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하면 궁궐의 꽃으로 불러요.
어렸을 적 도시의 큰 한옥가를 지나다보면 반드시 그 집안 정원에 능소화가 피어 있었어요.
그 집 분위기와 어울리게 조선시대 양반네 별채에 사는 아씨같은 느낌이었죠.
요즘이야 정원을 갖고 있다면 우리집만 빼곤 거의 다 소유(?)를 하고 있더군요.
저희집 뒷뜰엔 능소화는 없지만, 10여년도 훨씬 전에 섬에서 1년 근무하고 나올 때 거기가 고향이신 한 선생님이 자신의 앞 정원에 서있는 비파의 맹아를 뽑아 한 그루 쥐어줬지요. 그게 자라 옆집으로 가지가 뻗어 열매를 맺을 때면 많은 사람들의 혀를 자극한답니다. 우리 지하의 여자는 구미가 땡길때면 슬그머니 올라가 몇 개씩 따먹는다고 실토를 했지요.
옆집 여자들은 남편을 졸라 한 봉지씩 얻어가구요.
그 비파가 옛 화가들의 그림 소재로 쓰인 건 알고 있지요?
사계절 나무랍니다. 겨울에 꽃이피고...
언젠가 고흥 자그만 절을 갔는데 커다란 굴뚝을 칭칭 감고 능소화가 만발을 했더군요.
고놈이 착각한 건 아니였을까요? 몸부림치며 감고 있는 능소화가 얼마나 애잔하고 아름답던지..
잊을 수가 없지요. 절은 아답했지만, 능소화가제 시선을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답니다.
샘이 맹아를 떼서 주신다면 우리도 양반대열에 끼는 건가요?
그러면 저는 양반댁 규수로 착각하고 또 부질없는 요염을 떨며 남정네들 가슴을 시커멓게 만들면 어쩌지요?
제 티벳여행기를 잘 읽어주셨다니 고맙네요. 처음 써본 글이라 서툰 곳이 많을 거에요.
처녀작의 순수성으로 받아들이면 아주 좋을 듯.
정말 금년은 샘에게 행운의 해인 것 같네요.
무엇보다 '***'란 이름으로 책이 나왔으니..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겠어요?
그 기분 알 것 같아요.
두서너개의 글을 교지에만 전 싣고 있어요. 지금 5년째.. 그것도 글이라고 제 남편은 그 교지를 차곡차곡 모아두었답니다.
둘째는 저와 주고받은 메일을 저장해두었다네요. 조금만 수정해서 책을 만들어라고.
그토록 주고 받았던 편지가 많았나봅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메일친구도, 그래서 요즘은 자식들은 뒷전으로 밀려버렸죠.
세월은 여러변화를 시도했지요. 가장 큰 것은 자식들이 독립해 나간 것이겠죠?
오늘은 금요일, "오늘 올거지?" 했더니 안온다고 하네요. 어디가냐 했더니, " 그냥 바람따라 어딘가로 가고 싶어요." 하네요.
"아들이 보고 싶구나"
"아니, 전혀."
"거짓말, 보고 싶으면서. 엄마 사랑해."
"나도." 이러고 끝났네요.
요즘은 가끔씩 이렇게 변해가는 아들을 보면서 나중을 생각합니다.
그래, 친구나 잘 챙기자. 이렇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