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타이완에서 33일 간의 낙수(落穗)
3월27일 오후, KAL편에 탑승한 울`부부는 구름 속을 뚫고 타이베이하늘로 솟았다. 서울 떠난 지 33일만이다. 지겨울만한 장기여행인데 어찌 그리 후딱 지나가버렸다. 넓은 숙소에서 큰애의 각별한 배려땜일 터다. 난 어제부터 감기기운이 돌았지만 견딜만하고, 늘 그랬듯이 개처럼 쏘다니면서 이겨먹을 테다. 큰애 네와 아내까지 다섯 명이 차례차례 감기와 씨름한 후유증을 결국 내가 물려받아 피날레를 장식할 참이다.
코로나팬데믹 탈출에 중국여행이 막혀선지 대형비행기는 만석이다. 구름 위에 앉아서 산책하듯 창공을 즐기다 눈을 감았다. 한 달간의 일상이 두서없이 파노라마 되었다. 이사하느라 허리를 삐긋 다쳤다고 울`내외를 부른 큰애커플의 수작은 순전히 쇼였다. 4월부턴 본격 우기에다 여름철이라 젤 쾌적한 3월을 같이하고파 훈이가 짜낸 쇼맨십초청이었다. 훈인 사위보단 울`집의 장남이다. 울`부부는 항상 그렇게 여기며 살고 있다.
훈인 심성이 곱고 예의바른 영민한 탤런트(?)이다. 특히 IT와 AI의 독보적인 인재다. 울`부부의 대만여행도 훈이가 신주 실리콘 벨리에 MS의 데이터 베이스 구축을 위해 장기출장 하는 땜이다. 분망한 훈이가 울`부부에게 쏟는 효심은 그냥 감동적이다. 게다가 복층 팬트하우스의 넓은 생활공간은 프라이버시 침해를 안 받아 울`부부는 한 달간의 손님(?)노릇을 불편 없이 즐겼지 싶다.
울`부부가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가 있었던 건, 숲속의 아파트와 녹지가 많은 쾌적한 기획신시가지에 잘 정비된 트레킹장소와 자전거전용도로, 아열대우림의 산행을 매일 할 수가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숲속의 도시 신주시는 실리콘벨리라는 첨단과학 산학도시라 직장인이 많아선지 낯엔 보행자가 적다. 그래설까? 숲속의 시가지는 한가롭고 깨끗하여 쾌적하다. 또한 시민들의 친절과 배려에 내 자신이 민망해지기 일쑤였다.
두 번째 칭화대를 갈 땐 나 혼자였다. 시내버스를 이용했는데 승차시 교통카드체크가 안 돼 버스입구에 서서 버스기사와 바디 랭귀지 쇼맨이 됐다. 대화가 안 되자 기사님이 그냥 들어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어정쩡하게 들어와 빈자리에 앉아서 큰애한테 전활 넣었다. ‘잔돈이 없으면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그냥 계시다가 내릴 때 미안하다고 인사말이나 하세요.’라고 큰애가 어드바이스를 해줬다. 나는 500위완짜리 지폐 한 장을 비상금으로 소지한 채였다.
그때였다. 내 옆의 아가(줌)씨가 자기휴대폰을 내밀어 보인다. 휴대폰 창에 ‘무얼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라는 한글문장과 그녀의 진정어린 눈빛이 동시에 내 눈과 마주쳤다. 당황한 나는 ‘노 프라블럼’하고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손사래를 쳤다. 그녀도 좀은 당황했을까? 미소를 짓더니 손가방을 꺼내서 하얀 동전 2개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내게 내밀며 가져가란 제스처를 한다. 난 미소와 당황스럼의 우거지상을 한 채 ‘땡큐~ 아임 쏘리!’만 연발했다. (나중에 안 사실은 하얀동전은 우리돈 500원상당이니 1,000원쯤 되고 시내버스 기본요금은 750원이어서 동전 2개를 내민 거였다)
동전을 올려놓은 손이 내 허리춤까지 왔다. 나는 손사래치며 거둬들이라는 손짓을 거푸한다. 마지못해 그녀는 작고 예쁜 손을 거둬들였다. 글고 잠시 후 그녀는 하차한다. 손을 들어 미소를 얹어서~! 십 여분 후에 버스가 칭화대에 접근하자 나는 운전석으로 나가 쿄통카드를 내밀며 기사님눈빛을 살폈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그때 운전석 옆 의자의 아주머니가 나더러 손짓으로 승강구를 가리키며 그냥 내리라는 시늉과 뭐라 말을 하는 거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님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안쪽에 계신 아저씨가 내게로 와서 자기의 교통카드를 내미는 거였다. 동시에 기사님이 손을 흔들며 제지하고, 아주머니는 일어서서 아저씨 팔을 당기고 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나는 세 분에게 ‘고맙다’는 찰나적인 눈인사를 하면서 버스에서 내렸다. 아가씨, 버스기사, 아주머니, 아저씨 네 분의 얼굴이 하루 종일 아니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 진보한다.
인간과 자연이 지혜롭게 일궈낸 칭화대 캠퍼스의 아기자기한 멋스러움 못잖게 128번 버스 안에서의 인정미가 진한 감동으로, 아름다운 기억의 파편으로 오래오래 내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대만 신주시민들은 더 많지 싶었다. 또 한 번은 시골농가의 텃밭에서의 일화다. 내가 이두산 등산 후 귀가 길에 쬐금한 텃밭에서 초노의 촌부가 풀을 메고 있는 걸 보았다.
초록 넓은 잎의 작달막한 나무가 20여 그루쯤 될 텐데 배만한 열매 대여섯 개씩 땅바닥에 몇군데 모아놓았다. 열매도 초록바탕에 황갈색이 섞였는데 난 처음 보는 열매였다. 노인께 과일이름을 물었으나 서로가 뱉는 말은 원시인의 괴성일 뿐이었다. 휴대폰을 보이며 사진을 찍겠다고 바디 랭귀지 쇼를 하며 텃밭에 들어가서 몇 컷을 찍고 나왔다. 순간 밭둑에 버려진 게 몇 개가 있어 쓸 만한 걸 하나 골라 일어서니까 노인장이 나를 부른다.
멈칫대는 나에게 노인은 좋은 걸로 두 개를 들고 와서 주는 게 아닌가! 말이 안 통해 무턱대고 들어가는 무례를 범했는데 선물을 하다니! 무안했다.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빙그레 웃는 노인의 얼굴에 주름살이 더 깊어졌다. 얼추 노인은 나보다 더 젊지 싶었는데 해맑은 미소가 천진한 어린애 같았다. 집에 와서 과일이 구아바란 걸 알았다. 구아바는 사과 맛의 육즙이 물씬한 고급과일이었다. 70년 생애에 첨 본, 첨 맛본 과일이다.
터우첸 강안의 유휴지 농장에서였다. 자전거전용도로와는 까마득한 잔디광장 구석 숲가에 미니승용차가 있었다. 거기에 뭐가 있나싶어 좇아가봤다. 수풀 속에 20~30평쯤 될 채소와 과일밭에 두 남자가 일 하고 있다 나를 보았다. 나는 손을 들고 들어가도 되느냐? 고 묻자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특별히 볼 것은 없었는데 양배추 하나가 꽃대를 올려 노랑꽃다발을 피우고 있었다. 영락없는 유채꽃 이었지만 나는 처음 본 양배추 꽃이라 사진을 찍고 싶었다.
사진 찍고 나오려니까 젊은이가 양배추 한 송이를 내밀며 미소 짓는다. 황송해서 고맙다며 극구 사양했다. 사실 가져오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준`경주용자전거라 양배추뭉치를 달아맬 데도 없고, 한손에 들고 한손으로 운전하며 귀가하기엔 넘 먼 곳이었다. 반벙어리 신세인 나는 그 사정을 설명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는데, 그분들이 혹여 오해를 사지 않았을까? 라고 불편했던 마음이 지금도 남아있다. 선의를 무시하는 행위는 악랄한 범죄행위와 다를 바 없음이다.
신주시내의 대중교통은 열악(?)한 편이다. 차도와 인도와 자전거(오토바이)전용도로가 사통오달로 발달한 시가지는 늘 한가하리만큼 소통이 원활하다. 신주시는 주베이와 경계를 이루는데 통합인구가 100만 명을 상회해 125만 명이면 ‘특별시’로 승격하는 꿈을 꾸고 있단다. 그런 시내에서 시내버스나 택시를 보기 어렵다.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대세를 이루고 공용자전거가 시내 요소마다 있어 자전거공용카드로 빌려 탈수 있어서일까?
서울시내의 공용자전거처럼 자전거를 탄 후 목적지에서 주차 대에 주차시키면 되는데 서울선 한 번도 시도해 본적이 없었지만 공용자전거의 효율성을 짐작할 만했다. 러시아워 때만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도로를 넘칠(?)뿐이라 도시는 늘 쾌적하다. 더구나 도로엔 야자수종류의 가로수가 촘촘하고 녹지가 많으면서 미세먼지가 없어 상큼한 기획도시의 전형을 이룬다. 산책길이 따로 필요 없는 전원도시전체가 트레킹코스이기도 하다. 짐짓 살맛나는 자연친화적인 도시다.
아파트도 베란다가 넓고 일부아파트는 베란다를 관목류와 화초를 심은 화단전용으로 쓰여 아파트전체가 숲에 둘러싸여있다. 특별하고 멋진 아파트다. 신주시내의 건물들은 내진설계로 대게가 육중한 멋을 풍기는데 외양도 고딕풍이 많아 도시미관에 일조한다. 더구나 입간판이 없고 작은 명찰간판의 가게 앞은 상품거치대가 없어 건물과 주변이 지저분하질 않다. 그런 말쑥한 시내에 교회건물도 없다. 우리나라엔 헬 수없이 많은 옥외십자가를 눈 부릅떠도 안 보였다.
기독교회가 없는 건 청나라 때부터 기독교사상을 철저히 배격한 탓이다. 대신 시내요소에 작은 사당이 있는데 불교와 각종 토속신앙이 혼재된 기도처로 외양이 화사하다. 그런 사당은 마을유지나 독지가의 성금을 모아 건립한 기도처인 듯싶었다. 사당 안에 건립내역이 새겨있어 대충 어림짐작했다. 향불을 태우고 기도하는 주민들을 간간히 볼 수가 있었는데 참 경건했다. 유독 예수의 생애를 신앙하는 삶을 생의 목적처럼 올인 하는 우리나라의 기독교신자들이 비교됐다. 기독교인만이 천당 갈수 있다는 그 독선을?
사당이 신앙의 기도처인 쾌적한 도시에 의외로 유치원이 많았다. 서울서 교회 보듯 많았다. 거리에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실리콘벨리 신주는 직장인이 그만큼 많다는 상징일 터다. 기독교가 넘치는 우린 인구감소로 말세로 치닫고, 사당(이단교회)을 찾는 대만은 유치원이 늘어난다는 역설이 아이러니했다. 대만은 물가가 우리보단 더 비싼 편이란다. 좁은 산지국토라 생산지가 열악한 탓도 있겠지만 주 원인은 중국과의 물자교역 단절상태일 거란다.
미국의 대만정책 탓에 몽니부리는 중국의 등쌀로 애먼 대만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셈이다. 패권다툼의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살아남을 약소국가의 비전 - 등거리외교를 배워야할 우리정부다. 타이완의 반한감정은 반일보다 드세다. 51년간 일제식민지였던 타이완이 6.25땐 팔 걷어 부치고 도와준 혈맹이었는데~? 시내에 굴러다니는 자동차를 보면 심술이 난다. 일제자동차 홍수 속에 우리나라 차는 모래속의 금 찾기였다. 중국과 외교 트면서 대만하곤 단교한 우리 위정자들의 단견 탓일 게다.
햇살이 서해 수평선을 붉힐 때 울`부부는 인천공항에 착륙하고 있었다. 기온이 쌀쌀하다. 그래도 마음은 더 평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네 저찌네 해도 우리나라가 살기 젤 좋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말이 통하는, 내가 태어난 땅이어서 일 것이다. 그래도 또 내일 여행을 떠나라면 훌쩍 보따리를 쌀 것이다. 미지를 향하는 솔깃함은 또 다른 생의 원동력이고 비타민이다. 인생이란 어차피 떠돌이고, 귀소본능으로 재충전하는 여정의 연속선상일 테다. 2023. 0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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