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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눈꽃수채화 - 서울 창덕`경궁

눈꽃수채화 - 서울 창덕`경궁

눈꽃수채화 - 서울

오우, 순수의 세상

! 눈부신 은빛 서울

너를 위해

지난 며칠을 살 애는

한파에 앓더니

아니, 40여년 품고 살던

삼한사온도 숨긴 채

이 찬란한 하얀 서울을 일궈

나를 이리 달뜨게 하나

눈꽃 난무하는 수채화서울에서                       -깡 쌤의 시 <눈꽃 수채화 - 서울> -

창덕궁 돈화문
▲돈화문일원▼

8시경부터 창밖이 뿌옇다. 커튼을 열었다. 부나비군무처럼 허공을 유영하는 눈발이 통유리에 미끄러진다. 하늘을 향한 삼라만상은 일제히 하얀 면사포를 쓰고 있다. 마음이 벌써 눈밭을 설레발친다. 고양이세수를 하는 척하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 아내가 눈치 채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린다. 소리 없이 문을 열고 주방을 향한다. 응접실엔 큰애 네가 한밤중이다.

돈화문 금천

십여 일 전부터 응접실과 작은방은 큰애 네가 차지하고 울`부부는 안방생활이다. 늦게 잠든 그들은 9시쯤에 기상하는 탓에 울`부부는 그때까지 묵언수행(?)한다. 손님이 된 자식`손자들은 상전이 된다. 바나나 두 개와 귤 세 개를 들고 와 침대모서리에 걸터앉아 도둑고양이 흉내를 낸다. 아내의 못마땅한 표정을 못 본채 외면하면서 과일을 목구멍에 넘긴다. 방한 자켓을 걸치고 나와 현관에서 우산을 챙겨 도어 밖으로 탈출했다.

인정문(좌)과 숙장문 & 회랑
인정전

엘리베이터 속에서 긴장이 풀려 심호흡을 했다. 도둑놈은 얼마나 간덩이가 클까? 부나비는 함박눈이 됐다. 아파트안길과 이면도로 눈은 치웠나 싶은데 다시 수북이 쌓였다. 다행이 강추위는 아니어서 눈길은 질퍽댔다. 장갑을 깜박한 걸 깨달은 건 지하철 속이었다. 창덕궁 돈화문 앞에 섰다. 세상은 온통 하얗다. 화이트서울이다. 창경궁은 어디 뭐랄 것 없이 은빛으로 빛난다.

희정당 앞 소나무도 42년만에 설화를 만개했다
선정문과 회정당(우) 내부는 마루와 카펫, 유리창문, 샹들리에 등을 설치한 서양식 궁전이다

신비스러울 만치 순수한 설국의 고궁 탐방객들이 은빛 속에서 보물찾기에 나선 골룸처럼 아장대고. 하얀 누리는 무겁게 침묵한다. 창경궁 성종태실 앞 목화송이 뒤집어쓴 소나무 숲에 서면 정적은 눈송이들 속삭임만을 허락한다. 고요는 정적마저 끊긴 곳에 자생한다는 사실에 경외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서울설국의 적설량은 20cm에 이르고, 이 순무한 눈 세상을 창조하느라 무려 42년이 걸렸단다.

성정각의 보춘정

40여년을 내공쌓아 창조한 설국서울을, 목하 신비한 화이트제국을 빚고 있는 고궁에서 소요한다는 기쁨과 행운은 내 생애에 다시 올랑가? 싶잖다. 아내에게, 큰애에게 전화를 넣었다. 설국의 창덕궁으로 후딱 달려오라고. 나만 열락(悅樂)하기엔 넘넘 아까워서였지만 시큰둥했다. 기쁨과 행복은 각자 나름의 안목과 취향이 추구하는 미로가 있을 테다. 해도 일생에 몇 번일 희열은 나 혼자 충만하긴 못내 아쉽다.

▲보춘정일원▼

가장 소중한 사람,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진다. 인생에서 이 귀중한 순간은 지금이고, 더구나 노년의 삶에선 더 절실함이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사랑하고 그 삶에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과 공감하는 게 행복일 것이다. 함박눈 쏟아지는 설무(雪舞)의 향연에 흠뻑 취해 재야를 맞으면서 새해에 서설(瑞雪)로 이어지길 기원해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같은 은빛 순수의 세상에 안주하면서 오늘도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호랑이해의 서기(瑞氣)를 배달하련다.           2023. 12. 30

삼삼와
승화루
통명전
통명전 뒤 솔밭의 설화
양화당(우) 환경전(중앙)
양화당 후원의 삼송
▲성종태실비와 소나무 숲▼
▲태실비 ~ 춘당지 사이의 조붓한 숲길의 설경▼
춘당지 입구의 쉼터
춘당지 수변길의 설경
▲춘당지▼
팔각칠층석탑
춘당지 섬
▲대온실주변의 설화▼
▲대온실에서▼
▲창경궁과 후원의 경계 담장 너머의 눈꽃세상▼
▲관덕정과 주변의 설화, 고양이도 설국에 놀랐는지 오늘은 한 마리만 보였다▼
▲춘당지▼
▲춘당지 호반길▼
춘당지의 원앙도 꼭꼭 숨고~
목화밭에 목화따러 나온 여인들
명전전 동편 기와는 밤새워 백기와로 교체했다
홍화문(弘化門)은 국왕이 직접 백성들을 만났던 곳으로 영조는 1750년에 균역법시행에 앞서 양반과 평민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1795년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의 회갑을 맞아 홍화문 밖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직접 나눠줬다. 270여년전에 국왕이 행한 대민 직접행정을 오늘의 윤석열대통령은 왜 기피하는 걸까? 용산대통령실 앞엔 쌀 보시 선정 대신 삼엄한 경비병들의 냉대에 주눅들어야 한다. 재벌총수들과의 파티라야 소화가 잘 되능가?
금천(옥천)과 금천교
명정전
숙문당
문정전, 문정전 앞 마당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7일간 갇혀 굶어 죽었던 곳이다, 눈소리가 사도세자의 신음소리 같기도 했다
▲함인정은 벽이 없는 정자형의 건물로 국왕과 신하들이 접견 경연을 하던 곳이다. 영조가 문무과에 합격한 인재들을 접견하기도 하였다▼
▲낙선재 돌담의 화단▼
경춘전 후원
▲통명전 후원▼
통명전 옆의 금천약수터
▲통명전 주변일대는 장희빈이 해코지 음모를 획책하다 사약을 받은  영욕의 터▼
▲승화루의 설경▼
헌종이 경빈(慶嬪)을 맞아 낙선재를 지어 서재겸 사랑채로,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로 헌정한 왕비와 후궁을 위해 지은 궁궐이다. 1847년(헌종13)
낙선재와 상량정의 설경
낙선재 앞 정원
홍송 생전에 어쩌다보니 백화송목이 됐다
인정전에서 구선원전 입구
구선원전 궐내각사에서 본 인정전 백기와
궐내각사 담장길
진설청의 향목
향목
궐내 약방
돈화문 금천가도
궁궐 밖에서 본 돈화문
500살의 행목
▲송년만찬으로 감자탕을 포식했다▼

# 울`식구들은 '광화문 뚝감'에서 감자탕으로 송년만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