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

오시리아해안길 (시랑대-해동용궁사-오시리아해안길-오랑대-죽도-대변항)

 

갈맷길 1코스

(시랑대-해동용궁사-오시리아해안길-오랑대-죽도-대변항)

 

 

오시리아해안길

 

봄시샘빗발을 거둔 아침은 청명하다. 푸른해원을 미끄러져 온 파도가 백사장에 기저개를 편다.  하얀포말은 모래톱의 바다어깨쭉지를 맛사지하고 있다. 그 모습이 푸근하고 정감이 묻어난다. 울 부부는 그 바다를 향한다. 해동용궁사 (海東龍宮寺)낀 갈맷길1코스를 찾기로 했다.

 

오시리아역

 

벡스코역에서 환승한 열차는 오시리아역에 우릴 내렸줬다. '오시리아'란 아리송한 단어를 첨 접한 나는 순수 우리말인지 외래어인지 어리벙벙했다. 웹상에서 검색하기 전까진 말이다.

'오'는 천혜절경의 오랑대(五郞臺)에서 '시'는 용녀와 미랑스님의 러브스토리 장소인 시랑대(侍郞臺)에서 따왔다고 한다.  거기에 '리아'는 장소를 의미하니 '오시리아'는 축복의 땅을 함축하고 있음이다.

시랑대, 데크전망대는 지금 보수 중이다

 

 

축복의 땅, 오시리아에 발 디딘 울내왼 황량한 들판 고도에 서 있는 듯한 단조로움에 잠시 얼떨떨해야 했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딱 한 사람에게 '해동용궁사 가는 길'을 물으면서 인적 없음에 의아해 했다. ktx이미지의 오시리아역사(驛舍)가 햇살에 눈 부신데 정작 손님 없는 역사는 삭막하기까지 하다.

 

 

해동용궁사


벌판 저만치에 롯데프리미엄아울렛 끄트머리에서 좌측으로 꺾어가면 용궁사이정표가 있단다. 롯데아울렛 규모도 엄청 크다. 맞은 편에 공사중인 오시리아테마파크단지도 어림이 안 된다. 길 건너편의 호텔부지도 한참 터 파기 공사중이다. 언제쯤 활기 찬 시가지가 될까? 황량한 벌판에 난무하는 건 햇살과 바람과 비들기 몇 마리다.

해동용궁사 뒤의 갈맷길

 

난 아내에게 뜬금없긴 하지만 무료해서 대단한 선견인냥 한 마디 뱉었다.

"대형마트와 공원과 상업지구가 어우른 역세권이라 이쯤에 땅 사면 나중에 괜찮겠네."라고.

아낸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듯 홀깃 날 처다봤다. 그렇게 이십여 분 걸어 해동용궁사주차장 뒤에 숨겨놓기라도 했나싶은 갈맷길에 들어섰다.

 

원앙대해안의 갈맷길

 

시랑대(侍郞臺)는 해동용궁사 뒤쪽 해변에 병풍처럼 솟은 암대(岩臺)인데 용녀(龍女)의 전설이 서린 원앙대(鴛鴦臺)라 불리던 곳이다. 이쁜 원색의 원앙새 같은 비오리(기러기목 오리과의 새)가 병풍바위 아래 출렁대는 파도를 타고 까마귀 떼처럼 무리를 지어 노닌다 하여 원앙대를 비오포(飛鳥浦)라고도 하였다. 용녀의 사랑의 아픔은 지금도 시랑대에 포말로 부서진다. 

좌측 병풍바위가 시랑대다. 데크길이 벼랑에 걸려있다  

 

 가뭄이 극심한 어느 여름이었다. 마을사람들이 용궁사 미랑스님을 모시고  원앙대 밑에 있는 해룡단에서 기우제를 올렸다. 기우제가 끝나자 스님은 넓적바위 원앙대에 올라 하염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타며 노는 비오리 떼에 몰아경이 됐었다. 해질 무렵 땅거미가 원앙대를 감싸고 어둠이 바다를 삼킬즈음 원앙대 밑의 동굴에서 느닺없이 처녀가 나타났다. 예쁜 처녀는 동해용왕의 셋째 딸, 용녀라 했다. 

시랑대 앞 파도너울

 

스님이 놀란 건 잠시, 원앙대에 올라선 그녀는 곱디고운 정장을 벗고 머리에 얹은 진주관과 산호목걸이와 칠보귀걸이를 벗어던지는 게 아닌가! 그녀의 아리따운 몸매는 달빛에  녹아들어 고혹스럽게 빛났다. 스님은 끓어오르는 욕정에 넋을 잃고 그만 처녀를 덮쳤다. 용녀도 스스럼 없이 알몸이 된 채 스님의 품 속에 안겨서 깊이 깊이 헤엄쳐들었다. 원초적인 욕정의 파도는 해일처럼 원앙대에서 밤새 넘쳐나고 있었다.

원앙대 밑 포말이 일렁인 곳이 용녀가 출현한 용궁굴 입구?

 

원앙떼가 잠자릴 찾아 원앙대에 몰려들었다. 원앙의 속삭임과 파도소리와 두 남녀의 신음소리는 어둠을 타고 밤새도록 바다의 자장가가 됐다. 용녀의 잉태는 미랑스님만 아는 비밀이었다. 출산일에 용녀는 원앙대에 자릴 깔고 스님한테 누구도 못 오게 하라며 출산준비를 한다. 용녀가 진통을 시작했다. 그 신음소리가 용왕의 귀에 들려 딸의 불륜을 알아 챈 용왕은 대노하여 성난 파도를 일궈 원앙대를 덮쳤다.

 

그 순간 막 출산한 아기의 탯줄도 미처 못 끊은 용녀는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떨어졌다. 이를 어여삐 여긴 옥황상제가 후딱 천마를 보내 용녀와 아기를 하늘나라로 구출하여 천상의 옥녀로 살게 했다. 욕정 땜에 파계승이 된 미랑의 원혼은 포말이 되어 오늘도 시랑대를 어루만지고 있다. 

 

1733년(영조 9년) 이조참의(吏曹參議)권적(權樀) 좌천되어 기장현감으로 부임한다. 그는 원앙대의 빼어난 풍광에 반해 짬만 나면 이곳을 찾았다. 파도가 흰 거품을 물고 밀려올 때마다 병풍바위에 부딪치며 조약돌 굴리는 소리와  비오리들이 군무를 추는 경계는 속계가 아닌 비경으로 미치고 환장할 판이었다.

시랑대서 본 해동용궁사와 국립수산과학관 전경

 

 

노송 우거진 절벽 위를 나는 비오리의 군무는 황홀한데, 달빛이 내려 앉은 밤풍경은 경인지라, 권적은 사람들이 부르던 원앙대를 자신의 벼슬인 시랑을 따서 '시랑대'라고 바위에 새기고 시(詩)를 남겼다. 후에 시랑대의 절경은 멀리 중국까지 회자되어 해동국(海東國)조선의 시랑대를 못보고 죽으면 한이 된다고 했다.  

 

 시랑대서 조망한 오시리아해안길, 힐튼호텔이 보인다

 

바위벼랑을 타는 시랑대데크길은 보수공사로 출입금지였다. 용궁사담벼락을 타고 시랑대뒷길을 더듬었다. 해동용궁사우측에서 조망하는 오밀조밀한 오시리아해안길은 절경이다. 짙푸른 해원이 뒤척인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는 하얀포말은 시간을 붙잡는다. 아~! 시랑대의 비련까지~!

시랑대와 용궁사담벼락사이 숨은 길

 

그 절경에 취한 미랑스님앞에 이쁜처녀가 달빛속에 반나(半裸)로 안겨왔으니 파계를 백 번 하드라도 보듬고 파도탈 만했으리라. 해동용궁사입구엔 춘원이 이곳 풍광을 예찬한 시비가 있다. 그도 시랑대서 미랑스님의 황홀한 파계를 유추 상상해봤을 테다. 

해동용궁사입구의 춘원의 시비

 

용궁사입구에 육십갑자 십이지상이 나열 불자들의 마음을 다소곳하게 다잡는다.  여기엔 유명한 나웅화상의 시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가 있다. 해동용궁사는 나옹선사가 잉태하여 해산한 기막힌 불도량이다.

육십갑자 십이지상

 

나옹선사(, 1320∼1376)의 이름은 혜근()으로 고려의 선승이며 공민왕의 왕사였다. 적극적인 현실참여 속에  참선으로 지혜를 추구하며 염불과 행선수행의 처처불을 실천하며 중생제도를 했다. 나옹선사가 경주분황사(芬皇寺)에서 정진할 때 큰 가뭄이 들어 인심이 흉흉했다.

해동용궁사

 

어느날 스님의 꿈에 용왕이 나타나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천재지변을 덜 수 있다고 선몽했다. 하여 나옹은 이곳에 절을 짓고 산 이름을 봉래산, 절 이름을 보문사(普門寺)라 하였다1376(고려우왕2)에 산고 끝에 어렵사리 창건한 보문사는 불행히도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

 

 

수놈 향나무

 

백호바위에 선 약사불전에서 조망한 용문사전경은 멍충이인 내가 봐도 빼어나다. 나옹선사가 선몽할 만한 비경이라. 약사불전은 양옆에 몇 백살 된 쌍향나무(암놈과 수놈)를 거느렸다. 문득 아까 용문석굴입구의 배불뚝이 달마선사가 떠올랐다. 배를 만지면 아들을 잉태한다 해 달마의 배는 여인들의 손떼로 반들반들했다. 그것도 옛이야기가 됐지만~.

달마선사의 배는 효험이 떨어졌나? 아무도 만지는 여인이 없다

 

소실 된 보문사는 1930년대 통도사의 운강(雲崗)스님이 중창하였다. 글고 1974년 정암(晸菴)스님이 부임하여 백일기도 중 흰옷을 걸친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꿈을 꿔 관음도량을 짓고 절 이름을 해동용궁사라 했단다. 옹색한 바위터에 자연과 조화를 이룬 사찰은 아름다움의 극치미를 이뤄 관광객들로 늘 성시다. 

 

약사불전 안의 썅향수불은 양옆에 암놈,수놈의 향나무를 거느렸다

 

아래로 내려서 좌측을 향하면 일출암과 방생암이 있고 갈맷길1코스는 오시리아해안길이란 별칭을 달고 이어진다.

해동용궁사가 얼마나 빼어난 절경인지는 오시리아해변을 걸으며 자꾸 되돌아보게 한다. 좌측엔 수산과학관이 볼거리를 만들어 공짜구경을 시킨다는 데 나는 못 본챌 했다.

 

해동용궁사

 

해안과 바위섬을 상대로 육박전을 벌이는 파도싸움이 더 멋있을 것 같아서였다. 성난파도가 몰고 온 바람결이 차가운데 해안가엔 성깔 급한 야생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느라 신음한다. 민들레가 노랗게 웃자 개나리가 한 치도 안되는 꽃잎을 벌린다. 덩달아 유채꽃도 방긋 하늘거린다. 아서라! 바람결이 세차다. 상처 입을까 조바심 난다.

 오시리아해안길

 

"기암괴석이 첩첩이 쌓여 마치 긴 칼을 세운 듯,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절경--- 높아진 파도는 암벽을 천갈래 만갈래 솟아 흐르면서 분수가 되어 옥처럼 반짝인다"고 월천선생(1714~1786)은 그의<시랑대기>에 감탄사를 썼다. 1894년엔 기장군수였던 홍문관 교리 손경현(孫庚鉉)이 시랑대에 놀러와 '학사암(學士岩)'이라 명명하며 음각하기도 하였다.

대웅전,용왕당,원통문,요사채의 맞닿은 처마선이 극치미를 이뤘다

 

1960년대부턴 온돌방 구들장으로 시랑대의 바위를 마구 떼어낸 통에 시랑대에 새겨진 많은 한시(漢詩)가 훼손되어 지금은 겨우 두 수의 시문(詩文)만 남아 안타깝다. 시랑대 동북쪽에 있는 기우암(祈雨岩)에서는 가뭄 때에 기우제(祈雨祭)를, 그 북쪽바위에 각자(刻字)된 '제룡단(祭龍壇)'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豊漁祭)를 올렸단다.

 

해동용궁사는 아기자기한 해안절벽에 옹색하게 터 잡아 여느 사찰과는 특이하다. 바다와 용과 관음대불이 멋지게 상생한 독특한 분위기 탓일까? 해동용궁사는 산문에 들기 위해 오르는 게 아닌 바다를 향한 내리막길 용궁이다. 세상의 온갖 허물들을 죄다 몰고와서 시꺼먼 바위에 부딪치며 포말로 정화시키는 파도소리에 절로 정화되는 불토다. 

 

 

해동용궁사의 멋진 정토는 낮고 편한 오시리아해안길에 닿아 특히 여자들의 산책코스로 사랑받나 싶었다. 해안의 낮은바위엔 여성들이 용녀의 로망을 생각하고 있을까? 싶게 많다. 동암항 모래톱을 밟으며 힐튼호텔을 휘돈다. 호텔과 아난티펜트하우스건물은 푸른 동해와 어우른 이국적인 휴양지를 여행하는 착각에 들게 한다. 

아난티펜트하우스 앞의 오시리아해안길

 

아난티펜트하우스앞 거북바위에 올라서서 보듬는 해풍과 파도소리와 부서지는 포말은 가장 멋진 산책의 별미다. 게다가 막 터뜨리기 시작한 야생화의 떨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벌써 푸른심해에서 노닐고 있음을 자각한다. 그 그림 같은 해안에서 갓 걸음마를 땐 세 꼬맹이와 조우했다.

꼬맹이들은 비눗방울을 쫓느라 아장아장 비틀비틀 잰걸음마 친다.

같이 사랑하고 같이 잉태하고 같이 해산한?

 

엄마는 비눗방울을 불어날리고 한 엄마는 폰카에 담고 또 한 엄마는 꼬마들 넘어질까 안절부절 시종이 됐다. 세 엄마는 같은 날 사랑을 하고, 같이 잉태를 하여 같은 날에 해산을 하고, 오늘 같이 산책 나왔을까? 오늘 오후 천국은 바로 그들의 것이였다. 따사로운 봄볕이 영원히 꼬맹이들을 품기를 바래봤다. 아름다운 그림책이었다.

  보라빛 유채를 피운 거북섬

 

오랑대(五郞臺)를 향한다. 해안에서 떨어져나와 우뚝 솟은 바위가 우듬지를 잘라 멍석을 편듯 했는데 용왕당이라고도 한다. 바로 뒷편에 솔숲에 있는 해광사의 용왕단을 여기로 옮겨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의 안녕을 기원한 제단이었다. 용왕신을 뫼신 당집엔 오늘도 치성드리는 여자들의 발길이 잦다.

 

오랑대

 

옛날 이곳에 유배된 윤선도를 찾아 온 선비 5명이 절경에 취해 만취하여 가무를 즐기고 시를 읊으며 신선놀음을 했데서 '오랑'이란 별명이 붙었단다. 시가(詩歌)의 대가였던 윤선도의 지인들이기에 오랑대를 그냥 지나칠 순 없었지 싶다. 요새는 기도처로써 사당 보단 동해의 일출이나 해무를 담으려는 사진쟁이들의 포토죤으로 사랑을 받는 장소가 됐단다. 

 

오랑대앞면은 단애절벽이라. 주변에 흩어진 기암괴석에선 강태공의 시간낚기가 한가롭고 해변갓길엔 봄을 캐는 아낙네의 비닐봉지에 햇쑥이 상당하다. 햇쑥은 찰밀가루와 반죽하여 소금기와 설탕을 살짝 뿌려 올리브기름에 부쳐먹는 상큼한 맛은 여느 부침개도 따를 순 없는 향과 식감이라.

오시리해안산책길, 울도 햇쑥 한 봉지를 채취했다

 

햇쑥과 머우대는 조춘이 선물하는 우리식구들의 별미푸성귀다. 아무리 먹어도 배탈이 없는 영양먹거리다. 아내가 햇쑥을 뜯곤 1만원아친 된다고 나한테 의시댄다. 3/1은 내가 뜯었을 테다. 음식맛도 맛이지만 채취과정의 일념에 빠져드는 순간의 무아경이 활명수일 것이다. 일상에서 얻기 어려운 순수인 것이다.

대변항

 

대변항을 향하는 해안가의 천막과 움막집이 버젓히 자리한채 손바닥만한 뙤밭을 일궈놓은 풍경은 어떤 시선으로도 혐오스런 흉물이라. 방치한는 이유가 궁금했다. 기장8경을 과시하는 지자체가 관광의 우선순위를 망각했을리 없을 텐데 말이다. 팔 벌린 소나무 사이로 다가서는 장승등대가 한 폭의 사생화가 된다.

  

 소나무가지 사이에 장승등대, 쪽은 월드컵등대

 

연화리대변항 선착장은 미역건조장이 됐다. 유명한 기장미역의 현장이다. 글고 보니 줄곧 바다저만치에 떠 있는 검은 그물망이 미역양식장인 것이다. 몇 발 더 옮기자 파리 날리다 우릴 향해 헛손짓 하는 횟집 아주머니들의 연화리회촌의 규모도 가관이다. 날씨가 더 풀리면 회단지는 야단법석일 테다.

유명한 기장미역 건조장

 

선착장공한지는 미역건조장으로 탈바꿈했다. 예로부터 기장미역은 유명세를 톡톡히 탄 특산물이다. 아마 깊은 청정해역에서 채취한 땜일 테다. 대변항회단지를 가로질러 아취형육교를 건너 죽도에 들어선다. 아니 철조망울타릴 쳐서 들어갈 수가 없다. 종교인 김태선씨의 사유지가 된 탓이라고 중년사내가 못마땅해 했다.

죽도

 

어쩌다 이 아름다운 섬이 개인소유가 됐을까? 군부독제 어두운시절 정경유착의 산물이었지 싶었다. 미항 대변항 입구200m 해상에 거북이마냥 떠 있는 죽도()는 울창한 대나무 숲 탓에 부른 이름인데 지금은 동백나무가 무성해 동백섬이라고도 한단다. 기장 팔경 중 하나인 섬을 먼 발치에서 처다만 봐야한다니 아쉽고 섭섭했다.

 

섬 안의 암자에서 비 내리는 밤에 댓잎 떨리는 소리는 빗발의 속삭임을 타고 고적(孤寂)의 궁극(窮極)을 맛보게 했단다. 하여 죽도를 야우의 승경이라 했다는데 철조망 친 이는 독야청청 독식하러 자물쇠까지 잠궜당가? 더불어 사는 신앙인으로써 과욕은 치욕의 오만일 것이다. 죽도가 아름다우면 뭐하나?


대변항회단지

 

내륙 깊숙히 파고든 대변항은 아름다웠다. 동해안에 이런 미항이 숨어 있다니~! 대변항을 에둘러 산잔등 고개를 넘으면 기장읍내(기장역)란다. 2km는 짱짱하다니 오늘 10km쯤 트레킹을 즐기는 셈이다. 내항 깊숙한 곳의 기장척화비를 훑는데 붓꽃과 제비꽃, 명자꽃이 길가에서 활짝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죽도 옆의 방파재와 등대와 갈매기떼가 넋을 잃게 한다

 

봄은 어김없이 무언의 약속을 일깨우고 있다. 살아간다는 건 사람들과 사회와의 무언의 약속인 것이다. 붓꽃과 제비꽃이 햇님과 바람과의 약속을 지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은 건강하고 찬란하다. 울 부부도 건강한 웃음을 잃지 않으려 오늘도 이 눈부신 햇살여행길에 나섬이라.

2019. 03.13 

아름다운 대변항

죽도를 잇는 아취교

용녀 같은 처녀는 미니석탑 속에서 지 공중부양모습을 디카에 담느라 몇 번이나 뛰어 올랐는지?  나한테 들키곤 멋쩍게 웃었다.

쌍향나무 중 여자향나무, 갈라진 두 가지가?

 

일출대와 방생대가 좌우에 있다


 지하 약수터

용궁단은 손 없는 불자에게 자손을 잇게 하는 법당?

이 젊은 커플은 뭔 소원을 빌었을까?

 

해수관음대불을 참배하러 가는 원통문 통과 계단

해수관음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