당봉 (금곡역-가람낙조길-고당봉-호포역)

필자

금정산 고당봉등정에 나섰다. 금정산의 정상이름은 나는 여태껏 고담봉으로 알고 있었는데 고암봉, 고당봉이란 이름으로도 혼용하고 있어 1994년도 금정구청이 '금정산 표석비 건립 추진위원회'를 열어 고당봉(姑堂峰)으로 명칭을 통일했단다. 할미고(姑), 집당(堂)자를 써 '고당봉'이라 한 것은 옛날부터 우리나라 산신은 여신이었고, 금정산도 정상 바로 밑에 할미신인 고모영신을 모신 고모당집이 있어 기도하는 신도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단다. 오늘 고당봉을 오르는 산행기점도 금곡역을 택했다.

▲진흥사▼

금정산등정을 세 번쯤 했지만 그때마다 범어사를 기점 삼았었다. 인터넷상에서 금곡역~고당봉 코스가 최단거리일 것 같은데다 나에겐 미답의 처녀 등산로라 부러 택했다. 금곡역사(驛舍)를 나와 부산인재개발원 뒤 진흥사 옆구리에서 시작돼는 지그재그 덱 계단에 올라섰다. 계단 끝이 본격 산행인 듯싶었는데 산골짝에 엉덩이만한 밭뙈기 수십 개가 올망졸망 붙어있는 공창마을이 나타났다. 산동네주민들이 철거한 무허가 터에 채소를 심어 자급자족하나 싶은데 골짝이 깊어 물길이 좋고 무풍지대일 것 같아 푸성귀 밭으론 안성맞춤일 터였다.

▲불암사경내▼

김매고 있는 노인장과 잠시 얘기를 나눴는데 운동 겸 취미생활 하면서 푸성귀를 자급하니 일상이 즐거운 삶이라고 자긍심이 대단했다. 나도 내 주거지 옆에 밭뙈기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근데 두릅과 고사리 밭은 몇 마지기인지 꽤 넓다. 영농부자재 옮길 때나 수확물 운반은 어떻게 하나 궁금했다. 리어카도 다닐만한 길이 없는데. 해도 쉼터와 정자가 있고 주위 풀밭엔 빨간 야생딸기가 숨바꼭질을 한다. 놈들을 그만 놔둘 내가 아니다. 달콤 쌉쌀한 딸기는 어릴 적 추억까지 소환하여 달디 단 과즙이 된다.

공창마을 텃밭은 밭뙈기의 오합지졸 그대로가 이색적이라 눈길을 붙잡는다
정자, 연노한 텃밭주인들의 소중한 쉼터일 터!
바위굴 속엔 공창마을의 집수정이 있다고 옆 밭주인장이 가르쳐 줬다, 식수와 농수용의 보물창고란다

부산 산님들이 서울보단 인원수가 적고 친 자연주의에 야생열매에도 초연(?)해설까? 접때 달음산행 때도 입가심하느라 신바람 났었는데 오늘 또다. 깊디깊은 골짝은 바위사이를 흐르는 물소리뿐이다. 저 아래 주민들의 식수원이기도 해 청정수다. 울창한 숲은 이끼까지 걸쳐 태곳적분위기를 풍기고 덩치 큰 바위들은 차례대로 다가서 알량한 등치자랑을 한다. 나는 놈들한테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려고 머릴 짜내다만다. 이 청정한 원시 숲이 치유의 숲길로 거듭나면서 구청에선 ‘가람낙조길’이라 명명했단다. ‘가람’은 강을 의미함이니 저 앞의 ‘낙동강의 황혼’을 감상하면서 소요할 8.5km의 힐링코스는 명품길일 것이다.

깊은 청정골짝에서 흘러 온 물은 식수 내지 밭뙈기 농업용수로 쓰인다
만개한 나무 이름을 물었으나 모른단다. 하긴 자기 것이 아닌데 신경쓸 일 없으렸다
양쪽엔 밤나무꽃이 만개했는데 중앙은 무슨나무 꽃인지 ?

내 언제 가람낙조길 트레킹도 나설 참이다. 한 시간쯤 가람낙조길을 걷다보니 무너진 돌담이 나타나고 그 위를 걷는다. 아마 가람낙조길과 금정산성이 만나는 암문자리일 것이다. 허물어진 돌담은 금정산성 일 테고 그 성벽 위 길도 같이 무너지며 등산로가 됐지 싶다. 덩치 큰 나무들은 숨어버리고 활엽수관목들이 그늘사초 카펫 위에서 푸름을 뽐내고 있다. 어제 내린 빗물세수를 한 초목들은 한결 더 짙푸르다. 초행이라 갈림길이 나타나면 헷갈리기 몇 번인가? 홀로산행의 장점은 배짱이 편하단 점일 것이다.

체력단련장
가람낙조길과 동행하는 청정골짝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다

뉘 비위맞출 일도, 시간에 구애받지도 않아 잘 못 됐다 싶으면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낙관적인 생각을 나는 자책 않는다. 홀로산행은 비정규코스에서 위험이란 상수와 멋진 뷰를 접할 수도 있다는 이율배반에 나는 후자를 택하곤 한다. 극한의 위험 아닌 탐험(?)이 수반하는 희열을 즐기는 재미가 여간 쏠쏠해서다. 오늘 고당봉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 고담봉 정상 뒤쪽임을 알아 챈 후에도 속행해 정규코스에서 볼 수 없었던 감탄을 챙겼다. 기이한 바위군상들을 즐기고 되돌아 나와 정규코스에 들어섰을 때의 희열은 홀로산행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부부바위 귀엣말
일난성오쌍둥이 소나무
일난성 세쌍둥이 참나무

바위틈새를 기어오르고 내리는 스릴은 덤이고 안도감에 젖어 멋진 풍경에 매료됐을 때의 긍정적인 담력은 보너스란 생각을 하게 된다. 고당봉엔 십여 명의 산님들이 정상을 선점해 희열을 공감하나 싶었다. 나도 어느 산님의 호의로 인증 샷까지 했다. 다만 흐린 날씨와 안무 탓에 좁디좁아진 뷰로 만족해야 해 아쉬웠다. 1시 반이었다. 계단을 내려와 후미진 바위동네를 찾아들어 점심자릴 빌렸다. 점심자리에서 올려다본 고당봉이 너무나 멋지다. 엷은 안무 속 고당봉바위 끝의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산님들이 수채화로 파노라마 친다.

다섯 가족바위
▽가람낙조길 골짝엔 일난성 다쌍동이 나무군락이 많아 공창마을도 다산가족이 많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측 놈은 붙어다 떨어졌다를 세 번이나 한 별난 연리지 종족이다▼
이 소나무의 허우대는 상상을 절한다. 그실 나는 놈들을 비롯한 좀은 이상하다 싶은 놈들을 살피는 재미로 등산을 하는 셈이다. 혼자 뭔 재미가 있냐?고 혹자는 물어서 하는 말이다

아까 나도 저 바위 끝에서 저들처럼 덤벙대고 있었을 테다. 정상에 서 보지 않고선 산이 선사하는 호연지기를 읊조릴 수 없으리라. 하산한지 한 시간쯤 될까? 관목숲속에 흐지부지한 길이 하나 있다. 따라갔다. 거대한 바위들이 포갠 채 천길 벼랑을 이뤘나 싶었다. 앞 산 골짝의 안무가 느릿느릿 승천한다. 햇살이 그 틈새로 초록산록에 내려앉는다. 날이 뜰 모양이다. 안무와 햇살과 초록산골이 서로를 유혹하는데 나무늘보처럼 굼 뜬다. 약간 경사진 마당바위에 앉았다. 고갤 들어 내 머리맡을 쳐다보자 산 벚나무가 덮칠 듯하다.

이렇게 잘 빠진 쌍둥이 소나무를 어디서 볼 수가 있을까?

근디 이건 웬 횡재냐! 팥알만 한 까만 버찌가 무수히 달렸다. 일어서서 한 주먹 따 입에 넣었다. 달고 시큼한 육즙이 맛의 미각을 일깨우는데 오물거려 씨알을 뱉어내면 육즙은 참으로 알량하다. 이놈들을 다 따먹을 수도 없고 그냥 가자니 아깝다. 아내에게 전활 넣었다. 천연 야생열매라면 사족을 못 쓰는 여자다. 깨끗한 비닐 있으면 따오란다. 도둑질해올 방법을 설왕설래하다 나만 배터지게 따먹기로 했다. 70평생에 이처럼 많고 깨끗한(아침까지 안개비가 내려 버찌는 물방울을 달고 있었다)버찌를, 해발700m 청정산골에서 마주치기는 처음이다.

일난성 오쌍둥이
새끼 다섯마리가 젖을 먹는 젤 행복한 시간의 바위가족
세쌍둥인 연세가 얼마나 됐을꼬?

짐짓 앞으로도 기대할 수 없으리라. 아내 말따나 서울근교 산이라면 어림도 없으리라. 오른손바닥이 핏빛으로 홍건하다. 입술은 어떨꼬? 티슈를 꺼내 대충 문질렀다. 이 산행기를 쓰면서 내일 프라스틱통을 챙겨 버찌 서리하러 갈까? 고민하면서 막상 따와 봤자 씨알 빼면 별 볼일이 없는데다 산짐승들 먹이를 훔친다고 포기했다. 허물어진 성벽 길을 또 밟는다. 금성산성은 원래 신라시대의 성이었다. 임진왜란 때 초토화 된 금정산성은 왜구의 침입에 대항하려고 1808년(순조 때) 동래부사 박태항이 개축하여 산성을 수호했다.

이 이정표까지가 가람낙수길이지 싶었다
▲7부능선쯤 부턴 그늘사초카펫 길인데다 완만한 경사길이어서 신바람이 났다▼

평상시엔 산성내에 있는 국청사, 범어사 승려 300여명으로 성을 지키도록 했고, 유사시에는 동래, 양산, 기장읍 군인과 승려들이 소집방어 했다. 조선조 때 승려는 하층계급이었지만 입에 풀칠은 할 수가 있어 출가자가 많았다. 호포역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머뭇댔다. 아까 온 길로 하산할까 아님, 호포역이란 미답길 탐험(?)에 들까?를 생각하다 호포역을 향하는 산행길을 택했다.

▲9부능선부턴 안무 속을 탐방하는 비밀의 시간이 이어지고!

3.5km남짓이니 1시간 반 내지 2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지 싶었다. 관목숲길에 돌`바윗길은 줄곧 완만한 내리막이라 하산코스로는 괜찮다 싶었다. 초행인 내가 불안했던 건 산님들이 남긴 시그널도 없고, 어쩌다 눈에 띄는 이정표 2개가 길잡이였단 점이다. 토요일인데 이렇게도 산님이 없을까? 산행이라기 보단 트레킹으로 아주 좋은 코스인데 말이다. 문득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떠올랐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내가 가면 그 길도 똑 같은 길이 된다는 긍정적인 삶이 나를 공감케 하는 시였다.      2024. 06. 09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산머루 꽃이 한창이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 걸은 자취가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므로 해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

-후략-

* 위 사진에서 상하 2~3장의 사진은 필자가 고당봉 정상 정규등산로를 이탈한 탓에 고당봉 뒷모습을 담은 선물이다  

고당봉 뒷마실을 탐방하고 가가스로 찾은 정규등산로 - 이 계단이 보여 얼마나 반갑던지!
고모영신당, 고당봉의 연원이 된 산신당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범어사엔 오만 허드렛일을 도맡다 시피해내는 밀양출신 보살 박씨가 있었다. 동래성을 함락시킨 왜군이 울산의 본진과 합류하러 북상하던 중 범어사에 침입 사찰을 불질러버렸다. 결혼에 실패하여 불가에 귀의한 박씨는 불타버린 절을 재건하기 위해서 시주받는 일이라면 분골쇄신하는 지극정성을 다해 범어사 화주보살이란 칭송이 자자했다. 그런 박씨도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워지자 주지스님께 부탁 한마디를 한다.

“제가 죽으면 화장하여 뒷산 고당봉 밑에 고모영신을 뫼신 당집을 지어주면 죽어서도 범어사를 지키는 귀신이 되겠습니다.”라고 유언을 했다박씨 보살이 죽자 주지스님은 박보살의 유언대로 고당봉에 고모당을 지어 고모제를 올렸는데, 1년에 음력1월15일과 5월5일 두 번씩 행했다그 후 범어사는 비보사찰로 번창 융성하였으며사람들은 고모당에 올라가 기도하면 마음의 평안은 물론 소원성취 한다고 지금도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오늘도 고모당엔 기도하는 여인들이 있었다.  

하마바위
고당봉 원경
통천문
소나무로 가린 거시기바위
▲버찌 바위마을에서 횡재라고 흥분한 나는 잠시 후 도심(盜心)탈출 고민(?)까지 했다▼
피자바위
호포역까지의 처녀 등산길은 줄곧 울창한 숲속을 헤치는 트레킹코스로 좋았는데 마주치는 산님이 한 분도 없었다
함박꽃나무 잎의 어느 유충의 둥지, 저놈들은 겨울 전에 우화할 텐가? 아님 고엽이 된 채로 명년 봄을 기다릴까? 딴 나무엔 놈들의 보금자리가 일체 없다는 게 신비했다. 놈들은 어떻게 함박나무만을 골라 종의 번식자릴 마련할까? 놈들의 지혜(?)는 인간보다 한 수 더 위인가 싶어 경탄했다
인적 끈긴 등산로에서 나의 처녀등산을 응원해 준 두꺼비 씨
새끼를 거느린 혹등고래가 (초록숲)바다 위로 솟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두릅밭, 이 정도면 취미삼아 하는 밭뙈기가 아닌 완전 상업용 특작물 밭
낙동강이 마중나오고, 호포역도 손짓을 해야하는디?
석류꽃, 놈도 참 오랜만에 마주쳤다. 넘 시큼한 맛 탓에 몸 사렸던 옛날의 식감이 떠 올랐다
호포역사로 착각했던 열차공작창(?)
빨간 선이 오늘의 산행코스 ; 솔찬히 뭉그적대서 4시간 반여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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