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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눈꽃 청와대에서 황희(黃喜)를 그리다

눈꽃 청와대에서  황희(黃喜)를 그리다

청와대본관
경복궁 근정전

 “하고자 하는 바를 하는 것은 임금의 큰 법이오나 할 수 없는 것을 그치게 하는 것은 미신(微臣)의 지극한 충정(衷情)입니다.”

세종 14년에 황희(1363~1452) 정승이 세종에게 간한 충심으로 ‘임금이 백성을 위해 행하는 바는 왕도이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단념케 하는 것은 충신의 도리이다.’라고 직언한다. 또한 세종이 <태종실록>을 열람하자고 대신들에게 하명하지만 황희는 반대한다. 왕이 부왕의 실록을 보면 실록을 쓴 사관이 불편해할 수도 있고, 나아가서 향후 진솔한 실록을 기대할 수 없어 사초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고 세종을 설득한다.

황희는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고려의 충신이었다. 태조 이성계의 간청에 입궐했는데, 태종은 황희가 임금 말을 무조건 따르는 지당파 신하들과는 달리 아부하거나 교만하지 않아 늘 곁에 두고 싶어 했다. 태종은 황희에게 ‘공신은 아니지만 공신 대접을 해야 할 신하’라며 ‘나와 그대 둘만 아는 사실’을 공유하자고도 했다. 태종이 충녕(세종)을 세자로 발탁하자 황희는 양녕을 옹호하다가(장자계승) 파직과 재산몰수를 당하고 남원유배형에 처해진다.

청와대 정문에서 본 본관과 백악산

유배생활 4년, 태종은 임종직전에 황희를 불러 세종을 보좌하라고 간청한다. 세종은 자기를 반대한 황희를 기꺼이 발탁한다. 황희 나이 60세였다. 세종과 황희는 의기투합하여 세종대의 황금기를 열어 조선왕조500년의 반석을 다졌다. 정직과 정의와 후덕한 인품의 황희를 신뢰한 세종은 그를 28년간 영의정으로 곁에서 보좌케 했다. 세종은 79세의 노 정승 황희에게 초하루와 16일에만 조회에 참석하도록 했고, 83세 땐 서무(庶務)를 번거롭게 맡기지 말도록 했다(세종 27년).

청와대 대정원

세종 22년, “신의 아들 황보신이 범한 죄는 신의 집 명예뿐 아니라 사풍(士風)을 욕되게 한 것이니 무슨 마음으로 만인이 바라보는 영상의 지위에 뻔뻔스럽게 있겠습니까.” 78세의 황희는 세종께 사직서를 윤허 해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세종의 노코멘트에 30여년을 만인지상인 영의정으로 국정에 매진하면서도 차남 황보신이 부정축재로 서인(庶人)이 돼 10여년을 유배생활 해도 모른 채 해야 했다. 그러나 심저엔 늘 아비(황보신)의 멍에를 지고 살아갈 손자들의 현실이 가시화되었다. 청백리의 상징 황희는 세상의 영예를 내려놓고 손자뻘 왕 문종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청와대 본관 입구

자식의 죄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는 황희, 왕 앞에 선 아버지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황정승은 자신을 자책하면서 “신이 유약(柔弱)하기 짝이 없어서 자식 가르치기를 엄하게 하지 못했다”고 아뢴다.“자식이 어질지 못한 것은 그 아비의 교양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다고 여겨집니다. 신은 본래 용렬하여 아들을 잘 가르치지 못했습니다.라고.  대통령의 부인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인가? 종북인사와 교류하면서 고액의 선물을 받고 '통일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는데 윤대통령은 모르쇠다. 

청와대 본관입구에서 본 대정원

국민의힘 태영호 국회의원이 실토한 김건희 여사 명품백은 종북인사 최재영 목사의 함정이라면서 최목사의 정체는 "北선전매체 민족통신 편집위원으로 美서 활동하는 재미교포로 여러 차례 방북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받은 바 있고, 북한을 옹호하는 책과 글을 끊임없이 써 온 사람이다."라고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폭로했다. 또한 "금년 4월10일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공작"이라며 "북한 김정은 지시에 대한민국이 놀아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2층계단
1층 접견실

태영호 의원은 주영북한대사로 재직 때 우리나라로 전향한 탈북인사인데 최재영의 간첩활동을 그동안 왜 함구했나? 김건희 여사는 최재영 한테서 명품백 외 다른 선물로도 교류해왔고 더는 ‘통일문제를 논의하자’라고도 했단다. 더더욱 놀랄 일은 대통령취임 만찬석상에 초대받아 대통령과 재계총수들과 기념촬영도 했다. 대통령실과 경호처는 허수아비들만 있는가? 서슬 퍼런 검찰은 친북인사들의 대남활동 - 김건희여사의 접촉을 용인함인가? 김정일이 큰 소리 칠만 하다. 불신과 음해로 국정을 파탄내면서 전정권 탓으로 돌파구를 찾는 윤석열정부에서 세종의 지혜와 황희의 공정과 상식이 그립다. 윤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의 뜻을 황희정승 한테서 배워 체득했으면 좋겠다.  2024. 01. 17

1층로비
대정원 우측에서 본 본관
청와대 대정원에서 영빈관 가는 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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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관▼

▲영빈관 우측의 길은 대정원과 연결된다▼
소공원 불노문
▲소공원▼
▲청와대 관저로 통하는 길▼
관저입구
▲관저 경내▼
관저 후면
▲관저식당▼
관저에서 오운정 가는 계단의 연못, 폭설로 출입금지였다
관저입구
관저와 녹지원을 잇는 길
침류각
낙우송
▲침류각▼
▲녹지원▼
▼청와대정문(자동차전용), 우측에 인왕산이 지근거리다▲
칠궁 입구
신무문
경복궁 집옥재
경회루 연못
향원정
향원정과 건청궁을 잇는 다리
▲향원정▼
국립민속박물관
경회루연지와 통하는 필관문
금천
▲경회루 돌담▼
경회루 연지의
수정전(앞)과 경회루
근정문과 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