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의 설경
나는 눈 내리는 날은 무작정 좋다. 칠십대 노인이 개 넋이 씌었어도 엄청 이라고 아내가 궁시렁 대도 나는 못들은 척 눈밭으로 향한다. 책상머리에서 오전부터 내리는 눈발을 지켜보던 나는 눈밭으로 내달릴 타이밍을 여수느라 들떠있었다. 함박눈도, 싸라기눈도 아닌 눈발이 시나브로 내리고 있어 탐스런 눈꽃세상은 오후쯤이라야 되지 싶어서였다. 빵과 우유로 점심을 때우고 서울 숲을 향했다.
서울 숲 공원은 방대한 분지에 온갖 나무와 식물들이 인공구조물과 조화를 이뤄, 뉴욕 센트럴파크(Centarl Park)와 비슷한 생태치유의 숲과 습지공간이어서 아기자기한 설국이 될 터였다. 회색캔버스에 도열한 메타세콰이어가 거울호수은반에서 열병식을 한다. 경마꾼들의 말바굽 바람에 눈발 휘날리는 서울마당엔 젊은이들이 겨울찬가에 들었다. 눈부신 설국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얀 순백의 세상은 어디랄 것 없이 멋진 설경으로 프레임에 가둬진다.
연신 휴대폰셔터를 눌러댄다. 하얀 세상 - 눈부신 설국은 나를 노스텔지어에 빠뜨려 애틋한 추억의 물살을 타게 한다. 더욱이 소복이 쌓인 눈이 밟히는 소리와 눈 내리는 소리를 귀담는 고요는 나를 아련하고 풋풋한 동심의 세계로 타임머신 여행을 하게한다. 타임머신에 든 노스텔지어가 나는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어릴 적 고향의 하얀 겨울풍정이 그립고 좋다. 사랑한다. 발목이 푹푹 빠지는 눈길오리(五里)의 초등학교 등하교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눈도 심심하면 내렸고, 때론 무릎까지 파묻힐 만큼 엄청 쌓이기 일쑤였다. 그런 눈밭을 새끼줄로 칭칭 동여맨 검정고무신발로 푹푹 내디뎠다. 장갑은 끼었던가? 시린 손 호호불면서 차가운 눈 속을 질주했던 초등시절의 추억이 그립다. 울`동네 또래 10여명이 늘 붙어 다녔는데 장화를 신거나 우산을 든 친구는 없었다. 고작 빈 마포부대를 뒤짚어 쓴 게 다였다. 언젠가는 간밤에 눈이 하 많이 내려서 나는 머슴 등에 엎여 등교를 했었다. 그런 선친님의 교육열 앞에 나는 불효자가 되었다. 그렇게 6년을 다녔기에 ‘6년정근상’을 받는 기쁨도 누렸지만.
방학 땐 새벽에 울`동네 모든 학생들이 동구(洞口) 정자에 모여 고샅청소를 했었는데, 겨울방학의 눈 치우기 청소는 잊혀 지질 않는 향수병이 됐다. 초등학생인 그 누가 추운겨울에 마을청소를 한답시고 새벽에 잠자리에서 나오고 싶겠나? 어린마음에도 그건 동네 친구들과의 약속이고, 나아가 방학생활의 의무라고 생각해 모두가 빠지지 않고 눈꺼풀 비비며 청소도구 하나씩 들고 정자로 나왔던 거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공동체의 삶에 녹아들었고, 유대감과 협동심은 어른으로 성장하여 마을과 사회의 공감대형성에 자양분이 됐을 테다.
내 어릴 때의 우리 마을은 인근부락들이 선망하는 모범부락이었다. 거목 당산나무(팽나무)는 동구 정자를 안고 마을의 수문장처럼 서서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은연중 뻐기는 듯 했다. 그 당산나무와 정자 주위의 눈을 치우고, 고샅길까지 몽당 대나무빗자루로 쓸었던 정경이 아른거린다. 차갑고 시린 아침의 공동울력(?)은 어쩜 신바람 난 개구쟁이 놀이로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다가 만들어진 눈사람! 서울 숲 가족마당에 눈사람 하나가 옆으로 갸우뚱한 채 익살을 떤다.
요즘 초등생들은 겨울을 즐기기보단 공부하느라 잠도 잘 못 잘 테다. 열공 해서 장차 뭘 하려고? 4월 총선을 향해 메스컴은 살판났다. 우리나라에서 젤 신뢰감 없는 직업이 국회의원인데 서로 하겠다고 아귀다툼이다. 특권 땜일 테다. 특권하면 검사들도 최상위(?)일 것 같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창조하는 사람들이고, 더구나 지금은 검찰공화국이라 회자되니 검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런 그들을 우리나라에서 젤 경원시 여기는 건 공정과 상식을 구두선으로 여긴 탓일 것이다.
서울 숲은 옛날 왕의 사냥터였다. 서울숲과 응봉산 일대가 조선 시대에는 임금과 왕실 사람들이 매를 날려 꿩을 잡았던 매 사냥터였다. 태조부터 성종임금까지 매 사냥을 하러 150여 차례나 출정했단다. 하얀 설국에서의 매사냥은 한껏 낭만적이었을 테다. 왕의 사냥에도 룰(예의)이 있었다. 지금 누구처럼 뱉어놓고 아니다 싶으면 딴전 부려 애먼 사람 곤욕스럽게 하진 않았다. 만약 왕이 그랬다간 삼사에서 벌떼 같이 따져들고, 사관은 그 상황을 그대로 사초에 기록했다. 그렇게 쫓겨난 왕이 몇 명이었던가?
설날이 동구 밖가지 왔다. 설날, 어스름한 새벽 눈 쌓인 동네 고샅은 인적으로 부산했다. 동네 어르신께 새배 올리려는 발길이었다. 가난하고 권력이 없어도 어른으로써 존경을 받았다. 정직과 배려심의 일생이 마을의 평온과 화합, 그리고 내일에의 희망이 된 소이였을 테다. 오늘날 우리에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지 죽비(竹篦)소리를 못 듣는다. 설날 어르신의 귀감될 덕담 한 말씀은 천냥만냥의 새배돈이었다.
어르신의 덕담은 경험에서 짜낸 활어(活語)였고 경구(警句)였다. 아! 어릴 적 새배드리려 눈길 헤쳤던 새벽의 동네 고샅이 그립다. 사무치게 그립다. 어쩜 그런 향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인생이다. 그 정다운 얼굴들 지금은 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오늘 살기가 역겨우면 노스탈지어가 되는 게 치유의 길이기도 하다. 눈아! 펑펑 와라. 더러운 곳, 더러운 입들 깨끗이 문질러 버려라. 나는 개처럼 서울 숲 눈밭을 휘젓는다. 심호흡하면서 비린 속내를 환장(換腸)하련다. 2023.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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