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전야의 꿈과 바리공주!
울`부부 단둘이 맞는 추석이어선지 약식차례 상 앞에서의 기분은 소연(蕭然)했다. 설날과 함께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인데 참석한 가족이 없어서일 테다. 큰애는 대만, 둘짼 스칸디나비아반도에, 막내는 지네 시가(媤家)엘 간 땜이다. 명절은 피붙이와 함께해야 축제답다. 부모님 차례상에 재배올리고 음복하면서 간밤에 꾼 선친님의 임종(臨終)모습이 하도 생생해 기분이 묘했다. 반세기도 더 지난 선친님의 임종정황이 생뚱맞게 추석전야에 현몽하다시피 한 까닭이 아리송했다.
선친님 세수 72살 정월 십칠일, 기력이 다하신 채 눈을 감으신 선친님은 오전엔 막내누나를 찾는 등 비몽사몽 헛소릴 하시면서 된 숨을 몰아쉬곤 하시다가, 오후부턴 목에 가래가 차면서 말씀 한마디 못하시며 답답하고 괴로워 하셨다. 어머님이 그런 가래를 연신 닦아내시고 누나들과 친족들이 빙 둘러서 선친님의 죽음의 고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죽음이란 게 형언 할 수 없는 아픔일거린 걸 나는 선친님의 임종순간을 지켜보면서 통감했었다.
세상에 죽음이상의 고통은 없을 것이다. 하여 우리들은 조금만 아파도 ‘아파죽겠다’는 소릴 무의식중에 내뱉는다. 선친님은 목에 차오르는 가래와의 투쟁(?)끝에 이내 영면(永眠)하셨다. 목젖을 차단하여 숨통을 닫으려는 가래 끓는 소리는 지금도 내 뇌리에서 생생하게, 어제 밤 꿈에서 탈출시킨 악몽이기도 했다. 허나 잠자리에서 깨어난 나는 아까 꾼 꿈을 다시 재현해보고 싶었고, 선친님의 임종모습을 선연히 애달파 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보고 싶은 얼굴을 영영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절망 탓일 것이다.
문득 옛날 바리공주의 효심(孝心)이 생각났다. 아버지의 위독한 병세를 낫게 할 생명수를 구해와 죽음에서 소생시켰던 고난의 역경 말이다. 불라국왕국의 오구대왕은 길대부인과 사이에 딸 여섯 명을 뒀는데 또 딸이 태어나자 홧김에 내다버리라고 호통을 쳤다. 부인은 울면서 막내바리를 멀리 내다버려야 했고, 마침 비리공덕 부부가 바리를 발견하여 데려다 키웠다. 바리가 15살일 때 중병에 걸린 오구대왕은 가족들에게 병을 낫게 할 생명수를 구해오라 했지만 누구 하나 나서질 안했다.
생명수가 있다는 서역서천(西域西天)이 어딘지도 모르기에 엄두도 못 냈던 가족들은 온갖 핑계만 대고 있었다. 이때 막내-바리가 생명수를 구해오겠다고 왕궁을 나선다. 수천리 길을 묻고 물어 지난한 고행 끝에 마침내 서천에 도착한 바리는 생명수주인을 만나 까다로운 요구조건 - 애 두 명을 낳아달라는 제안을 수용하여 3년 동안 몸종노릇을 한 후 생명수를 구해 볼라왕국에 도착하지만 부왕은 이미 운명한 후였다. 해도 생명수를 부왕 입안에 넣고 몸에 뿌리자 거짓말처럼 소생하잖은가!
바리는 오구대왕을 부활시킨 효행으로 산자와 망자를 연결해주는 저승신이 된다. 망자들이 저승에서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하는 무조신(巫祖神)으로써 49일안에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사령제(死靈祭)의 수호신이 된 거였다. 나의 선친님도 바리공주 사령제의 가호로 극락세계에 인도됐을 테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생명수가 있단 걸 우리가족들이 알고 있었다면 바리공주처럼 지난한 효행길을 감내했을까? 내가 막내고 내 위론 누님들이 아홉 분이 계셨지만 누가 얼른 생명수를 구하러 서역서천행에 나섰을까? 란 생각에 갸우뚱해진다.
차례상에 술잔을 다시 올리고 엊밤의 꿈자리를 더듬어 본다. 이젠 울`부부가 불원간 임종을 맞아 죽음에 이르는 고통의 순간에 직면할 차례이다. 우리 딸 셋 중에 누가 생명수 구하려고 이역만리서 3년간 몸종노릇 할 수 있을까? 내가 못한 지난한 효행이기에 감히 자식들한테 염원하는 짓부터가 난센스다. 자식한테 어떤 수고로움도 끼치지 않는 부모라야 성공한 일생일 게다. 선친님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다. 머잖아 울`부부도 망자가 되면 바리공주의 사령제 가호를 받아 극락세계에서 부모님을 상봉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2023년 추석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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