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길산 - 수종사 - 양수리 물의정원
낼 모레가 설이다. 둘짼 동경엘, 막내는 시가엘 가는 통에 난 내일 아내의 설빔에 꼬붕을 해야 해서 느닷없이 배낭을 챙겨 짊어졌다. 아내가 “산은 또 무슨?”하고 아니꼽게 쳐다봐 “오늘 아님 며칠간 또 못 가지 않는가?”라며 행낭을 챙겼다. 얼른 운길산(雲吉山)이 떠올랐다. 한 시간 반쯤이면 들머리에 이르고, 산행 중에 여차하면 수종사(水鐘寺)로 빠졌다가 양수리(梁水里) 물의정원 트레킹을 해도 무난할 코스일 듯싶었다. 11시 반쯤에 운길산역사 뒷길로 나서니 누군가가 '운길산등산로'란 표지판을 세워 놨다.
경의`중앙선 철길언덕 아랫길이 마중길로 산골짝 입구에 들어서기까지 더 이상의 이정표도, 인적도 없다. 해도 산길은 이어진다. 이 등산코스는 내겐 처음 길이어서 머뭇대다가 까짓거 오르다 아니다 싶으면 빠꾸하고, 8부 능선께의 수종사가 어림 잡히면 거기로 방향을 틀자고 바위너덜골짝을 오른다. 눈 녹은 물이 계곡에 물길을 트고 봄기운 산고(産苦)소릴 낸다. 빡센 오름의 거친 호흡이 정적을 깨뜨린다. 낙엽에 묻혀 흐지부지된 등산로는 빨간 시그널리본이 없었다면 포기했어야 했다.
등산로 나무가지에 매달아놓은 시그널리본이 오늘처럼 반가운 적은 드물었다. 7부 능선께 부턴 낙엽을 덮은 눈길을 헤쳤다. 눈 위 발자국은 토끼일까? 길고양이일까? 희미한 사람발자국은 며칠 전일 것 같았다. ‘운길산등산로’ 표지판에 안도한다. 어떤 산짐승들이 9부 능선에서 축제를 했나 눈밭이 발자국 난장이다. 필시 영춘제(迎春祭)를 벌렸나! 고개를 오르니 데크`계단이 보이고 운길산정상이 유똥치마를 걸치고 나를 맞아준다. 아무도 없는 휑한 정상은 오롯이 내차지였다. 아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나타나 까악까악 울며 방정을 떤다. 떡고물 생각에서일 테다.
오후1시가 지났다. 두물머리와 철교가 몽환 속인듯 가물가물대고, 예봉산이 우측가까이 다가섰다. 푸르스름한 북한강은 이따가 내게 멋진 '물의정원'을 만들어 원더풀 피날레를 장식해 줄 것이다. 산에 오르는 건 일상탈출에서 머리 비우기란 매력에 입정하기 위함일 것이다. 산행하는 시간만은 오로지 일념의 연속선상이다. 산행수행의 당의정은 산을 오르는 자만의 전유물이다. 돈이나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옛 선각자들이 미답( 未踏)의 산행길을 죽기살기로 해냈던 혜안을 이해할 것 같다.
수종사에는 삼정헌(三鼎軒)이 있다. 차를 좋아하고 다도를 즐긴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와 홍현주(정조의 부마) 세 분을 일컬어 삼정이라 했다. 이는 삼정승(三政丞)을 빗댄 이름인데 그분들이 수종사 찻간에서 다도 삼매경을 사랑했었다. 오늘 같은 어느 겨울날, 홍현주가 수종사를 가려는데 70세의 다산한텐 무리일 것 같아 동반하지 못함을 애석해 했던 시 한 수가 생각났다.
" 수종산은 산색이 저물어가며 찌푸린 얼굴 같고 / 눈 덮인 나무와 얼어붙은 샘물이 고요히 사람을 기다리리
고개에 까마귀가 몸 뒤집을 때 말채찍 처음 떨치고 / 역 누정에 닭 울 때는 벌써 수레바퀴 기름칠을 끝냈으니
북엄(北崦)의 일천굽이 돌 비탈을 부여잡고 올라가 / 동화문 일만 섬 먼지를 맑게 씻고자 하네
이 같은 풍류놀이에 따라가기 어려워 / 백발의 노인 시 읊으며 바라보니 마음만 아프구려 "
그 삼정사를 찾아 수종사를 향한다. 눈 쌓인 내리막길이 해빙되고 있어 더더욱 미끄럽다. 아이젠 생각이 간절했다. 오늘의 눈`산행을 미처 생각 못한 탓이지만 아이젠은 겨울산행의 필수품이라 배낭에 상비했어야 했다. 두 번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산행 중에 사고로 죽는 건 행운의 길사(吉死)이지만 병신이라도 되면 식구들까지 불행하게 한다. 내가 겨울산행을 망설이는 이유다.
수종사를 향하는 가파른 내리막길엔 가드레일이 있어 안심됐다. 해탈문이 비탈진 돌계단에 간당간당 서서 나를 훑으며 문을 활짝 열고있다. 속세의 떼 덕지덕지 찌든 내가 어찌해야 되는가? 스틱만이라도 접자. 삼정헌토방에 등산화 세 컬레와 배낭 두 개가 놓였는데 나는 끼어들 엄두도 못냈다. 마당 한쪽 응진전 바위가 짜내는 약수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한 종지로 환장을 하면서 삼정승의 다도의 열락을 상상해 봤다. 이 상선약수는 수종사의 시원이기도 하다.
세조가 금강산(金剛山)유람 후 귀경 길에 두물머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밤중에 비몽사몽 은은한 종소리가 들리자 아침에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찾아보라고 하명한다. 토굴 속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치 종소리처럼 들렸었는데 그곳엔 18나한상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세조가 그곳에 수종사를 창건하면서 18나한을 봉안하고 5층석탑을 세웠단다. 이후 왕실의 원찰이 됐다. 서거정은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하였고, 겸재 정선은 양수리의 경관을 독백탄(獨栢灘)이라는 그림에 담았다.
대웅보전 앞 누각에서 조망하는 두물머리 풍경은 겸재 선생이 아닌 범생의 안목으로도 감탄이 절로 난다. 그 두물머리의 북한강이 품어내는 물의정원을 탐닉하러 수종사은행나무와 작별한다. 물의정원은 물이 빚어내는 신비경이 ‘최고의 선경은 물에 있다’라는 또 하나의 상선경수(上善鏡水)를 이름이라. 시시각각 일구는 물그림자 - 데칼코마니의 신비경은 시간을 잊고 나를 잊는 몰아경(沒我境)에 침잠시킨다. 물의정원의 소요는 치유의 산책이다. 상선경수에 빠져 나를 다잡아보고 싶걸랑 여길 찾아오라. 다산선생이, 한음선생이 말년을 이곳 두물머리에서 소요한 까닭을 헤아릴 만 했다. 텅 빈 마음으로, 맑은 정신으로 치유한 오늘의 열락을 설맞이로 다잡아야겠다. 2024. 02. 08
# 제 낙서를 읽어주시는 분들께 새배 올립니다.
갑진년에도 건강과 행운이 늘 같이 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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