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평창 솔숲펜션에서 2박3일
울`식구 열 명은 렌터카 스타리아에 합승해 평창을 향했다. 애들의 스키활강을 위한 여정이지만 곤지암 스키장에서 감염된 감기기운은 여전해서 내일 과연 스키를 탈수가 있을지 의문이다. 횡성을 지날 때 싸리 눈발이 차창에 달라붙는다. 눈 내리는 날의 겨울여행은 다분히 동화적이라 저절로 낭만이스트가 된다. 여행은 낯선 곳에 나를 던져 무디어 진 자아를 추스르는 모험이다. 순백의 설경에 나를 세우는 프레임을 나는 무척 동경하고 실재 실천해보는 낭만족 이었다. 그래 그 설레임을 사랑하기에 내일 스키장의 설산 트레킹을 고대하는 게다.
용평 속사리 ‘솔숲펜션’은 눈꽃으로 단장한 채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미끄러운 눈길을 아장대는 정취도 덤으로 느끼는 즐거움이었다. 펜션은 좀 오래되긴 했지만 티크목조 건물로 민가가 없는 숲속에 있어 조용하고 운치가 있다. 여장을 풀고 닉과 민은 (존은 호주출장 중이다) 테라스에서 숯불구이 바비큐작업에 들었다. 눈발 휘날리는 영하의 날씬 노을빛을 즐길 여유도 없지 싶다. 어느 해였던가 알펜시아스키장 펜션에서 바비큐파티 고기 굽느라 한파와 연기를 내쫓던 심난한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그땐 오살 맞게 눈보라와 분패를 쳐대 고생했었다.
애들은 바비큐불빛 앞에서 성탄불꽃을 터뜨리느라 신바람이 났다. 가족여행은 여자들이 주빈이 된다. 남자들이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한다. 식탁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여자들이기에 그토록 가족여행 가기를 염원하는지 모르겠다. 울`사위들은 지덕(智德)을 겸비했다. 유별난 세 딸들의 수다를 웃으면서 좇는다. 모름지기 가정이나 사회생활에서 목숨 걸지 않아도 될 일엔 상대방의 의견을 수렴하는 게 처세의 달인이 되기도 한다는 걸 울`사위들은 숙지하고 있지 싶다. 바비큐파티는 자정까지 이어졌다. 부모라지만 늙은이가 젊은 세대에 끼어 박장대소하는 행운은 축복이라!
간밤에 내린 눈은 은세계를 일궜다. 스키타기 딱 좋은 날씬데 애들이 일어나질 않는다. 스키장행은 포기하는 품새다. 주문진 바닷가를 소요하며 생선회식도락을 즐겨보잔다. 여자들이 신바람 났다. 설산행을 포기해야하는 나의 실망은 어떻게 보상받나? 그리 높지 않은 뒷산과 앞산의 나무들이 빙화(氷花)와 설화를 뒤집어 쓴 모습이 멀리서도 확연한데 산행을 접어야 된다니? 애비라고 단체행동에서 이탈할 순 없다. 여행은 불가측의 돌변에서 의외의 희열을 즐기기도 한다. 미처 예상 못한 기쁨은 여행자들만이 보너스로 챙길 수 있는 행운이기도 하다.
눈발이 그친 주문진 바닷가는 쓸쓸했다. 드센 파도의 괴력은 어찌 됐을까? 숨고르기 하는 겨울바다는 괴이하기까지 하다. 선착장에 창문 하나씩을 낸 횟집은 옹색한 만큼 처연해 보였다. 서너 평쯤 될 횟집들은 바짝 어깨를 붙이고 수없이 늘어서서 제살 깎아먹기 할 것만 같았다. 근데 자식들 대학교육까지 뒷바라지 한다는 사실이 좀은 의아했다. 그들에겐 울`집처럼 가족여행할 시간도 여유도 챙길 생각은 안 하지 싶었다. 행복이란 게 허우대 좋고 떠들썩해야 오는 건 아니다. 때깔 좋은 개복숭아의 맛을 그들은 안다. 행복은 가난한 욕심에서 더 향유할 수가 있다. 행복해 지고 싶걸랑 마음을 비워 가난하라고 했다.
해가지고 겨울한파가 스멀스멀 기어들어 설까? 컨디션이 안 좋다. 목젖이 칼칼하고 관절마다 으스스 아프다. 나뿐만이 아니라 아내와 큰애도 동시발작이다. 애들의 감기몸살바이러스가 옮아붙었지 싶었다. 아내와 큰애의 감기증상은 더 심하다. 감기란 놈은 떠날 때 꼭 주위 사람한테로 전이된다. 내일도 스키장행은 물 건넜고, 그래 아침 일찍 뒷산 설화탐닉 트레킹을 할 심산인데 걱정된다. 저녁식후 감기몸살 약을 먹었다. 몸뚱이 어디랄 것 없이 찌뿌댓대 쑤신다. 여행가서 아파보긴 첨이다. 아내 말따나 애들이 감기 중이니까 애초에 나서질 안했어야 했다. 나도 아내 앞에서 유구무언일 수밖에---. 창밖엔 소리 없이 눈이 쌓인다. 오지 산촌의 밤은 무르익어가고~! 2023.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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