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느낌~ 그 여적

서울식물원의 겨울 틈새풍경

서울식물원의 겨울 틈새풍경

영하의 날씨가 추적댄 겨울비 꼬리를 잡고 좀 풀렸다. 바스락대던 낙엽이 갈증 달래며 숨을 죽였다. 올가을 낙엽은 빨`주`노랑에 초록낙엽이 많다. 무덥다가 느닷없이 추운 변덕 날씨에 나무들은 헷갈려 겨울준비를 소홀이 한 탓이란다. 지구온난화는 자연의 질서를 파괴해 지구촌을 혼쭐나게 하고 있다. 지기(知己) C와 Y가 서울식물원으로 나를 불렀다. 까칠하고 앙상한 나목들이 파란하늘에 하얀 구름보자기를 띄우고 있다.

초겨울의 공원은 아장대는 산책객들이 계절의 틈새를 즐기느라 한가롭다. 한파가 휘파람부는 마천루숲 속에서 탈출(?)해 겨울 초목들이 총총한 넓은 공원의 겨울틈새풍정에 빠져드는 낭만은 그지없이 평안하다. 봄이 한창 무르익을 때도 C와Y는 나를 이곳에 불러내서 호강시켜줬었다. 그때까지 난 서울식물원과 공원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 공원은 삼계(三季)를 누볐던 형형색색의 옷을 벗고 최초의 알몸으로 내게 다가선다.

삭막한 초겨울은 원초적 자연의 풍경을 탐닉하게 하여 나는 폰`카에 담느라 친구한테서 뒤처지기 일쑤다.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없어 아쉽긴 하지만 깨 벗은 어린나무와 말라 비뚤어진 갈대숲을 품고 있는 조그만 연못들이 손목잡고 한강에 발 담군 채 숨통을 잇고서 질펀한 수묵화를 그렸다. 그 연못에 청둥오리가 헤엄치고 있는데 둥지는 어디다 틀었을까? 겨울의 사생화는 원초적인 매력이 있다.

인부들이 나무를 옮겨 심느라 분주하다. 겨울이식에 놈들은 살아남을까? 인류는 손대는 것마다 생태자원을 훼손하고 오염물질에 병들게 하곤 한다. 그게 우리들의 삶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종이컵 하나에 나무는 얼마나한 희생을 했을까? 일회용품 안 쓰기 정책을 정부는 다시 연기했다. 자원을 아끼고 오염물질사용을 줄인다는 가장 쉬운 일은 우리가 후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환경단체 세계생태발자국네트워크는 인류가 소비하는 자원을 충당하는데 1.75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미국인처럼 자원을 쓰려면 5.1개의 지구, 한국인은 지구 4.0개가 필요하다고 일침을 놨다. 서울식물원 문화센터(온실)에 들어섰다. 무성한 초록의 전당이 뿜는 여름열기 속을 파고든다. 유리창 하나 사이로 겨울과 여름이 공존하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색깔은 죄다 동원해 빛깔의 파노라마를 연출해 놨다. 현란하다. 쌈박하다. 그래 아름답다.

하지만 아까 겨울풍정에서 느낀 낭만적인 모티브를 얼른 찾지 못했다. 여백이 없는 가득함은 감동은 짧고 쉬이 질리게 할 때가 많다. 그나저나 추운 겨울 동토에서의 엑소더스로 이만한 곳이 없지 싶다고 우린 곱씹었다. 겨울 속에서 찬란한 여름이 넘실대는 서울식물원!  2층엔 선물용품 숍과 찻집, 도서관, 가게, 휴식 벤치가 있어 뭉그적대기도 좋다. 우린 벤치 하나를 차지하곤 두 시간쯤 참새들처럼 조잘댔다.

어쩜 아무에게나 할 수 없는 내밀한(?) 얘기를 토해내는 카타르시스의 시간이 오늘 우리들 만남의 하이라이트였지 싶었다. 지기지우(知己之友)가 좋은 게 뭔디? 아내나 부모에게 입도 뻥긋 못한 오만 얘기를 털어놓으며 배짱 편하게 거드름 피워도 상관없는 친구가 아닌가! 평생에 하나의 지기만이라도 사귀는 일생은 행복한 삶이다. 노을이 서울식물원에 기어들자 우린 쫓기 듯 지하로 도망쳐 전철에 올랐다. 또 하나의 지기인 아내한테로! 고마운 친구들이라!         2023.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