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감-그 미지?

꽃아까시나무의 숨겨진 사랑

 꽃아까시나무(Rose Acacia)의 숨겨진 사랑

꽃아까시나무의 붉은 꽃

봄 산불로 해서 ‘잔인한 4월’은 애간장 태우길 몇날며칠을 했던가? 불청객 산불은 봄날의 액땜처럼 불붙었다 아까시나무가 꽃을 피기시작하면 흐지부지 사라진다. 매 말랐던 초목이 꽃아까시(학명 : Robinia hispida)가 꽃망울 터뜨릴 땐 물기가 차올라 짙푸른 숲으로 변신해 화마의 접근을 차단하기 땜이다. 봄 산불비상은 아까시꽃이 피면 해제된다.

콩과식물 아까시나무는 생명력이 강해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흡수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척박한 경사지에서도 맹아와 성장속도가 빨라 산림녹화용으로 각광을 받았다. 일제는 헐벗은 야산에 아까시나무를 식재했고, 6.25전쟁 후엔 민둥산녹화에 최우선 조림용으로 식재하여 산야는 아까시나무숲이 됐다. 그 아까시나무가 일제히 개화를 하여 안산(案山)자락은 아까시나무 꽃향기가 산님들을 달뜨게 한다.

 내 어릴 적 애창했던 박화목 작사의 <과수원길>이 생각났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과수원길”

오늘 안산자락길을 소요하다 연세대 천문대숲에서 귀빈 - 꽃아까시나무와 해후했다. 연세대 후문으로 이어지는 소나무숲길에서 쬠 후미진 곳이라, 아니 내가 5월엔 지나간 적이 없었던지 꽃아까시나무가 군락을 이뤄 붉은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던 걸 오늘 첨 목도했다. 사실 나는 하얀꽃 아까시나무만 봐왔기에 붉은꽃 아까시나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래 붉은 꽃수술 치렁치렁 매단 꽃아까시나무숲에서 우아한 아름다움에, 신비한 황홀경에 취해 한참을 서성댔다. 꽃아까시나무는 새가지 끝부분의 잎겨드랑이 꽃줄기에 연한 붉은색의 총상꽃차례가 5~6월에 개화되는데 꽃받침은 붉은 잔털이 있고, 위로 굽은 암술머리에 털이 밀생한다. 북아메리카 원산지로 우리나라 전역에 관상용으로 식재된다. 9월에 5∼10개의 종자가 성숙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거의 열매를 맺지 않는단다.

꽃아까시나무의 꽃말은 '품위', '우아함', '숨겨 논 사랑'이 있는데 전설 한 토막이 그럴싸하다. 촛불로 어둠을 밝히는 밤, 할머니와 꼬마, 처녀와 총각이 빙 둘러 앉아있는 방에 탐스런 포도 한 송이가 접시위에서 불빛을 받아 입맛 다시게 한다. 그 때 문구멍으로 새어든 바람에 촛불이 흔들리다 그만 꺼져 버렸다. 할머니는 얼른 성냥을 찾아와 불을 켰는데 이게 웬 일인가! 접시에 놓여있던 포도알맹인 사라지고 꼭지만이 앙상하게 남아있지 않은가?

아까시나무 꽃

“누구 짓이냐?” 할머니가 노한 표정으로 장중을 훑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꼬마가 외친다. “아가씨구먼. 아가씨가 먹었지?” 느닷없는 일격에 당황한 아가씨 입언저리에 보라색 흔적이 묻어있는 듯 보였다. 뜬금없는 누명을 뒤집어 쓴 처녀는 황당하고 억울하여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아뿔사, 토방 돌부리에 걸려 비틀대던 처녀가 마당에서 넘어져 뇌진탕으로 즉사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불상사라 처녀는 억울함을 하소연할 찰나도 없었다.

아까시나무는 번식`성장력이 왕성해 다른식물의 식생을 방해해 천덕꾸러기가 됐으나 우수한 재질이 인정돼 귀목대접을 받는다

범인은 처녀 옆의 총각이었다. 그는 포도 알을 씹지도 않고 삼키고는 처녀의 입술까지 덮친 거였다. ‘입 맞춘 죄(?)’로 죽음에 이른 한(恨)은 나중에 처녀가 죽은 마당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싹틔웠다. 삼년 째 해였던가! 성장한 포도나무에 하얀꽃이 주렁주렁 매달라 피었는데 왠지 열매를 맺지 안했다. 포도나무는 처녀가 결코 포드를 먹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꽃만 피웠던 거였다.

▲해당화와 해당화 열매, 꿀벌이 꽃수술 속에서 딍굴며 화분 챙기고 있다▼

동네사람들은 처녀의 억울한 죽음을 회상하며 순정을 기리려 마당의 포도나무이름을 ‘아가씨야’라고 불렀다. 그날 밤 꼬마가 처녀에게 “아가씨구먼. 아가씨가 먹었지?”라고 했던 그 ‘아가씨야’를 차용했다. ‘아가씨야나무’는 그 후 ‘아까시나무’로 변음 된 애통한 전설의 이름이다. 열매(씨)로 번식하지 않는 꽃아까시나무의 애절하고 비밀스런 사연을 생각해 봤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 갈매기 한 두쌍이 가물거리네 / 물결마저 잔잔한 바닷가에서

풋풋한 처녀의 짙은 숨결처럼 향기 물씬 풍기는 아까시나무는 당분이 많아 꿀벌의 밀원이기도 하다. 꿀의 70%이상이 아까시벌꿀이란다. 아까시꿀은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단백질이 풍부하여 질병의 면역력이 증진되고 빈혈과 고혈압예방, 기침감기약은 물론 피부미용에도 좋다. 또한 단단한 재질과 돋보이는 광택은 아름다운 무늬목으로써 다양한 건축재로 활용된다. 지자체는 아름다운 꽃아까시나무 식재운동을 펼쳐 치유의 숲을 넓히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2023. 05. 14

찔래꽃
붉은 병꽃
수국
단풍꽃
안산정상의 송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