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아래 숯불구이 스테이크(steak)
큰애가 베란다에서 장작불을 피우느라 애를 쓴다고 아내가 나더러 좀 거들으라고 최촉한다. 거실 미닫이문을 열고 베란다에 나가자 훈이가 숯불화덕에 불붙여놓고 화로에 장작을 쌓아올려 불 지피느라 매캐한 연기와 씨름하고 있다. “장작불을 뭘라고 피우나?”“예, 밤공기가 차가워 화롯불 곁에서 먹게요” “내가 할 테니 넌 숯불구이 해라” “그럴까요”
거실밖엔 5평쯤 될 베란다가 있는데 오늘 저녁식사는 숯불구이로 한다고 예고가 된 판이라 예의 그러려니 무심하고 있었는데 장작불까지 피우느라 눈물 글썽거리고 있잖은가! 갈빗살에 갖은 양념으로 밑간을 하고 오일을 뿌리는 등 시즈닝(Seasoning)을 하느라 오후 한참을 주방에서 서성댄 훈이가 고마워 콧잔등이 시큰둥해졌다.
훈이는 이따금 소리 소문 없이, 더구나 울`내외를 대접한답시고 요리도 썩 잘한다. 아마 외국에서 독신생활을 많이 한 덕일 테다. 오늘 저녁식사를 위해 어제 퇴근 땐 코스토코에서 갈빗살과 연어와 참나무를 한 포대 구입해왔었다. 내가 입 바람으로 참나무장작불의 점화를 시도하는데 잘 안되고 연기만 오소리 잡게 피어오른다. 낭패였다.
훈이 알콜을 갖고 와 뿌리자 센불로 타오르고 그렇게 화톳불로 일궈진 일렁이는 숯불을 퍼서 고기화덕에 넣어가면서 화기조절하고, 와인 한 방울을 뿌리는 신경에 눈물까지 훔치는 고역을 감내한다. 그렇게 구워낸 미디엄 레어(medium rare)의 뜨거운 쇠고기를 후후 불며 와인에 곁들어 먹는 맛은 온 식구들의 탄성의 밤으로 무르익었다. 자정이 이르자 별빛은 더더욱 총총해 졌다.
겉만 살짝 익혀 속살엔 핏기가 돋는 두툼한 쇠고기를 씹으면 달짝지근한 육즙이 입안에 가득 풍미까지 자아내는 미디엄 레어의 맛은 감탄이라. 더구나 달 밝은 밤 별빛이 총총한데다 주위에 신경 꺼도 된 꼭대기 층이겠다. 큰애커플이 고맙고 자랑스러운 밤이기도 했다. 아들노릇 하느라 늘 맘 쓰는 훈이가 새삼 고맙게 여겨지는 숯불구이 밤 - 진한 추억 한 페이지를 씀이라. 202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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