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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4월의 야생화 퍼레이드를 받으며

4월의  야생화 퍼레이드를 받으며

복숭아꽃 뒤로 인왕산과 북악`한산이 보인다. 인왕산엔 노란 개나리가 도장밥처럼 번지며 능선을 탄다
라일락
왜제비꽃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아파트화단이 밝고 환해졌다. 겨울잔영에 음산했던 나목들이 한 달 남짓한 시간에, 특히 벚나무와 개나리가 화사한 치장을 한 채 찬란한 봄을 영접하고 있다.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나의 한 달이란 일상은 초목들에겐 고고(呱呱)를 위한 치열한 아픔의 시간이었을 테다. 생명의 시간 - 누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읊었던가!

남산제비꽃
자두꽃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 올리고

기억과 욕망으로 뒤섞여

잠든 뿌리가 봄비에 뒤척이는데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 주었다

벚꽃
명자꽃

내가 사는 아파트옹벽 벼랑화단의 라일락도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4월에 입은 상처를 딛고 재탄생하는 몸부림을 엘리엇(T S Eliot)은 생명의 경외(敬畏)로 노래했지 싶다. 벚꽃 퍼레이드를 받으며 안산초록숲길을 찾아들었다. 계단은 개나리군무에 숨어들고 노랑아우성은 파란하늘로 번진다. 바짝 메마른 땅에서 피워낸 개나리꽃은 산비탈마다 노란보자기로 덮어 산고(産苦)를 치유하나 싶다.

황매화
현호색
벚꽃무리가 안산초록숲길을 건너뛰고 정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 노란보자기 속에서 노랑제비꽃이 수줍게 웃는다. 아니 저만치 노랑 물결 속에서 자줏빛제비꽃도 손짓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두 놈은 나를 기다리다 지처서 풀죽어버렸다. 한 달 사이에 생명이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절대 절명의 시간을 나는 그냥 무심하게 떠돌아다녔다. 봄비는 언제 올려나? 마른 뿌리에 봄비가 스미면 시들던 생명이 소생할 텐데~!

잔털제비꽃
히어리
백목련

나폴레옹도 제비꽃을 무척 좋아했다. 그가 젊은 장교일 때 ‘제비꽃 소대장’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는 유배지 엘바섬에서 동지들에게 ‘제비꽃이 필 무렵 다시 돌아가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곤 했었다. 제비꽃이 죄다 사라질 무렵인 6월에 워털루전쟁(1815년)을 일으켜 패배함으로써 나폴레옹은 굳은 땅에 영영 묻히고, 그를 사랑했던, 그래서 더 제비꽃을 아꼈던 조세핀도 두 번 다시 제비꽃을 보지 안했다.

돌단풍
쇠뜨기
풀또기

조세핀에게 제비꽃은 나폴레옹의 상징이었지 싶다. 인걸을 가도 야생화는 살아남는다. 개나리가 노란보자기를 거둬도 제비꽃은 연둣빛수풀 속에서 인사를 한다. 놈의 꽃말이 겸손이고 성실함이라던가. 진달래 한 무리가 열정적으로 다가온다. 놈들은 연두색 캔버스에 지 멋대로 화톳불을 지피고 있다. 군데군데 빨갛게 불꽃지피는 진달래는 봄의 화신이자 봄날의 아이콘이다.

진달래와 개나리와 산수유가 한무대에서 공연을 펼쳤다
조팝나무
둠벙에 올챙이가 노닐고, 도룡뇽알은 수초를 보듬도 고고를 준비한다. 벚꽃떡잎이 흡사 수초꽃인 듯 착각케 하는 4월!

진달래불꽃에 행여 데일 터라 몸 사리는 산수유 세 네 그루가 연못가에서 활짝 피어도 시원찮은데 꽃잎 터뜨리길 망설이고 있다. 좁쌀만 한 꽃술이 한데 뭉쳐야 매파가 오고 씨를 맺을 수 있단 걸 고민했던 산수유는 ‘뭉쳐야 산다.’는 생의 지혜를 우리들에게 각성시켜줬다. 연둣빛 산천에 그렇게 뭉친 꽃망울이어야 벌`나비의 눈에 띈다. 연둣빛물결 속에 귀룽나무가 오뚝 키 자랑을 하면서 특유의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늘어뜨렸다.

고깔제비
양지꽃

지금 막 싸레기꽃망울 터뜨리는 놈의 품안은 풀벌레의 안식처다. 곤충들의 우화(羽化)의 태반이고 도피처이다. 자연은 그렇게 한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는 치열한 생존의 공동체이고 우주다. 옛날 그리스에 아티스라는 양치기가 어여쁜 이아를 사랑했다. 질투심이 많았던 비너스여신이 몽니가 발동하여 아들 큐피트를 시켜 사랑의 불화살을 이아에게 쏘게 하고, 망각의 화살을 아티스 가슴에 쏘았다. 그 후에 이아가 연인 아티스를 찾아갔으나 아티스는 냉정하게 돌아서서 모른 챌 했다.

민들래
안산자락길의 야생화 퍼레이드
산수유

이아는 실연의 상처로 시름시름 야위어가고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 쬠은 안 됐다싶었던지 비너스는 이아의 무덤에서 작은 꽃을 피우게 했는데 그 꽃이 제비꽃이란다. 제비꽃은 청순하고 이쁜 이아의 넋이다. 안산초록숲길의 야생화들이 무시로 뛰어나와 인사를 한다. “한 달 동안 뵐수가 없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라고 살랑살랑 아양떨며 봄바람을 일으킨다. 초록숲길은 그들의 보금자리고 나에겐 치유의 산소통이다. ‘잔인한 달 4월’의 시작과 함께 다시 볼 수가 있어 기뻤다.     2023. 04. 03 

귀룽나무도 싸리꽃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늘사초?
금낭화
매발톱나무
둠벙의 올챙이들이 올챙이친구들의 방문을 받았다
광매발톱
피라칸사
할미꽃
괴불
고비
귀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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