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8경 중 제1경 - 달음산
달음산[月陰山]이 내 시선을 붙든지 2주째가 된다. 임랑해수욕장과 묘관음사 트레킹을 위해 좌천역에서 내려서자 짙푸른 산록이 앞을 가로막더니 꼭대기에 하얀 면류관을 쓰고 하늘로 치솟는 산 준령이 있어서였다. 역무원한테 물었더니 달음산인데 대중교통편이 없단다. 다음날 인터넷섭렵을 했다. 부산 아니, 기장 8경 중 제1경이란 데 해찰 오지게 하는 나는 세 네 시간이면 충분할 듯싶었다. 그렇게 벼르다가 오늘 다시 좌천역에 내렸다. 옥정사가 들머리로 애용되고 있어 역무원한테 옥정사가는 길을 물었다.
옆의 아주머니가 옥정사 갈려면 택시를 타던지 안 바쁘면 십리길이니 싸묵싸묵 걸어가는 게 낫단다. 10시 반이다. 누가 후딱 오란 사람 없고, 바쁠 것도 없는 내다. 아주머니 말대로 하천 따라가다 산골로 들어섰다. 신작로갓길에 꽃이 지천이고, 버찌와 오디가 땅에 떨어져 길바닥을 물들인다. 인적 뜸한 창고건물들 마당에서 아주머니들이 쭈그리고 앉아 미역을 건조하려고 햇볕에 널고 있는데 내가 다가가도 모른다. 기장미역이 우리나라에서 품질 좋기로 유명세를 날리는 곳이 아닌가. 또 5분쯤 걸으니 들판이 온통 청보라 색이다.
청색 버베나(Verbena)가 파도처럼 물결치면서 블루라군(Blue Lagoon)을 이뤘다. 흐지부지한 다른 꽃밭도 있는 건 아마 지자체에서 관상용으로 관리하나 싶었다. 좀 더 얼쩡대며 걷다보니 쓰러진 돌담에서 오입나간(?) 집주인 대신 보리수가 보리똥을 가지 째지게 주렁주렁 달고 꼼지락도 않고 있다. 뉘 눈치 볼 겨를도 없이 빨간 놈을 따서 입속에 집어넣었다. 달콤 쌉싸름하다. 보리똥 따먹은 지가 언제 적인가? 콧물 흘리던 시절 재수 좋아야 먹었던 추억을 차환해 버물려 씹는다. 늙으면 어릴 적 추억도 낭만적이기 보단 애틋해진다.
어떤 집 울타리의 매실나무는 외면당한지가 얼마나 됐을꼬? 한때는 매실청 재료로 각광받던 과실이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옥정사 푯말을 마주쳤다. 반시간 남짓 산촌들길을 아장댔을까? 걷기를 참으로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5월의 싱그러움이 넘쳐나는 한적한 시골에 내려앉는 따스한 햇살은 정적마저 잠재우나 싶다. 가끔 지나가는 미풍 한 소절이 초목을 어루만지고 내 뺨을 간질거린다. 감미롭다는 말을 이때 해야 하나! 걷는 건 역사다. 걷기의 탐험(?)이 삶이고 그 이정(里程)이 일생이다.
많이 걷고,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공감하면서 뭔가를 깨우치는 삶이 보람찬 일생이며 행복의 원천일 것이다. 달음산은 닿기도 전에 벌써 나를 흥분시켰다. 옥정사(玉井寺)는 달음산 취봉 서쪽 취정사(鷲井寺)에 은둔하던 원효대사가 경주에 가려고 옥녀봉 갈미재의 가파른 계곡을 내려오다 목말라 생긴 절이다. 스님은 새벽에 하산하다 동해의 일출서광에 반한 나머지 갈증을 느껴 옹달샘을 찾아간다. 마침 약수를 긷고 있는 처녀에게 샘물 한 그릇을 청하자 처녀는 표주박 가득 물을 담아 댓잎 하나를 띄워 올렸다.
그 물을 받아 마신 원효는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시원하여 거푸 세 번이나 물을 더 받아 마시고는 ‘나무관세음보살’하며 고맙단 인사를 했다. 그 순간 처녀는 몸이 굳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관세음보살석상이 됨이라. 처녀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임을 안 원효는 오체투지의 예를 올리고, 이곳이 관음도량이란 걸 알아 초막을 짓고 7일간 머물면서 동해 용왕님께 이 옥천을 지켜주시라 당부기도 들인 후 경주로 떠났다. 하여 이곳은 동해용왕님이 지켜주시는 옥천이 있고 관세음보살돌부처가 있는 명소로 유명해졌다.
후예 불자들이 암자를 지어 옥천사라 부르고 달음산 기슭에 자리한 불국사의 말사로 해돋이 때 햇살이 우리나라 산마루에 중 가장 먼저 닿는 산사로도 유명하다. 측백나무숲길은 산행초입부터 시원하다. 상끗한 피톤치드는 콧구멍을 벌렁거리게 하면서 기분을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끝없이 이어지는 흙길과 자연석계단은 피로를 날리는 발마사지 요람이다. 근디 이건 또 무슨 횡재(?)냐! 산딸기가 유혹의 손짓을 하는데 숲 깊숙이 들어서기 멈칫댄다. 뱀에 대한 두려움에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세 주먹 가득이 따 먹었다.
빨갛게 익은 싱싱한 산딸기가 아직 사람손 안 탄 건 등산객이 뜸해서일 테다. 부산서 멀고 접근하기 쉽잖아 달음산골짝은 자연생태 분위기를 체감하게 한다. 탐스럽게 열린 개 복숭아나무도 눈인사만 했다. 요즘은 매실보다 더 비싸다는데 누구 손도 타지 않았다. 텃새 까마귀가 귀신같이 나를 따라다닌다. 듣기 싫은 울음소릴 간헐적으로 토하면서~. 108계단을 오르면 본격 바위동네에 들어서고 닭 벼슬이라는 정상의 바위군락과 마주설 것이다. 닭 벼슬바위는 나를 유혹하여 오늘의 산행을 이끈 범인(?)이다.
바위동네는 활엽수들로 가려진 채 실체를 감춘다. 대신 검푸른 산록 속으로 조망되는 원경이 마음을 빼앗는다. 바위에 걸터앉아 평안을 즐긴다. 훼방꾼 하나 없는, 오수에 들고 싶은 원초적 평온에 빠져들고 싶다. 안무는 깃털처럼 감싸오고, 햇살은 연인의 숨결 같이 부드럽다. 누가 어디서 불어주는 실바람인가! 천국이 바로 여기 취봉(鷲峰)이라! 바위들이 모여 매처럼 굽어보는 형상이라 붙은 이름이란다. 정상에 기암괴석이 모여 바위동네를 이룬 취봉산 - 달음산을 기장8경 중 제1경이라 칭송한다.
달음산은 천성(千聖)산의 맥이 백운산으로 뻗고, 백운산이 동해와 맞서면서 웅크린 산이 달음산이라. “천명의 성인이 이곳에서 나와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는 기맥을 부산`기장사람들은 자랑한다. 동해의 일출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 달음산 정상이다. 그 정상이름을 취봉 또는 수리봉이라도 하며, 그 동북쪽에 있는 봉우리를 옥녀봉(玉女峰) 또는 구슬아기봉이라 한다. 취봉에 원류(源流)를 두고 흐르는 일광천을 취정(鷲井)천이라고 하며, 옥녀봉에서 발원한 계곡을 옥정(玉井)천이라 한다. 아까 떠먹은 옥정사의 약수의 시원이라!
원효스님이 갈증을 해소하려 계곡을 내려오자 처녀가 물을 길러준 샘이 옥정 아니던가! 하산하면서 찾아가 갈증을 달랠 참이다. 혹여 묘령의 아가씨가 옥수(玉水) 한 바가지 떠 줄지도 모른다. 취봉 아래에 있는 절을 취정(鷲井)사, 옥녀봉 아래의 절을 옥정(玉井)사라고 하는 소이다. 취봉에서 나는 바위마실 고샅길(?)마다 탐험하듯 들여다봤다. 언제 다시와 안길지 모르는 독수리 품이 아닌가! 해서 말인 즉 취봉을 제대로 알현하려면 낙엽 다 떨어진 만추나 늦봄이 좋을 듯싶다. 겨울은 미끄러워 위험하고~! 2024. 0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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