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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7월 4일생 - 쥴

7월 4일생 - 쥴

오늘은 큰애가 고고(呱呱)를 울린 날이다. 울`부부는 첫애라서 신기하고 기뻐 맞았어야 하는데 그렇질 못했다. 가난해서였다. 북아현동 꼭대기 허름한 사글세방 살림이라 시름이 앞섰다. 해도 애는 건강하게 자랐고, 예뻤고, 공부도 잘하고, 무엇보다도 순하고 착해 줄곧 울`집의 기쁨이었다. 세칭 일류대학에 진학-졸업한 후 대치동 C외국어학원 영어강사를 하다 결혼했을 때까진 생일도 온 식구가 공유했다.

뜬금없이 싱가포르에서 둥지를 튼 쥴의 외국생활이 타이베이로 이어져오는 탓에 생일축하를 같이 하질 못했는데 오늘 축가(祝歌)를 불렀다. 지금도 십여 년 전의 불의의 사고를 생각하면 전신이 오싹해진다. 쥴이 느닷없이 관세사시험을 치루겠다고 귀국하여 수험 준비할 때 강원도평창으로 2박3일 가족여행을 갔었다. 귀가 길에 쥴이 승합차에 오르자 나는 승합차문을 닫았는데 아직 문틀에서 손을 때기 전이었던지 비명을 질렀다.

손가락이 차 문틀에 낀 채였다. 으스러지고 골절된 손가락을 붙들고 스키장의료원을 찾아갔지만 마침 휴일이라 간단한 소독만 하곤 서울로 향했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당직병원을 찾아 응급처치를 받기까지의 쥴의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얼마나 심한 아픔이었을까? 시험 1주일을 남겨놓고 발생한 불상사는 나와 식구들이 죽을 때까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가해자(?)가 아닌가.

깁스한 팔을 목에 걸치고 수험 치른 결과는 합격이었다. 참 대견한 아이다. 자랑스럽고 미안했다. 그런 쥴이 애들의 여름방학을 기해 귀국하여 모처럼 맞이하는 생일이라 사뭇 감회가 무량하다. 이태리식당 엘로`볼은 울`식구가 이따금 찾는 단골집이라 오늘 쥴의 생일만찬을 특별하게 신경 써 줬다. 주문식단 이외 몇 가지 특식을 서비스해줘 한결 더 흐뭇했는데 배불러 미쳐 다 소화하질 못해 미안했다.

일과 중 젤 행복한 시간은 식구들과의 식사다. 가족들과의 오붓한 식사자리야 말로 노년의 부부에겐 행복 중 행복이라. 모두 건강하고 각자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사회인으로 기여하는 삶을 사는 자식들과의 화목한 삶은 더 바랄 것 없는 행복이다. 울`부부는 행운아다. 쥴을 비롯한 율과 앨의 가정이 다 모범적이고 건강해서다. 더도 덜도 말고,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지금처럼 사는 게 행운의 삶이라. 즐겁고 유쾌한 쥴의 날 - 7월4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