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해수욕장 - 죽도 - 공수항 - 해동용궁사
송정해수욕장은 모래가 매우 고운 편이고 경사가 완만해 물 안쪽으로 30m 정도 들어가도 발이 땅에 닿을 정도여서 해수욕하기에 좋은 환경이란다. 송정백사장이 유명해지기 시작 한건 조선 말기 문신인 노영경이 을사조약의 폐기를 상소하다 낙향하여 여생을 보내면서 알려졌다. 사계절 수온이 높고 파도와 바람이 파도타기에 딱 적당할 정도여서 서퍼들한텐 초급부터 상급자까지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최적지란다. 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서핑이 시작된 곳이다. 근년에 나는 송정해수욕장을 두서너 번 찾긴 했지만 수영과 서핑하곤 상관없는 관광차였다.
부산지방 대학생들의 MT의 성지라고도 하는데 오늘 송정백사장은 수영 내지 서핑 객도 안 보인다. 해운대해수욕장에 밀린 탓에 백사장에 사람도 아예 뜸한가 싶다. 죽도에 들어섰다. 대나무 섬은 지금 해송군락지로 탈바꿈했으니 죽도란 이름은 어불성설이 됐다. 아름드리 해송들이 근육자랑 경연을 펼치고 있어 이 자그마한 섬을 죽도공원이 아닌 송도공원이라 불러야 할 판이다. 죽도(竹島)라는 지명은 예전에는 경상 좌수영의 전시용(戰時用) 화살을 대량 만들 정도로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서였다.
무거운 짐 업고와 해안가에 내려놓으며 푸우~ 푸~ 깊은 숨 뱉어내는 파도소리와 물보라는 소나무까지 몸살을 앓게 해 신음소릴 보탠다. 그 불협화음이 싫지가 않는 어쩜 심난했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청량제로 나를 환장(換腸)시켜준다. 태초부터 존재한 자연의 소리라서 익숙해진 화음이 됐을까? 절벽 소나무에 기대서서 파도와 물보라와 불협화음에 빠져들어 나를 잊는다. 팔각지붕의 송일정(松日亭)이 해안가 기암 위에 위태위태하게 버티고 있다. 파도와 바람의 해식작용이 빚은 기암괴석이 송일정을 한층 더 멋지게 한다.
죽도에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를 뚫고 자라 ‘일송정’이라 했다는데 6·25때 영국군의 사격연습 표적으로 난사해 사라졌단다. 송일정은 사라진 일송정의 애틋한 부름일 테다. 지금은 새해 일출이나 정월 대보름의 달맞이로 유명해졌다. 공수항을 향한다. 파도가 방파제를 넘실대는 사람 그림자도 없는 해안가 움집에서 아낙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용궁사가는 길을 물었다. 손짓으로 방향을 가리키던 노인이 안 되겠다 싶었던지 일어서서 가르쳐준다. 황송해서 괜히 물었지 싶었다. 평생 동안 나쁜 일 한 번 안 해보고 사셨을 할머니시다.
용수도 해안가로 들어오자 바위자갈 해안에서 노익장 한 분이 고장 난 필름처럼 굼뜬다. 다가가 봤더니 따개비를 따고 있었다. 언제부터 땄는지 모르지만 플라스틱 바구니에 두 주먹정도 되지 싶었다. 노인은 따개비 보단 무료한 시간과 덤덤한 일상을 탈출하는 치유의 외출(?)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노익장은 나와 멀어지면 질수록 한 장의 멋진 해변의 묵화가 되고 있었다. 쓸쓸한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 밋밋한 시랑산허리 깨를 오른다. 해동용궁사 쪽에서 넘어오는 관광객들이 띄엄띄엄 나타났다.
해동용궁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해안절경에 있는 관음성지로 사시사철 관광객들로 붐빈다. 해동용궁사 입구의 석조 관세음보살상과 십이지상상, 보리달마대사상이 영접하듯 즐비하게 서 있는 파격이 여느 사찰과는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7층 석탑을 일별하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왼쪽 옆구리를 파고 든 약사여래불이 그 또한 파격적인 불전을 이루고 있는데 양쪽의 향나무 두 그루가 압권이다.
200여년을 몸뚱이 뒤틀면서 세파를 이겨낸 굴곡진 향나무는 음향수(우), 양향수(좌)라 하여 여기 약사여래불을 ‘쌍향수불’이라고도 한다. 이 갓바위 여래불 앞에서 조망하는 해동용궁사와 수평선을 탈출하여 달려오는 파도너울에 탄성이 절로난다. 급살 맞은 돌계단을 내려서면 성난 파도소리에 간담이 서늘해지는데 억겁의 세월 속에 목하 진행 중인 단애와의 파도의 처절한 육박전 싸움소리다. 바위협곡을 부수는 파도의 성난 절규와 부서지는 포말은 일상의 때를 말끔히 씻어주나 싶다. 참 묘한, 버려질 만한 곳에 절을 지었다,
해동용궁사는 고려 우왕 때 기근이 심해 민심이 흉흉했는데 나옹화상 혜근스님이 분황사에서 참선하던 중 꿈속에 용왕님이 나타나 봉래산자락에 절을 지으면 나라가 평안해 질거라는 현몽을 받아 이곳에 절을 짓고 보문사라 한 게 시원이란다. 대웅보전 앞에 높이 3m의 거암이 있었는데 6.25전쟁 때 해안경비를 위해 파괴해 버렸다. 하여 정암스님이 그 돌들을 다듬고 모아 사사자 3층 석탑을 세워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사리를 봉안했다. 3층 석탑에서 관망하는 동해바다와 오밀조밀 이어진 사찰의 아우라는 경탄스럽다.
돌다리를 건너면 해동선원과 영원당이 있고 맞은 편에 대웅보전, 포대화상, 용궁단, 원통문이 처마를 마주치고 있는데 원통문에 들어서면 공중으로 치솟는 계단이 있다. 그 돌계단 오르는 순간부터가 일심을 모으는 자세일 테고 가파른 숨 쉬며 올라서면 키가 10m쯤 된다는 해수관음대불이 있다. 헐레벌떡 오라선 대중은 가쁜 숨을 다잡고 합장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한가지 소원을 이뤄준다는 영험함이 회자돼서다. 기도 후에 되돌아서 조망하는 동해바다의 해원에서 전해오는 바다의 밀어에 잠시 묵상하면 마음이 그렇게 평온하다.
대웅보전 뒷길로 빠져 시랑산 벼랑의 오랑대를 찾아들었으나 출입금지구역이 됐다. 애초부터 군부대지역에다 단애 위의 오랑대 관광을 데크다리를 만들어 가능했으나 위험천만해 보였다. 5년 전에도 입구를 봉쇄해 월경을 했었는데 오늘 다시 월담을 하고 싶지 안했다. 어느 해 여름, 극심한 가뭄에 마을 사람들과 기우제를 지내던 미랑스님이 용왕의 셋째 딸 용녀와 눈이 맞아 밀애를 하다 임신을 하여 출산한다. 이를 알게 된 용왕이 대노하여 거센 파도를 일으켜 용녀가 익사케 한다. 용녀를 그리워한 미랑의 원혼을 시랑대를 어루만지는 파도가 됐다.
그 시랑대를 언제 다시 볼 수가 있을꼬? 뿐이랴! 영조9년, 이조참의(吏曹參議) 권적(權樀)이 기장현감으로 부임하여 원앙대의 빼어난 풍광에 반해 짬만 나면 이곳을 찾았다. 파도의 하얀 포말과 조약돌 굴리는 소리와 비오리들의 군무가 미치고 환장할 비경이 아닌가! 권적은 감탄하여 자작시(詩)를 읊다가 사람들이 부르던 원앙대를 자신의 벼슬인 시랑을 따서 '시랑대'라고 바위에 새겼다. 시랑대의 절경은 입소문을 타고 멀리 중국까지 회자된다.
하여 중국에서는 해동국(海東國)조선의 시랑대를 못보고 죽으면 한이 된다고 했다. 그 시랑대에 돌탑 네댓 개가 세워져 거기서 관망하는 용궁사와 동암항 해변이 환상적이다. 해안가 기암괴석에 몸을 풀다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너울이 멋진 한 씬의 동영상이다. 이 해안절경과 용궁사를 마음에 담으려고 인파 장사진까지 쳤다. 동암항을 향했다. 거기 항구마을 어디 버스정류장에서 해운대행 버스를 탈 작정이다. 2024. 05. 08
# https://pepuppy.tistory.com/872 [깡 쌤의 내려놓고 가는 길:티스토리]
에서 시랑대에 관한 미랑과 용녀의 맛깔스런 러브스토리를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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