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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27지기(知己)들의 하루

27지기(知己)들의 하루

▲보라매공원▼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장가 잘 가고 시집 잘 간 사람들!▼

유안진교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생각게 하는 하루였다. 지구온난화에 시국까지 하 수상해 하지(夏至)도 아직 인데 기온은 31°c를 웃돌고 있다. 때 아닌 폭서에 보라매공원은 인파의 난장이 됐다. 날씨 탓인가? 일곱 명이 얼굴을 마주하곤 불참자는 핑계거리를 전화로 둘러댄 비대면 채였다. G는 팔목을 기브스한 채 치료 중이고, Y는 피서차(?) 성지순례 갔단다. Y는 거동불편 하단지 오래고, B는 천안 쉼터 별장지기(?) 하러간다고 했다.

D는 오늘이 제사라고 귀신 마중가야 된다고 호소(?)한다. S처럼 엊그제 위를 절단하는 위암수술을 했다면 할 말이 없다. 수술후유증에다 절식까지 하는 중이라 그의 목소리는 안쓰러울 정도로 의기소침(?)했다. 병원에서 모든 환자의 문병사절이란다. 빨리 쾌유하여 활달한 목소리와 친절미 접하고 싶다. 병배와 차원이도 몸뚱이 이팔청춘 같아 참석한 건 아니다. 만남이란 약속은 지켜져야 기쁨에 이르는 길이니 그 행운을 공유키 위해 기꺼이 땡볕걸음을 함일 게다.

정자와 정란이

“인생 예순은 해(年)로 늙고, 일흔은 달(月)로 늙고, 여든은 날(日)로 늙고, 아흔은 때(時)로 늙고, 백세가 되면 분(分)마다 늙는다.”면서 늙어 교우하는 친구는 가까이서 자주 만나야 한다고 정란이가 좋은 글을 단톡창에 올렸다. 벚꽃 필 때 창경궁에서 약속한 오늘만남인데 한 달이 서럽게 몸과 맘이 늙어 버렸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는 친구가 있다. 혹시 어디가 안 좋아진 건가? 하는 기우를 하게 한다. 전화질 이라도 함 좋으련만~!

우리또래의 만남에서 오만 잡소리와 험담까지 다 실토해도 웃으며 포용해 주는 사람은 깨복쟁이 친구들일 거다. ‘지란지교를 꿈꿀 벗’을 멀리서 찾을 거 없다. 초딩모임에 오면 해결된다. 달로 늙는 게 칠십대 삶이라! 더블미트에서 쇠갈빗살로 단단히 배를 채우고 염천하늘 피하자고 부러 찾은 보라매공원인데 그늘쉼터는 자리가 없다. 갓난애부터 구순노인까지 공원으로 엑서더스 한 판이니 오후2시쯤 찾아온 우리 몫의 쉼터가 있을 리 만무다.

명구가 지폐로 자판기 입을 벌려 캔 음료를 꺼내와 하나씩 돌리면서 벤치로 안내해 착석했다. 어떤 한량 한분이 쉼터를 독차지하고 있다 얼른 자릴 비켜줬다. 오늘의 스타는 단연 기성이다. 모처럼 참석해 미안해선지 계속 이빨만 깠다. 이빨 까는 것까진 가상한데 특유의 쌍시옷발음 연발탄으로 웃어야할지 귀막아야할지 고뇌에 차게 했다. 어쩠든 간에 그가 있어 무더운 오후를 유쾌하고 더 수월하게 넘겼지 싶다.

그가 화장실에서 거울을 빤히 보더니 갑자기 울상을 지으며 못생겼다고 신세한탄(?)을 한다. 옆의 나를 쳐다보면서 ‘너는 어째 제자리에 잘 붙어 잘 생겼냐?’고 시비 아닌 빈정을 댄다. 글면서 자긴 마누라 없으면 진즉 죽었다고 자탄을 해댄다. 아까 ‘기성이 넌 장가 하나는 잘 갔다’고 한 말이, 길치도 상길치라고 폐부를 찔러서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암튼 우리또래엔 아내한테 밉보이면 볼짱 다 본다는 푸념은 정설이다.

기성이 장가 잘 간 건 차원이가 보증을 선다. 아니다, 울 머슴애들이 지금껏 건재하여 서로서로 만나게 됨도 8할은 마누라 덕일 것이다. 불갑 촌놈들이 장가는 잘 간 셈이다. '보라매'는 태어난 지 1년이 채 안 된 매를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우리공군의 상징이 보라매였고, 여기에 공군사관학교가 있던 동네라 공원이름도 보라매를 땄단다. 8월 둘째 토욜 오후에 우린 또 찾아올 것만 같았다.                 2023. 06. 17

장가 젤 잘간 사나이
더블미트, 정사장이 후식은 무료 제공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