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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작천정벚꽃터널 & 천성산 내원사계곡의 봄빛깔

작천정벚꽃터널

울산`울주의 작천정벚꽃터널1km남짓은 여느 벚꽃길과는 품새와 빛깔이 달랐다. 1937년부터 심었다니 여든 살이 넘은 고령의 아름드리벚나무 500여 그루가 도열하고 있는 셈이다. 장정들 가슴팍보다 훨씬 덩치 큰 거목들이 튕겨대는 팝콘 같은 꽃잎들이 파란하늘에 알알이 박힌 비단면사포 아래를 걷는 기분은 천상의 나들이다.

아니 천상에서 보면 하얀 뭉게구름이 작천골로 흘러들어 간월산정을 향하는 구름띠를 이룰 것이다.  나는 지금껏 이렇게 덩치 큰 벚나무가 도열한 채 구름꽃을 피우고,  멋들어진 고목이 싱그러운 꽃향기를 뿜어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진해 해군통제부내의 벚나무가 쌍벽을 이룰 테지만 수령이 다해 지금은 볼품이 없다.  

벚꽃보다 더 멋들어진 노목의 위용은 감탄을 절로 나게 하는데 그만큼 벚나무에 사랑을 쏟은 탓이리라.  그 애정의 향기가 벚꽃향이리라. 작괘천 큰 바위에는 인내천(人乃天,사람이 바로 하늘)이라는 글씨가 조각되었다. 뭉게구름 핀 벚꽃터널을 온 몸으로 숨쉬면서 작천정(酌川亭)을 향한다.

영남알프스를 녹인 물길은 간월산 작괘천바윌 닳고 닳아 온통 하얀 너럭바위를 깔아 놨다. 그 너럭바위를 돌멩이가 소용돌이치며 뚫어놓은 수많은 구멍들이 물을 넉넉히 담고 있다. 마치 술을 가득채운 술잔이라. 크고 작은 술잔을 들어 축배를 하는 바위들 곁을 흐르는 물살은 축가를 부른다. 

시인이 아니고 화가가 아니더라도 이 풍경에 홀딱 반하지 않을 위인 없으리. 근디 고려말, 운 나빠 유배신세된 포은은 운 좋게 이곳으로 왔었다. 바위구멍이 조롱박 술잔 같다 해서 작괘천`작천정이라 부르게 됐는데, 포은정몽주는 반구대와 여기에서 번갈아 머물며 독서에 빠져들어 정자를 지었다.

인내천바위

또한 세종때의 울주`언양의 선비들은 주군을 흠모하는 시회(詩會)를 연 곳이기도 하다. 너럭바위에 양다릴 걸치고 간 들어지게 떠 있는 작천정이 산수화를 한결 폼 나게 한다. 작찬정 앞 소용돌이치는 물살 위 너럭바위엔  金弘祚(秋田)란 이름이 음각돼있다.

그는 이곳 토호이기도 했다. 개혁파박영효와 친했던 추전은 작괘천일대의 소유주로 이호경(九簫, 李護卿)이란 여류시인과 애인사이였다.  추전은 사랑하는 구소를 작천정으로 불러 박영효와 노닐었고, 세인들은  문향에 뛰어난 그녀를 작천정 시인이라고도 했다.

물살이 바위홈의 돌멩이를 소용돌이쳐서 만든 구멍이 술잔 같다해서 작천이라 했다

암튼 내가 오늘 작천정일대를 산책하며 느낀 건, 영남엔 한량선비들이 많아 심산유곡을 찾아 유유자적했던 낭만적인 흔적들이 골짝바위에 수없이 각인됐다는 점이다.  호남의 명승계곡과는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물길 가운데 돌출된 두개의 바위에 金弘祚란 이름이 음각됐다. 멀리 두사람이 서있는 앞 바위엔 애인 李九簫의 이름이 있는데 정몽주의 이름은 찾질 못했다

수령이 짧은 고령의 벚나무가 지금도 구름꽃을 피우고 있는 건 관리를 잘 한 탓일 테고, 지자체의 예산이 뒷받침(기업체의 성금까지)되는 소이가 아닐까? 조선조부턴 예나 지금이나 영남이 호남보단 더 풍요롭지 않았나 여겨지는 거였다.

작천정의 너럭바위는 소풍객들의 요람

35번국도를 타고 내원사입구를 찾았다. 천성산계곡의 아름다움에 오후 한나절을 멱 감고 싶어서다. 한때 지율스님이 동식물보호를 위해 단식하며 천성산터널(원효터널)공사를 반대하여 ‘도룡뇽의 산’으로 알려져 유명해진 천성산은 영남알프스를 뺨치는 수려한 내원사계곡을 끼고 있다.

금봉암봉과 봉축등과 에메랄드하늘

천성산, 정족산, 원적산계곡에서 흐르는 물길은 양산천을 향하는데, 계곡 곳곳에 삼층바위,병풍바위 등이 첩첩절벽을 이루고 '소금강'이란 글자가 뚜렷이 새겨있을 만큼 예부터 영남소금강이라 불렀다. 내원사 주차장 앞에 700살 된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꼿꼿이 서있다. 자못 정정하다.

700살을 넘긴 장송의 기품이 쩌렁쩌렁 골짝을 호령할 듯 싶었다

왕성한 기력으로 봐선 천년은 거뜬하게 장수할 장송(長松)이라. 그 앞엔 산령각(山靈閣)이 장송의 그늘을 가사(袈裟)처럼 두르고 있다. ‘산신(山神)’이 아닌 ‘산령’이란 현판을 단 사연은 원효대사의 신통력에서 기인한다. 산령각은 내원사에만 있는 우리나라 사찰의  유일한 토속신전이다.

암반을 미끄러지는 청정수는 그대로 음용수다

동래 척판암에서 수도하던 원효대사가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終南山 雲際寺)에서 수도하던 일천 명이 산사태로 압사당할 걸 선몽한다. 하여 스님은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拓板救衆)"이라고 쓴 판자를 운제사 상공에 띄웠다.

내원사

대중들이 그 판자를 보고 놀라 일주문 밖으로 허겁지겁 피신한다.  산사태로 운제사가 무너지는 절제절명의 순간에 대중은 모두 살아남았다. 원효대사는 대중들을 원적산(圓寂山) 산신령이 인도하는 이곳으로 데려왔다. 

홀연히 산신령이 사라진 이곳에 산령각을 짓고 계곡을 따라 들어와 대둔사(大屯寺)를 창건하였다. 글고 내원암을 비롯하여 89개의 암자를 지어 천 명의 대중에게 화엄경을 강의하며 수도케 하여 그들이 득도하니 원적산을 천성산(千聖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대단한 성불요람이다.

내원사를 나와 계곡을 되짚어 노전암을 향한다. 성불암계곡에 들어 상리천 물길을 따라 오른다. 상리천은 인도와 수로공사가 한창이라 본래의 계곡모습이 훼손돼 아쉽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꽃잎을 벌리고 고비도 솜털모가지를 쭉 내미는 중이다. 어수선한 골짝에 봄빛깔이 난무한다.

시루떡을 엎어놓은 듯한 암봉

봄은 골짝의 초목부터 동면을 깨우나싶다. 정족산의 암봉(322m)이 시루떡 엎어놓은 듯 오뚝하다.  맞은편 산마루는 험한 공룡능선을 숨기려는 듯 나목들로 숲`울타릴 쳤다. 담에 공룡능선을 타고 정족산암봉을 밟고 금봉암을 찾는 산행에 나서야겠다. 상리천계곡길은 오지답지 않게 편편하다. 

돌담 속으로 숨은 산촌집

인적이 끊긴 듯한 적막한 골짝을 더듬으니 시간이 정지된 산촌마을이 나타났다. 이끼 낀 돌담 속 퇴락한 집안에 사람이 살까? 인기척이 없지만 벚꽃, 자목련, 개나리, 앵두꽃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환영한다. 50여 년 전의 고샅에 들어섰다.

이끼 옷 걸치고 잡초버선 신은 고샅은 인적이 그리울 것 같았다

거무티티한 돌멩이길은 잡초만 무성해 사람발길이 그리울 것 같다. 길이 길이기 위해선 신발 때가 묻어야 한다. 십 여가옥도 안 될 산촌의 꼬부랑고샅을 얼쩡대는 기분은 오래된 사진첩을 펼쳐보며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에 젖어드는 거였다.느릿느릿한 봄빛깔은 노스텔지어손수건처럼 고샅에 깔린다.

아까운 청정수는 펄펄 넘치는데 누구 없능교?

어둡고 으스스한 그늘고샅에 물 철철 뿜어내는 호스가 사람이 있단 시그널인가? 대야에 펄펄 넘치는 아까운 청정수는 어디서 물꼬를 텄을까?  호스를 들어 물을 먹다 사레들려 혼쭐났다. 도둑질은 아닌데~?  산죽터널을 나오니 노전암(爐殿庵)이 다가선다.

노전암 일주문

부처에게 올리는 공양을 짓는 곳을 노전이라고 한다. 해선지 노전암에서 공양하는 점심은 맛 좋기로 소문났다. 청정텃밭의 채소와 산나물 10여 가지가 식단이라니 먹고 싶어졌다.  노전암도 내원사처럼 비구니스님들의 절이다. 주지 능인(能忍)스님은 열여섯에 출가 여기서 수행한지 60년이 됐다니 생불일 테다.

대웅전처마와 공룡능선의 법고봉이 금방 악수라도 할 듯 싶다

뵙고 싶지만 얼토당토않을 욕심이다. 대웅전처마 끝에 닿을 듯한 공룡능선이 천국의 울타릴 치고 법고봉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 좁은 뜰 화단엔 꽃망울 터뜨린 화초들이 천국의 파란하늘을 향해 봄을 찬양하고 있었다. 비구스님들의 따뜻한 심저(心底)에서 피어난 찬란함일 것이다.

풍성한 꽃보다 더 풍요로운 봄향기를 뿜어내는 골짝 풍경의 삽화

이런 호사스런 발길, 행복한 시간은 좀체 얻기 어려운 생의 한 순간이기도 하다. 낯선 곳에서 마주치는 민낯의 생경스러움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오늘 나는 얼마나 젊어졌을까? 참 속알머리 없는 중생이라. 그래도 기분 좋은 건 심신이 그만큼 젊어졌단 스스로의 자축이다. 벚꽃이파리가 노을빛 속을 나비처럼 부유하고 있다.

2019. 04. 02

공룡능선에도 봄빛깔이 완연하다
푸른비단에 수 놓은 새싹과 봉축등

 

할머니가 되도록 팝콘을 튀겨내면서도 돈 한 푼 받은 적 없는 벚나무의 자태가 꽃보다 아름답다
영남알프스 원경

 

익성암
산령각, 산신각이 아닌 산령각 현판을 단 제각은 유일하다
내원사계곡은 갈수기의 바위골이 빚는 천 개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수선화를 앞 세운 내원사, 비구니 절향이 물씬 풍긴다
청동종과 무쇠 솥
가즈런한 돌담이 비구니사찰 답게 멋지고 정갈하다
벚나무가 팝콘을 튀기는 판에 땅콩 튀기는 나무이름은?

 

봄꽃들이 다퉈 피는 산하촌 돌담
시간이 멈춘 고샅이 여기 말고 어디에 있을까?
공룡능선의 세밀화
봄빛깔은 고샅을 연둣빛으로 물들이고~!
담은 허물어지고 인적이 뜸해도 봄빛깔은 화사하게 내려쬐는 산촌,탱자나무도 움을 트고 있다
노전암일주문 뒤로 정족산령이 인사를 한다
노전암 산신각의 탱화
보송보송한 털뭉치의 고비 새싻

 

클레이머 뒤에 영남알프스 준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