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공감대를 향해
지난 일욜(17일) 타이완에 사는 큰애네 네 식구가 귀국했다. 중학생인 두 아들의 겨울방학을 2주간 한국에서 보낸다는 계획은 지난 여름방학 때에 이은 스케쥴이다. 애들의 방학에 맞춰 큰애도 12월말까지 휴가를 냈다. 여섯 식구가 24평형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몸뚱이 비벼대며 먹고 자는 혼숙생활은 피붙이만이 즐기는 수도생활(?)이기도 하다. 넓은 팬트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애들에겐 불편한 점이 많을 테지만 옹색함 그 자체가 체험학습일 테고. 인내와 배려, 절재와 양보심을 살리는 합숙생활의 잔재미는 피붙이란 유대감을 돈독히 하는 생활의 발견이 될 것이다.
이국에서 십몇 년 간 식구란 개념이 모호한 핵가족의 삶에서 진정한 대가족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청소년들이 터득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요즘 애들은 나의 어린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사회적변혁을 이뤄 할애비인 내 눈앞에선 거의 모든 게 어설프고 버릇없어 보이지만, 그게 당연시되다보니 바루고자하면 나만 고리타분한 늙은이가 된다. 하여 몽니가 돋는 나도 못 본채 하며 지나쳐야 하는 수양의 기간이기도 하다. 아내의 즐겁게 감내하는 고생(?)에 비하면 나의 수고로움이야 조족지혈일 것이다.
어제 큰애네 네 식구는 곤지암 스키장을 다녀왔다. 스키보드에 취해 5시간쯤 추위 속을 질주했다는데 짜릿한 스릴 맛을 탐닉하다 감기기운을 덤으로 마신 모양이다. 아낸 ‘그놈의 스키 안 타면 누가 잡아 간디야?’라며 투덜대며 뒷바라지에 바쁘다. 애들이 우리 집에 온 건 순전히 스키타기 위해서일지 모르는데 시비 걸어 꾸지람하면 다음 겨울방학 땐 안 올지도 모른다. 아니 어쩜 그게 애간장 덜 타고 수고로움 덜 수 있다 싶지만 부모가 자식 이겨먹는 뾰쪽 수가 있던가?
애들 못지 않게 큰애가 스키광인 걸 어쩌나! 울`집엔 하루사이에 환자가 두 명, 어쩜 더 생길 것 같다. 근데 아내의 시름은 그보단 딴 데가 있다. 금주 말 성탄연휴 때에 2박3일간 청평 스키장과 펜션 예약을 해놓았으니 말이다. 감기란 게 하루 이틀에 완치될 게 아닌데 이틀 후에 다시 스키장엘 간다니 아낸 속이 탈만 하다. ‘코로나도 아니고 애들이니까 금방 나을 테니 걱정 마세요’ 라고 큰애가 위무해도 아내표정은 어둡다. 창시 빠진 나는 주말에 청평스키장 나들이에 동행할 꿈(?)에 한결 부풀어 있는데~!
자식을 생각하는 여자의 마음과 남자의 마음이 이렇게 간극이 넓다는 내 자신이 황망해졌다. ‘할애비가 뭔 스키냐?’고 아내가 핀잔을 주는데 내 속셈은 스키보단 강원도산천의 설화구경이란 점을 아내는 뻔히 알면서 뭉개버린다. 금년 겨울철에, 상고대는커녕 설화구경도 못한 나는 애들이 귀국하기만을 고대했던 바다. 몇 년 전엔 애들이 알펜시아스키장에서 스키타고 나는 부근의 설산을 트레킹 했던 낭만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늙은이가 되니 홀로 겨울산행이 겁난다. 사고로 즉사하면 죽음 복 탄 게지만 부상당하면 식구들 못 할일이다.
어제 애들이 스키장 가는데 아내가 안방으로 데려가 용돈을 쥐어주나 싶었다. 내 앞에서 떳떳이 주면 어디가 덧이라도 나나? 숨겨서 주는 돈 받기도 멋쩍을 애들일 테고 나도 썩 기분 좋을 일이 아니다. 남 몰래주는 돈은 애들 인격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뒷돈거래가 통용되는 원인 중 하나는 우리세대와 선배들이 뒷돈거래로 이익을 챙기는 게 당연시 여기고, 특히 정치인들이 악용하면서 죄의식을 갖지 않은 탓에 부패행위는 지금도 감행된다. 아내의 행위는 가난하여 돈이 귀한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 엄마가 아빠 몰래 쥐어준 사랑의 지폐를 답습해서일 테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어릴 때의 암거래는 부정의 숙주가 될 수도 있다. 돈으로 뒷거래만 성공하면 만사오케이란 위험한 의식에 빠질 수가 있다. 오후엔 온 식구들이 모여 만두를 빚었다. 참밀가루 반죽과 만두피까지는 나의 몫이고, 만두소와 만두를 쪄내는 공정은 아내 몫으로 울`집의 만두는 첨가물 없는 순수 옛 만두다. 그런 만두소를 큰 대야에 하나 가득 만들어 진종일 빚어내 냉동보관 하여 먹고 싶을 때 군만두 내지 찐만두로 즐긴다. 그 만두 맛은 오직 울`집만의 식감이라 애들이 여차하면 만두 빚자고 설레발친다.
온 식구가 모여앉아 음식을 빚고 식감을 공유한다는 뿌듯함은 여느 식사자리완 비교불가한 행복이다. 울`집 음식은 대게 천연식품재료로 아내가 빚는다. 위생과 영양가 면에서 인스턴트음식은 비교가 안 된다. 하여 난 홀로 외출 시 때를 지나쳐도 외식을 않는다. 아내가 만든 집밥을 먹고 하루 2시간의 트레킹이 건강생활의 바로미터란 걸 확신하고 있어서다. 손자들과 사위들이 만두 빚기 실습생이 됐다. 쉬이 지워질 수 없을 추억 한 컷을 그들은 빚고 있음이라. 가족의 우애는 그렇게 돈독해지고 좋은 관계는 건강과 행복을 기약한다. 2023. 12. 21
# 위 배경사진은 어제밤 복성루에서의 만찬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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